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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민병두의 나이이즘 (76)] 디지털 유산 정리사

죽은 뒤에도 남는 나의 계정, 사진, 기억, 그리고 데이터. 죽음 이후에도 사람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예전에는 옷장, 책장, 앨범, 편지, 통장, 집문서가 남았다. 이제는 그 위에 하나가 더해졌다. 바로 디지털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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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두의 나이이즘 (76)] 디지털 유산 정리사

민병두

입력 : 2026.05.08 06:02

ㅣ 수정 : 2026.05.08 06:02

디지털 유산 정리는 새로운 효도이자 자기결정권

위 이미지는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인공지능)을 활용해 제작했습니다. [사진=미드저니 / 뉴스투데이 이가민]

[뉴스투데이=민병두 회장] 죽은 뒤에도 남는 나의 계정, 사진, 기억, 그리고 데이터. 죽음 이후에도 사람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예전에는 옷장, 책장, 앨범, 편지, 통장, 집문서가 남았다. 이제는 그 위에 하나가 더해졌다. 바로 디지털 흔적이다.

소셜네트워크 계정, 이메일, 클라우드 사진, 스마트폰 속 대화, 온라인 뱅킹, 암호화폐 지갑, 유튜브 채널, 블로그, 쇼핑몰 계정, 각종 구독 서비스까지. 한 사람이 디지털 세계에 남긴 흔적은 물리적 유품 못지않게 방대하다.

문제는 사후에 이것을 누가, 어떻게, 어디까지 정리할 수 있느냐이다. 고인의 계정을 그대로 둘 것인가. 삭제할 것인가. 추모 공간으로 남길 것인가. 사적인 대화와 사진은 유족이 볼 수 있는가. 고인의 프라이버시는 죽음 이후에도 보호되어야 하는가.

이 질문들이 모여 새로운 영역을 만들고 있다. 바로 디지털 유산 관리이고, 그 일을 돕는 사람이 디지털 유산 정리사다.

■ 유품 정리의 중심이 ‘물건’에서 ‘데이터’로 옮겨가고 있다

스마트폰과 클라우드가 일상이 된 이후, 사람의 삶은 물건보다 데이터 속에 더 많이 저장된다. 가족사진은 앨범보다 클라우드에 있다. 편지는 서랍보다 이메일함에 있다. 인간관계는 주소록보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링크드인에 있다. 금융 자산도 은행 창구보다 앱과 온라인 계정 안에 있다. 따라서 사후 정리는 이제 집 안의 서랍만 여는 일이 아니다. 디지털 서랍을 여는 일이 됐다. 그리고 그 서랍은 훨씬 복잡하다. 비밀번호가 걸려 있고, 서비스마다 약관이 다르며, 국가마다 법이 다르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유족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디지털 유산을 방치하면 여러 문제가 생긴다. 고인의 계정이 해킹될 수 있고, 사후 신원 도용에 악용될 수 있다. 암호화폐나 온라인 금융 자산이 영원히 묻힐 수도 있다. 가족에게 꼭 필요한 사진과 기록은 접근하지 못한 채 사라질 수 있다. 반대로, 고인이 생전에 공개하고 싶지 않았던 사적 정보가 유족에게 노출될 수도 있다. 디지털 유산 관리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기억, 자산, 프라이버시, 가족관계, 상속, 애도가 얽힌 새로운 죽음의 문제다.

■ 구글·애플·메타가 먼저 움직였다

디지털 유산 관리의 필요성을 가장 먼저 제도화한 곳은 거대 플랫폼 기업들이었다. 구글은 2013년 ‘휴면 계정 관리자’를 도입했다. 사용자가 일정 기간 계정 활동을 하지 않을 경우, 데이터를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전달하거나 계정을 삭제하도록 미리 설정할 수 있는 기능이다. 이는 디지털 사후 관리의 초기 모델이었다.

애플은 iOS 15.2부터 ‘유산 관리인’ 기능을 도입했다. 사용자가 생전에 지정한 사람이 사망 이후 일정한 절차를 거쳐 사진, 메모, 파일 등 애플 계정의 일부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메타 역시 페이스북 계정을 사후에 ‘기념 계정’으로 전환하는 기능을 운영하고 있다. 계정을 삭제하지 않고 추모 공간으로 남기거나, 사전에 설정한 대리인이 일부 관리를 맡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기능들은 중요한 진전이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하다. 구글은 구글 안에서, 애플은 애플 안에서, 메타는 메타 안에서만 작동한다. 한 사람의 디지털 삶은 한 플랫폼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이메일, 사진, 금융 앱, 쇼핑몰, 블로그, 암호화폐, 게임 계정, 병원 앱, 공공기관 계정까지 모두 흩어져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통합적인 디지털 유산 관리다.

