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란 전쟁 최악 시나리오] 끝모를 중동 사태…'수출 버팀목' 반도체 공장 멈추나
카타르 라스파한 소재 카타르에너지LNG의 생산 시설 전경. 카타르에너지LNG 제공
중동 사태가 장기화하는 국면을 띠면서 반도체 업황에 먹구름이 드리울 거란 염려가 커진다. 헬륨, 브롬 등 주요 소재의 수급 불안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종전 시기가 멀어질수록 물류비 인상, 데이터센터 투자 위축 가능성 등이 경영환경을 짓누를 공산이 크다.
일단 미∙이란 전쟁 영향권 속에서도 국내 반도체 업황은 여전히 좋은 편이었다. 1일 산업통상부가 발표한 3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액은 861억3000만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48.3% 증가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존 최대였던 지난해 12월(695억 달러) 기록을 크게 뛰어넘은 수준이다. 일등공신은 역시 반도체였다. 전년 동월 대비 151.4% 폭증한 328억3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첫 300억 달러 시대를 열었다. 인공지능(AI) 서버 투자 확대로 인해 메모리 가격이 폭등한 것이 배경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이런 호재가 계속될 수 있을지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빙현지 산업연구원 글로벌산업협력연구실 전문연구원은 최근 내놓은 ‘미국-이란 충돌과 호르무즈 리스크:공급망 시나리오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호르무즈 통항 제한에 따른) 반도체의 직접 비용 충격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이는 에너지 가격의 직접 투입 효과만 반영한 결과”라면서 “핵심 원자재의 물량 차질이 발생할 경우 실제 산업 충격은 추정치보다 더 크게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업종은 헬륨·특수가스 등 공정용 소재 공급 차질과 장비 운송 지연, 물류비 상승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게 빙 연구원의 판단이다.
헬륨의 경우 카타르가 전 세계 공급량의 3분의 1을 생산한다. 헬륨 매장량은 101억㎥로 세계 최대 규모다. 미국(84억 9000만㎥), 알제리(82억㎥), 러시아(68억㎥)도 헬륨 매장량 상위 국가다. 한국의 헬륨 수입 규모 자체는 크지 않지만 웨이퍼 식각·냉각 등 반도체 공정에 활용된다는 점에서 공급망 위기에 노출돼 있다는 염려가 나온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한국은 지난해 헬륨 수입량의 약 64.7%를 카타르에서 조달했기 때문에 공급망 위기로 가장 취약한 국가”라면서 “이란 분쟁 장기화와 카타르의 천연가스 공급 차질 지속으로 아시아 반도체 공급망이 헬륨 부족으로 인한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향후 헬륨 공급 부족이 심각한 시나리오를 가정할 경우 헬륨 현물 가격이 50%~200%까지 급등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브롬 역시 공급망 균열에 타격이 큰 소재다. 브롬은 반도체 기판(PCB)의 난연제와 세정제 원료인데, 한국의 이스라엘 브롬 수입의존도는 90%가 넘는다.
지난달 27일 화물선이 아라비아만을 지나 아랍에미리트 앞바다의 호르무즈 해협을 향해 항해하고 있다. AP/뉴시스
또 다른 문제는 물류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는 전체 물류의 90% 이상을 항공으로 운송하고 있는 데다 중동을 경유하는 경우도 많지 않다. 중동 내 생산시설도 없다. 하지만 지정학적 리스크가 길어지면 물류비 상승의 여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빙 연구원은 “(공급망) 대체는 가능하지만 공급선 제한과 장기 계약 및 물류 전환 제약이 존재한다”고 짚었다.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 주요 원재료에 대해 어느 정도 비축을 해둔 만큼 지나친 우려는 불필요하다는 분석도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헬륨 등이 카타르에서 생산이 많이 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공급망 의존도가 높은 건 사실”이라면서도 “(한국 반도체 산업은) 이전에도 수 차례 공급망 문제를 거쳤고, 적어도 6개월가량은 비축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주요 업체들은 과거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 보복 등을 거치면서 핵심 소재 및 부품에 대한 재고 물량을 늘리거나 공급 루트를 다변화했다. 김 연구원은 이어 “공급 축소에 따른 가격 인상은 불가피할텐데, 대체 공급선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지속해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정부는 상반기까지 주요 원료의 수급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김정관 산업부장관은 전날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언론에서 우려하는 헬륨, 황산, 수액제 포장재, 에틸렌 가스 등은 현재 상반기까지는 정상적으로 수급이 이뤄질 전망”이라고 강조했다.
오현승 기자 hs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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