삶의 중요성
[한국강사신문 박순웅 칼럼니스트] “야, 박순웅!”
회의실 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고함이 쏟아졌습니다. 필자가 신입 회계사이던 시절입니다. 상사는 보고서를 고객에게 보내라고 지시했지만, 택배 업체 사정으로 발송이 지연되었습니다. 그는 회의 참석 중이던 필자에게 호통을 친 것입니다.
그에게는 잠깐 화를 냈던 순간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말과 행동이 듣는 사람에게는 오래 남기도 합니다.
그날 이후 필자의 삶은 안팎으로 상당히 위축되었습니다. 늘 상사의 눈치를 살폈고 말 한마디에 긴장했습니다. 늦깎이 신입사원이기도 했기에 실수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을 더 몰아붙였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빈틈없이 일을 처리하는 능력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그 시절의 필자는 실수 자체보다 실수가 남길 평가를 더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회계사는 숫자를 맞추며 회사의 장부를 검토하고 오류를 찾아냅니다. 회계에는 ‘중요성’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재무제표를 보는 사람이 회사의 상황을 잘못 판단할 정도로 큰 오류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수천억 원 규모의 회사에서 만 원이 틀린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지만, 수백억 원의 오류라면 판단이 달라집니다. 모든 오류가 같은 무게를 갖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어쩌면 우리 삶에도 허용 가능한 실수와 흔들림이 있습니다. 그것이 삶의 중요성인지도 모릅니다.
그 시절, 제 삶의 중요성은 1원이었습니다. 1원이라도 맞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고 어떻게든 오류를 없애야 한다는 생각으로 밤을 새우기 일쑤였습니다. 회계사로서의 중요성은 제 삶에도 조금씩 스며들었고, 작은 실수 하나에도 스스로를 오래 붙들어 매고 하루의 흔들림마저 삶 전체의 실패처럼 받아들이곤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습니다. 삶을 판단하는 기준은 늘 숫자로만 정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은 하늘에 계신 외할머니가 떠오릅니다. 한글을 배우지 못한 채 살아오셨고, 예순이 넘어서야 스스로 글자를 익히기 시작하셨습니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백지 위에 글자를 적어 내려가셨지만, 무슨 글자인지 알아보기 어려울 때가 많았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도 아니었고 누가 본다고 해도 쉽게 읽을 수 없는 글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몇 글자가 서툴고 삐뚤었다고 해서 그 배움의 시간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읽기 어려운 글자 몇 개가 삶 전체를 실패로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서툰 글자들 사이에서도 할머니의 삶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한 기준으로 삶의 중요성을 매기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모든 실수와 흔들림이 삶 전체를 무너뜨리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어긋남은 견딜 수 있고, 어떤 흔들림은 지나가며, 어떤 실패는 삶 전체를 다시 써야 할 만큼 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다시 그 회의실로 돌아가 봅니다.
그리고 신입사원이었던 필자에게 조용히 말합니다.
“삶은 1원까지 맞추지 않아도 돼.”
칼럼니스트 프로필
박순웅 칼럼니스트는 공인회계사로서, 기업의 재무제표를 분석하듯 삶을 구조적으로 해석하는 글을 쓰고 있다. 삼일회계법인과 대주회계법인을 거쳐 현재는 한미회계법인의 파트너 회계사로 회계감사와 경영자문을 수행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스타트업 30분 회계』, 『스케일업 30분 회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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