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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박소현 칼럼] 봄, 사라져가는 것들을 그리고 기억하다

AI와 인간이 혼재하는 지금의 세상을 쫓아가기도 벅찬데, 그림을 보며 사라져가는 것들을 떠올리는 일은 뒤처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로부터 비롯되듯이, 불안한 미래를 버티는 힘은 과거의...

[박소현 칼럼] 봄, 사라져가는 것들을 그리고 기억하다

AI와 인간이 혼재하는 지금의 세상을 쫓아가기도 벅찬데, 그림을 보며 사라져가는 것들을 떠올리는 일은 뒤처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로부터 비롯되듯이, 불안한 미래를 버티는 힘은 과거의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록하고 기억해내는 데서 비롯된다는 믿음만은 더욱 선명해진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머리를 빗는 소녀〉, 1894년경. 모델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당시 르누아르 주변 인물들과의 연관성 때문에 수잔 발라동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약혼녀와 파리로 여행 온 소설가 길이 밤거리를 혼자 산책하다 그가 동경하던 1920년대로 시간을 거슬러 넘어가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이유로 판타지 같았다. 파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파리가 배경이라서,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위대한 예술가들이 단체로 등장해서, 진짜 사랑을 찾아가는 낭만 가득한 주인공의 이야기라는 이유로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개인적으로는 피카소와 헤밍웨이로부터 동시에 사랑받는 뮤즈 아드리아나와 길이 1890년대로 건너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과 에드가 드가를 만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벨 에포크 시대를 동경하던 아드리아나는 1920년대로 돌아가지 않고 1890년대에 남겠다고 했을 때 내 마음도 벨 에포크 시대에 꽂혀버렸다.

1871년부터 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4년까지 이어지는 문화예술의 황금기이자 가장 아름다운 시기라 불리는 벨 에포크 시대에 많은 예술가들이 파리로 몰려들었다. 우리가 아는 많은 예술가들이 이 시기에 활동했었고, 파리 곳곳은 그들의 낭만과 사랑으로 넘쳐났다.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아드리아나와 달리, 실제 그때 그곳에 존재했던 예술가들의 뮤즈도 있었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을 비롯해 많은 화가들의 뮤즈였던 수잔 발라동은 한 카바레에서 음악가 에릭 사티와 만나 사랑에 빠졌다. 강렬하게 이어질 것 같았던 그들의 사랑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수잔 발라동이 괴짜 에릭 사티의 집착을 견뎌내지 못하고 그에게서 도망쳐 버린 것이다. 이 6개월짜리 짧은 사랑은 에릭 사티에게는 평생의 사랑이 되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수잔 발라동을 잊지 못하고 짝사랑을 했던 것이다.

너무 늙은 세상에 너무 일찍 왔다고 말하며 시대를 앞서가는 독보적인 예술적 감성을 지녔던 에릭 사티의 음악은 어느 침대 광고에서도 여전히 감각적으로 어우러진다. 그의 음악은 지워지지 않고 우리 곁에 남았지만, 그가 남긴 짝사랑이란 감정은 어느덧 사라지고 있다. 요즘 세대의 이야기다. 사랑이란 불확실한 감정에 에너지를 쏟을 여유가 없고, 짝사랑으로 상처받기도 싫고, 자칫 상대방에게 부담스러운 마음이나 스토킹으로 여겨질까 두려워 젊은 세대는 짝사랑과 이별하고 있다는 것이다. 짝사랑 한 번쯤은 해보거나 목격이라도 했던 우리 세대와는 많이 달라졌다.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조명을 받았던 짝사랑을 진하게 표현한 알로니즈 코로바스 작품 앞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라고 말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어느 선생님의 말에 짠한 웃음이 난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 1663~64년경,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메리 카사트, 〈The Letter〉, 1890~91년경,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과거를 기록해온 예술가들의 작품 속에서 짝사랑처럼 우리 곁에서 조용히 사라지고 있는 것들을 마주하게 된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가 그린 ‘푸른 옷의 젊은 여인’이 읽고 있는 편지도, 메리 카사트 작품 속 편지도 그렇다. 페르메이르 작품 속 여인은 온통 편지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우리는 어떤 단서라도 잡기 위해 여인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표정과 몸짓을 예민하게 살핀다. 내가 당신에게 전달하고 싶은 내밀한 이야기가 편지라는 것을 알기에 더 빠져드는 것이다. 일본 색채 목판화에서 영감을 받은 메리 카사트의 <The Letter>라는 작품에서 여인은 편지를 부치기 위해 봉투를 봉인하고 있는 중이다. 그녀가 입은 파란 옷의 무늬와 벽지에 새겨진 초록 문양들은 설레는 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누군가에게 닿을 자신의 마음처럼 말이다. 어릴 적 친구에게 깨알 같은 글씨로 우정을 전하고, 부모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던 편지가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만은 예전에도 지금도 변함없이 귀하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등장하는 영화관도 영화 엔딩 크레딧처럼 ‘Fine’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코로나 이후 영화관을 찾는 관객들이 급격히 줄고, 넷플릭스처럼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플랫폼들이 다양화되면서 천만관객 영화라든지 매진 같은 말을 영화관에서 보기는 어려워졌다. 릴스 같은 짧은 호흡에 길들여지면서 긴 호흡이 필요한 영화를 감당하기에는 인내력이 부족해진 탓에 영화관의 자리는 비워지고 있다. 위기에 처한 이 시대의 영화관과 달리 호퍼의 작품에는 이미 사라진 영화 안내원이 등장한다. 상영 중인 영화에는 관심이 없는 듯 영화관 통로 옆에 홀로 기대어 있는 여인의 얼굴은 불빛 아래인데도 외로움과 고립감으로 더 지쳐 보인다. 금방이라도 여기를 떠날 사람처럼 비장해 보이기까지 한다. 호퍼의 슬픈 예감이 맞았을까. 영화 안내원도, 영화관도 외로운 어둠 속으로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현대 도시인의 외로움을 포착했던 호퍼와 닮은 존 레지스터는 사람이 떠난 빈 공간에 덩그러니 놓인 의자들로 관객들의 외로움을 들추어내며 외로움을 기록했고, 도시의 많은 예술가들이 외로움이란 감정을 지속적으로 그려왔다. 지금이야 영화관의 빈자리처럼 외로움이 넘치는 세상이지만, 외로움이란 감정도 언젠가는 짝사랑과 같은 운명에 처할지도 모른다.

