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RI 50주년 특집 기획③] 반도체 신화의 숨은 주역
ETRI, 만화책·실물 칩으로 반도체 산업 필요성 설득
열악한 환경 속 32K ROM 등 개발···기술 자립 첫발
ETRI가 뿌린 씨앗, 오늘날 글로벌 K-반도체 경쟁력으로
반도체조차 생소하던 1980년대, ETRI는 만화책과 실물 칩으로 국가 차원의 산업 육성을 이끌고 32K ROM·K8048 등을 개발하며 한국 반도체 기술 자립의 출발점을 만들었다. [사진=ETRI]
"반도체란 무엇인가?"
1980년대 초반 대한민국 경제 부처 관계자들은 이 질문에 제대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미국과 일본이 반도체 기술을 미래 산업의 핵심으로 규정하고 후발 주자의 진입을 막기 위해 반도체 칩 보호법까지 제정하며 패권 전쟁을 벌이던 때, 우리나라는 기술의 개념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때 K-반도체 신화의 첫 페이지를 쓰기 위해 나선 곳이 ETRI(당시 한국전자기술연구소·KIET)였다. ETRI는 대통령에게까지 반도체 실물을 들고 가 설명하고, 쉽게 설명한 만화책을 만들어 뿌렸다. 그리고 그들이 국내 최초 마이크로프로세서 칩을 직접 만들며, 오늘날 'K-반도체 신화'의 첫 페이지를 썼다.
◇ 경제부처도, 대통령도 몰랐던 '반도체'
1980년대 초반, 세계 시장은 이미 반도체 패권을 둘러싼 총성 없는 전쟁터였다. 미국과 일본은 이 작은 실리콘 칩이 미래의 모든 산업을 지배할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집중적으로 자본과 인력을 투입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1980년부터 '반도체 공업육성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이 계획은 1981년에 공식 발표됐으나 이를 실제 정책으로 옮기는 과정은 험난했다. 하지만 그때의 대한민국 인식은 기술 강국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경제 부처나 학계 일각에서는 반도체 산업 육성에 대해 무모한 투자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의견이 적지 않아 정책 입안자들을 설득하고 예산을 확보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됐다
당시 경제수석실 경제비서관이었던 오명 전 과학기술부 총리는 반도체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을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던 그 시절을 회상했다. 오 전 총리는 대통령을 포함한 국무위원들이 이 기술의 가치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모든 변화의 시작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ETRI는 반도체의 중요성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홍보 자료를 만들라는 특명을 받았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만화책 '반도체란?'이었다. 이 만화책은 반도체를 산업의 식량이자 연료로 정의하며 정책가들의 눈높이를 맞췄다. 만화 속 장면들은 당시 우리가 처한 냉혹한 현실을 가감 없이 묘사했다.
이미 기술의 선두에서 저 멀리 달려가는 거인 같은 미국과 일본, 그 뒤를 쫓아 간신히 기술 열차에 올라타는 영국과 독일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그 열차를 타기 위해 갓을 쓴 채 땀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뛰어가고 있는 우리나라 선비의 모습은 당시 많은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오명 전 총리는 회고록에서 "우리는 처음부터 대통령이 반도체에 대해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반도체에 대한 내용을 아예 만화로 만들어서 그것을 보고서로 올렸다. 심지어 반도체 모델을 일본에서 공수해 실물을 가지고 대통령에게 설명하기도 했다"며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두 번이나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반도체 기술을 얼마나 빨리 발전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모든 국무위원은 반도체 공업 육성에 적극 협력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강력한 의지를 바탕으로 정부는 1982년부터 한시적 비상설 기구인 '반도체공업육성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강도 높은 정책이 일관되게 추진되면서 ETRI는 정부 정책 기조에 부응하여 반도체 기술 개발에 모든 역량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 1982년 32K ROM, 한국 반도체 역사의 첫 줄
1989년 2월, ETRI가 4M DRAM 공동개발에 성공함으로써 우리나라도 초고집적 반도체 제조기술을 보유하게 됐다. [사진=ETRI]
국가적 육성 의지가 결집된 후 ETRI는 1982년 미국 VTI 사로부터 32K 기억 용량 ROM(읽기 전용 메모리) 개발에 필요한 기술을 도입했다. 하지만 기술을 들여온다고 해서 곧바로 칩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연구 환경은 상상 이상으로 열악했다. 반도체를 제조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청정실(Clean Room)' 설비조차 국내에는 제대로 가동되는 곳이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미세한 먼지 하나만 칩에 내려앉아도 공정 전체가 실패로 돌아가는 예민한 작업을 연구원들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일궈내야 했다.
연구원들은 도입된 기술을 바탕으로 단순히 칩을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ROM을 설계하고 대량 생산을 위한 공정과 시험 분야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나갔다. 방진복을 입고 땀을 흘리며 청정 시설의 규격과 환경을 직접 정립했다. 기온과 습도, 그리고 공기의 흐름까지 완벽하게 통제해야 하는 기술 표준화 과정이었다. 설계 도면을 분석하고 수만 개의 트랜지스터 회로가 정확한 위치에 놓였는지 확인하는 밤샘 작업이 연구소의 일상이 됐다.
