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중장기 경영계획 재검토
성과급 논란·노봉법 시행 맞물려
파업 피해 휴머노이드 대안 떠올라
인건비 부담 줄이려 로봇도입 가속
SK는 MIT와 칩·배터리 AI 개발
삼성·포스코는 협력사 AX 지원
LG 클로이드에 아이작 플랫폼 도입
지난달 23일 삼성전자 노조가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서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지급할 것을 요구하며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성형주 기자
주요 기업들이 최근 사내 업무와 제조 현장에 인공지능(AI)·로봇 도입을 서두르는 것은 ‘영업이익의 N% 성과급’ 요구가 확산하는데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란봉투법)까지 맞물려 협력 업체도 연쇄적으로 비용이 급등할 우려가 커져서다. 기업들은 이에 자체 기술은 물론 외부 빅테크 기술까지 앞다퉈 도입하고 단순 생산직부터 숙련공, 석박사 연구직까지 전방위적으로 AI·로봇을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의 신규 채용은 한층 제한적으로 실시될 것으로 전망된다.
22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그룹 계열사 경영진은 다음 달 1일 대만에서 열리는 ‘GTC 타이베이 2026’에 참석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AI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한다. 엔비디아와 단순 그래픽처리장치(GPU) 수급을 넘어 피지컬 AI 플랫폼 ‘옴니버스’ ‘아이작’ 같은 AI 로봇과 스마트팩토리(지능형 공장) 핵심 기술 협력이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업계는 내다봤다. 엔비디아는 4대 그룹을 포함한 국내 주요 기업들에 관련 기술을 제공하고 있다.
주요 기업들이 지난해 GPU 수급난 이후 다시 엔비디아와 밀착에 나서는 이유는 사내 업무와 제조 현장의 신기술 도입이 급해져서다. 노란봉투법 시행에 더해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서 촉발된 막대한 성과급 요구가 맞물리며 급증하는 인건비 부담을 AI·로봇 대체를 통해 낮추겠다는 것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들은 디지털화와 로봇 도입에 속도를 내서 파업에 대비하려고 할 것”이라며 “성과급 확대를 요구하는 흐름이 거세지고 있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빠른 로봇 도입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주요 기업들은 업종과 직무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AX를 서두르고 있다. 평소 인력과 비용이 대거 투입돼 AX 기대 효과가 큰 조선 업계는 철강 절단·용접·도장 등 숙련공의 손끝에 의존하던 정교한 작업까지 자동화하며 ‘지능형 조선소’ 전환 경쟁에 착수했다. HD현대중공업은 선박 건조 기간을 30% 줄이는 스마트조선소인 FOS를 2030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철강 업계도 포스코가 고열·유해가스가 발생하는 제철소 현장에 4족 보행로봇 ‘스팟’을 이미 투입했다.
AI 대체가 어렵다고 꼽혀온 반도체 분야마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2030년을 목표로 반도체 생산 효율을 50%가량 높이는 AI 팹 구축을 추진 중이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영업이익의 N% 성과급’ 방식을 도입한 만큼 인건비 급등에 선제 대응하는 동시에 메모리 생산을 늘려 시장점유율도 높인다는 구상이다.
석박사급 인재가 필요한 연구개발(R&D) 현장도 예외는 아니다. SK하이닉스와 SK이노베이션은 SK텔레콤이 주도하는 연합체 ‘매사추세츠공대(MIT) 생성형 AI 임팩트 컨소시엄’ 연구에 참여해 반도체와 배터리 R&D에 도입할 AI를 연구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선행 연구인 반도체 신소재 발굴에도 AI를 적극 도입했다. 물질 분석 시간을 75% 단축할 수 있는 ‘AI 물성 예측 시스템(AIPS)’의 정확도를 글로벌 최고 수준인 90%까지 높였다.
현대차 역시 노조 반발을 감수하며 휴머노이드 도입을 앞두고 있다. 로봇 계열사인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를 2028년부터 연 3만 대 규모로 생산하고 대부분을 미국 메타플랜트(HMGMA)를 포함한 자사 공장에 투입할 계획이다. 아틀라스의 연간 유지 비용은 대당 1400만 원 수준으로 1인당 인건비 1억 3000만 원의 10분의 1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는 최근 엔비디아와 협력해 내년 선보일 가정용 로봇 ‘클로이드’에 아이작 플랫폼을 접목하기로 했다. 동시에 2030년까지 전 세계 29개 공장을 AI 공장으로 전환한다.
주요 기업들은 협력 업체 대상 상생 프로그램도 AX 지원으로 집중하는 추세다. 협력 업체는 비교적 단순한 부품 공급 역할인 만큼 AX 효과가 큰 데다 노란봉투법에 따른 인건비 리스크의 주요 관리 대상으로 떠오르면서다. 삼성전자는 1조 원 규모의 펀드를 통한 무이자 대출과 2500여 건의 특허 무상 개방, 무상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포스코는 ‘대·중소 상생형 스마트공장 구축 지원사업’에서 올해 ‘AI 트랙’을 신설했다.
기업에 AI와 로봇 도입이 빨라지면서 신규 채용은 줄어들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AI 도입 기업의 청년 취업자 수는 챗GPT가 출시된 2022년 대비 2024년 92~93% 수준까지 떨어졌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용(B2C) 로봇 상용화는 시일이 다소 걸리겠지만 정교한 하드웨어가 필요하지 않은 산업용(B2B) 로봇 도입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며 “중후장대나 일반 생산직처럼 비교적 정교한 작업이 필요하지 않은데 수십 명이 투입돼야 하는 작업부터 대체될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