칼 라르손, 〈크리스마스 아침〉, 1890년대경

사라지고 있는 것 중에는 가족도 있다. 북적북적하던 명절은 어느새 단출한 모임이 되어버린 지 오래이다. 가족이 변해서 세상이 변한 건지, 세상이 변해서 가족이 변한 건지 알 수 없지만, 사회 시간에 그렇게 외쳤던 핵가족화는 이미 현실이 되어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 가구의 35퍼센트를 넘어섰다고 한다. 가족의 단란한 모습은 옛 그림 속에서나 발견되는 과거의 유산이 되어버렸다.

스웨덴의 국민화가 칼 라르손의 그림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는 가족 유산을 만날 수 있다. 여덟 명의 아이를 둔, 둘을 일찍 떠나보내긴 했지만, 칼 라르손은 아내 카린과 스톡홀름에서 좀 떨어진 시골에서 일상을 즐기며 작업을 했다. 커다란 자작나무 아래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정겹다 못해 부럽고, 크리스마스 아침에 선물을 받아 신이 난 아이들의 들뜬 모습이 사랑스럽다. 라르손은 자신의 일상을 담은 것뿐인데, 지금의 우리는 “옛날엔 그랬었지”라며 그때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칼 라르손과 그의 부인 카린이 꾸민 집의 인테리어 스타일이 이케아(IKEA)의 정신적 뿌리가 되었던 것처럼, 그의 가정도 그 옛날 행복한 가족의 표본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AI와 인간이 혼재하는 지금의 세상을 쫓아가기도 벅찬데, 그림을 보며 사라져가는 것들을 떠올리는 일은 뒤처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로부터 비롯되듯이, 불안한 미래를 버티는 힘은 과거의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록하고 기억해내는 데서 비롯된다는 믿음만은 더욱 선명해진다. 다행히도 많은 예술가들이 희미해지는 감정을, 스러져가는 공간과 순간을, 과거의 유산을 작품에 기록하고 새긴다. 덕분에 사라지는 것들이 우리 곁에 남아 지금의 우리를 위로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응원한다.

이토록 짧은 봄이라, 훌쩍 떠나보낼 봄이라 더 절실하게 다가와서 그럴까. 3월의 가느다란 순간들을 예술로 붙잡아 보길 바란다.

profile

아트 디렉터 박소현은…

서울대학교 소비자아동학과를 졸업하고 2000년 MBC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해 2015년에 퇴사했다. 퇴사 후 평소 좋아하던 피아노와 미술 분야를 보다 행복하게 즐기고자 공부를 시작했고 현재는 취미로 즐기던 미술을 업으로 삶아 아트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예술엣이 〈창문 너머 예술〉을 썼다. @nylover.life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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