■ ‘데스테크’ 기업들의 등장

이 빈틈을 파고든 것이 이른바 데스테크(Death Tech) 기업들이다. 죽음과 기술을 결합한 새로운 산업 영역이다. 클로커, 굿트러스트, 에버플랜즈 같은 기업들은 디지털 금고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용자는 생전에 중요한 계정, 비밀번호, 금융 정보, 유언, 보험, 의료 지시서, 가족에게 남길 메시지 등을 정리해둘 수 있다. 사망 이후에는 지정된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가 전달되거나, 계정 삭제와 자료 보존 절차가 진행된다.

이 서비스들은 단순한 비밀번호 보관함이 아니다. 일종의 사후 인생 관리 플랫폼이다. 어떤 사진은 남기고, 어떤 계정은 지우며, 어떤 기록은 가족에게 전달하고, 어떤 정보는 끝까지 비공개로 둘 것인지를 생전에 설계하는 것이다. 디지털 유산 정리사는 바로 이 지점에서 등장한다. 그는 기술자이면서 상담자이고, 유품 정리사이면서 기록 관리자이며, 때로는 상속 절차의 안내자이기도 하다.

■ 가장 어려운 문제는 법과 윤리다

디지털 유산 관리에서 가장 복잡한 쟁점은 법과 윤리다. 유족은 고인의 계정에 접근할 권리가 있는가. 고인의 이메일과 메시지는 상속 재산인가, 사적 인격의 일부인가. 고인이 생전에 명시적으로 동의하지 않았다면 가족이라도 볼 수 없는가. 플랫폼 기업의 약관과 가족의 상속권이 충돌하면 무엇이 우선하는가.

미국에서는 ‘개정 통일 디지털 자산 수탁 접근법’이 제정되어 수탁자가 고인의 디지털 자산에 접근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각 서비스 기업의 약관이 강력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분쟁이 적지 않다.

유럽에서는 개인정보보호법과 사후 데이터 권리 문제가 맞물려 논의되고 있다. 일부 판결은 유족의 접근권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디지털 데이터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한 사람의 정체성과 기억이 담긴 저장소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법원은 비교적 일찍 디지털 계정의 상속 가능성을 인정한 바 있다. 반면 미국은 프라이버시 보호를 이유로 유족의 접근을 더 엄격하게 제한하는 경향이 있다. 국가마다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국경을 넘나드는 글로벌 플랫폼 시대에는 법적 혼란이 커질 수밖에 없다.

■ AI는 죽음 이후의 존재 방식을 바꾸고 있다

미래의 디지털 유산 관리는 단순한 계정 정리에 머물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죽은 사람의 목소리, 사진, 영상, 글, 대화 기록을 학습해 사후에도 대화할 수 있는 아바타를 만들고 있다. 아마존, 스토리파일, 히어애프터 AI 같은 기업들은 고인의 생전 기록을 바탕으로 유족과 대화하는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가족은 세상을 떠난 부모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고, 손주는 직접 만나지 못한 조부모와 대화하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이것은 분명 위로가 될 수 있다. 사별의 고통을 줄이고, 가족사를 보존하며, 교육적·기록적 가치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위험하다. AI 아바타는 정말 고인인가. 고인이 생전에 자신의 목소리와 기억을 이렇게 사용해도 된다고 동의했는가.

디지털 유산 정리는 새로운 효도이자 새로운 자기결정권이다. 디지털 유산 정리는 죽음을 준비하는 행위이지만, 실은 삶을 정리하는 행위다.내가 남기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지우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가족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나의 사진, 글, 기록, 돈, 관계, 비밀은 어떻게 처리되기를 원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일은 자기 삶에 대한 마지막 편집권을 갖는 일이다. 동시에 남겨진 사람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생전 디지털 유산 목록을 작성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가족 또는 신뢰할 수 있는 대리인을 지정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플랫폼 기업들은 사후 계정 처리 절차를 더 명확하게 안내해야 한다. 법은 고인의 프라이버시와 유족의 접근권 사이에서 균형 있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고령층을 위한 디지털 유산 교육이 필요하다.

민병두 프로필 ▶

現 뉴스투데이 회장 / 前 20대 국회 정무위원장 / 前 보험연수원장 / 前 문화일보 정치부장 워싱턴특파원 / 저서로 '빛의 혁명', '도시는 사람이다', '웰빙이 아니라 웰리타이어링이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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