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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목요세평] AI와 로봇으로부터 소외된 인간 시대

바야흐로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일상의 풍경을 바꾸는 시대다. 단 몇 초 만에 정교한 문장을 만들고 화려한 그림을 그려내는 기술의 발달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목요세평] AI와 로봇으로부터 소외된 인간 시대

김명순 대전문인총연합회장

바야흐로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일상의 풍경을 바꾸는 시대다. 단 몇 초 만에 정교한 문장을 만들고 화려한 그림을 그려내는 기술의 발달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 눈부신 진보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역설적으로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깊은 소외와 공허함을 마주하고 있다.

편리함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이 ‘기술 과잉’의 시대에 인간의 자리는 어디인지 자문하게 된다.

가장 우려스러운 지점은 인간 고유의 영역인 ‘사색과 노동의 즐거움’이 몰수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최근 우연히 마련한 작은 밭에서 채소를 가꾸며 살고 있다. 땀 흘려 얻는 정직한 수확의 기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의 감각이다. 그러나 AI와 로봇이 노동을 대체하면서, 인간은 이러한 희로애락의 발원지인 생업의 현장에서 밀려나고 있다. 노동의 가치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 공허한 공황 상태뿐이다.

또한, 기술의 진보가 인류의 보편적 평화를 위협하는 현실도 비극적이다.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꿈을 싣고 날아야 할 위성 기술이 오늘날 중동 등 세계 전장에서 드론과 전투기가 되어 하늘을 누비고 있다. 기술이 인간을 살리는 도구가 아닌, 인간을 위협하는 살상 병기로 변질된 현실은 사유적 삶을 누려야 할 평화로운 세상을 가로막는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예술의 영역 역시 마찬가지다. AI가 글을 제조하는 시대라지만, 거기엔 창작자의 고뇌와 숨결이 없다. 붕어빵 기계에서 똑같이 찍혀 나오는 팥빵이 아무리 매끄러운들, 이른 봄 들녘에서 캔 냉잇국과 어머니의 손맛이 깃든 쑥개떡의 맛을 따라갈 수 있겠는가. 결과물만 덩그러니 남고 과정의 숭고함이 거세된 예술은 ‘알맹이 없는 껍데기’와 같다. 작가의 애환과 시대의 아픔이 투영되지 않은 문장은 독자의 영혼을 울리는 정서적 주파수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것은 기술의 속도가 아니라 ‘인간다움의 복원’이다.

생산은 기계가 하더라도 그 혜택이 인간에게 돌아가 사람이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하며 사유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시급하다. 또한, 효율성보다 중요한 것은 슬플 때 함께 슬퍼해주고 기쁠 때 같이 웃어주는 정서적 연대다. 우리가 문명이 닿지 않은 원시 시대의 순수함을 동경하는 이유는 그 시대에 기술은 없었어도 ‘사람의 체온’은 있었기 때문이다.

AI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욱 자주 서로의 눈을 맞추고, 생업 현장의 땀방울을 귀하게 여기며, 각자의 내면에 깃든 시적 감성의 등불을 꺼뜨리지 말아야 한다. 기술이 앞서가는 세상보다, 기술을 다스리는 인간의 따뜻한 마음이 앞서가는 세상을 간절히 소망해 본다.

충청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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