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26조 2000억 원 규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두고 긴급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정부·여당과 내용과 방식이 문제라는 야당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추경안이 국회 문턱을 넘기까지 진통이 예상된다. 여야는 오는 10일 본회의에서 추경 편성을 합의 처리하기로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4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중동 사태 대응 등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지난 4월 2일 이재명 대통령은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을 찾아 시정연설을 진행했다. 중동 전쟁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편성한 ‘전쟁 추경안’의 주요 내용을 직접 설명하며 신속한 심사를 국회에 요청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위기일수록 사회적 약자를 더 두텁게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과, 경제 회생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 아래 추가 경정 예산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동 전쟁 위기로 꼭 필요한 곳에 과감하게 투자하면서도, 그 부담이 우리 국민과 경제에 전가되지 않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추경안은 국채를 발행하지 않는 ‘빚 없는 추경’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말씀드린다. 증시·반도체 경기 호황 등에 따른 초과세수 25조 2000억 원과 기금 자체 재원 1조 원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추경 예산을 △고유가 부담 완화(10조 1000억 원) △민생 안정(2조 8000억 원) △산업 피해 최소화 및 공급망 안정(2조 6000억 원) △지방재정 보강(9조 7000억 원) △국채 상환(1조 원)에 투입하기로 했다.
미국이 지난 2월 28일 이란에 대한 군사 행동에 돌입하면서 원유 수급 등에 비상이 걸리는 등 국내 경제 전반에 영향을 받고 있다.
주요 국제기구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우리나라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1.7%로 0.4%포인트(p) 하향조정 했다. 전쟁의 여파를 반영한 것이다. 원유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대한 우려는 다른 국가보다 크다. OECD는 글로벌 경제 성장률에 대해 직전 전망치와 같은 2.9%로 제시했다. 일본의 성장률 전망치는 기존 0.9%로 유지됐으며, 미국은 2.0%로 직전 1.7%보다 되레 0.3p% 상승했다.
지난달 3월 31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전쟁 추경 편성이 결정되면서 여야 간 불편한 기류가 이어지고 있다. 여당은 정부의 추경 편성에 힘을 보태고 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전쟁 추경의 국무회의 의결 전인 지난 3월 27일 최고위원회에서 “경제의 산소호흡기와도 같은 것이다.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고유가·고환율·고물가의 삼중고 위기 상황”이라며 “수출 기업의 피해 최소화와 민생 안정을 위한 종합적인 대응 방안도 폭넓게 마련되고 있다”고 말했다.
문금주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대해 “위기를 예측이 아닌 현실로 직시하고 즉각 행동에 나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번 추경은 선택지가 아니라, 거센 파도 앞에서 국민을 지켜낼 든든한 방파제다. 여야를 막론하고 신속한 처리에 나서야 한다”며 지원 사격에 나섰다.
반면 국민의힘은 전쟁 추경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4월 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 70%에게 최대 60만 원씩 현금을 살포하고 영화와 숙박비 할인, 문화예술 분야 지원까지 포함했다. 영화표까지 나눠주면서 지방선거 표 사겠다는 것”이라며 지적했다.
그는 “돈을 풀면 인플레이션의 속도는 더 빨라지고 풀린 돈이 부메랑이 되어 민생을 강타할 것”이라며 “지방선거만 끝나면 보유세 올리고 담뱃값, 소줏값 올리고 설탕세까지 만들어서 그 돈의 몇 배를 거둬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추경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현금 살포 추경이 아니라 핀셋 지원 추경이 돼야 한다”며 “우리 당은 사업 하나하나 꼼꼼히 검토해서 선심성 예산은 걸러내고 나라와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알짜 추경이 되도록 만들겠다”고 제안했다.
아랍에미리트 라스 알 카이마에서 바라본 호르무즈 해협. 사진=연합뉴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4월 3일 “이번 추경은 한마디로 진단은 고유가인데 처방은 현금 살포인 오진 추경, 가짜 추경”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고유가와 무관한 끼워 넣기 예산은 심사과정에서 과감하게 삭감하겠다”면서 “신재생에너지 사업, 독립영화 제작비 지원, 예술인 지원, 뜬금없는 창업 지원사업 등 이번 추경 목적과 맞지 않는 사업들은 삭감 대상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추경에 우려가 나오는 부문은 물가 상승 압박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 2일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 물가 지수는 118.80으로 전년대비 2.2% 상승했다.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는 전쟁 추경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더 (시기를) 보고 있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전쟁이 얼마나 오래갈지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전반적으로 물가 상승 압력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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