그 결실로 1982년 10월, 메모리 소자인 32K ROM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반도체 기판 위에 약 4000여 단어의 기억이 가능한 고정 기억소자를 집적한 이 성과는 한국 반도체 산업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가져왔다. 32K ROM은 전자게임, 마이크로컴퓨터, 가전제품, 그리고 초기 산업용 로봇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적용되며 우리 기술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 성공은 연쇄 반응의 시작이었다. 1983년에는 64K ROM 개발에 성공했고, 이어 128K와 256K ROM을 연속으로 개발하며 우리 기술진의 역량을 증명해 보였다.
이러한 성과는 당시 반도체 투자를 망설이던 국내 대기업들에게 기술 개발의 가능성을 확신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삼성반도체통신(현 삼성전자)은 ETRI가 닦아놓은 기술적 기반과 공정 표준을 발판 삼아 반도체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후 삼성이 1983년 64K DRAM, 1984년 256K DRAM 개발에 성공하며 세계 메모리 시장을 제패하는 과정에서 ETRI의 연구 경험은 든든한 밑거름이 됐다.
◇ K8048, 한국 반도체 칩 설계 자립의 출발점
반도체 기술의 진정한 핵심은 제조를 넘어 설계하는 능력에 있다. ETRI는 1983년 4월, 국내 최초의 8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 칩 'K8048'을 독자적으로 설계하고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단순히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 칩을 넘어 연산과 제어를 담당하는 컴퓨터의 두뇌를 우리 손으로 직접 그려냈다는 점에서 한국 반도체 설계 역사의 출발점으로 기록된다.
K8048은 CPU, ROM, RAM, 그리고 입출력 포트를 하나의 칩 안에 모두 집적하는 고난도 작업이었다. 수만 개의 트랜지스터를 최적의 위치에 배치하기 위해 연구원들은 머리를 맞대고 씨름했다. 이 과정에서 ETRI는 미국 VTI 사와의 협력을 통해 당시로서는 첨단 기술이었던 반도체 자동설계(CAD) 기술을 확보하고 내재화했다.
이 경험은 이후 한국의 반도체 설계 자동화 연구의 든든한 토대가 됐다. 수만 개의 트랜지스터를 좁은 칩 안에 정교하게 배치하는 설계 경험은 우리 기술진의 역량을 한 단계 끌어올렸으며 이때 배양된 인력들은 훗날 삼성, LG, 현대 등 민간 기업으로 진출하여 한국 반도체 신화를 만드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 '플라이급' 전략, 국내 최초 8비트 마이크로컴퓨터
1983년 3월, 한국전자기술연구소는 우리나라 최초의 8비트 교육용 PC를 개발, 전국 교육기관에 보급해 컴퓨터 대중화에 앞장섰다. [사진=ETRI]
반도체 기술이 성숙해 가던 시기, ETRI는 이 반도체를 장착해 움직일 컴퓨터 국산화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1982년 오길록 전 ETRI 원장이 연구소 내에 '컴퓨터 국산화 연구실'을 처음 만들었을 때 주변의 시선은 싸늘했다. 국산 컴퓨터 개발은 불가능하다는 고정관념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컴퓨터는 방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 거대한 메인프레임 컴퓨터가 지배하던 시절이었고, 우리 기술로 이를 만든다는 것은 무모한 일로 여겨졌다.
이때 오 원장은 권투 경기에 빗대어 자신의 전략을 설명했다. 거대한 메인프레임 컴퓨터를 만드는 일이 '헤비급' 경기라면, 우리가 당장 도전해야 할 영역은 개인용 컴퓨터인 'PC', 즉 '플라이급'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무거운 체급에 덤비기보다 우리가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작은 체급부터 정복해 나가자는 실리적인 접근이었다. 이 전략은 곧 산업계의 동참을 이끌어냈다.
ETRI는 삼보컴퓨터, 삼성반도체통신, 금성사(현 LG), 동양나이론, 한국상역 등 5개 기업과 함께 공동 연구팀을 꾸렸다. 기업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설계 기술을 하나씩 전수하는 과정은 험난했다. 연구원들은 기업 실무자들과 밤을 지새우며 설계 도면을 검토하고 부품을 맞춰 나갔다. ETRI는 단순한 연구소를 넘어 당시 대한민국 컴퓨터 산업의 기술 허브 역할을 수행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83년 3월, 국내 최초의 8비트 마이크로컴퓨터 'HAN-8'이 개발됐다. 정부는 이 컴퓨터 5000대를 일괄 구매해 전국의 교육기관과 공공기관에 보급하기 시작했다. 이는 대한민국에 컴퓨터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학교에 컴퓨터실이 생기고 아이들이 처음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한 역사의 시작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보급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에 컴퓨터는 설치되었지만, 정작 이를 제대로 가동하거나 관리할 수 있는 인력이 거의 없었다. 학교에 중요한 손님이 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선생님들은 부랴부랴 컴퓨터를 켜보려 했지만, 화면이 들어오지 않아 당황하며 연구소로 급하게 전화를 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오길록 전 원장은 당시 연구원들이 겪었던 황당한 일화들을 회상했다. 새벽이고 밤이고 연락이 와서 현장에 달려가 보면, 문제의 원인은 너무나 단순한 경우가 많았다. 컴퓨터 본체의 전원 플러그를 꽂지 않았거나, 구석에 숨겨진 전원 스위치를 찾지 못한 것이 전부였다. 당시 우리 사회가 컴퓨터라는 기계에 대해 얼마나 생소해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이후 청계천 전자상가를 중심으로 컴퓨터들이 풀리면서 PC는 급속도로 가정에까지 침투했다. 국내 PC 산업은 이후 연평균 60%라는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1989년에 이르러서는 전체 전자산업 생산의 11.8%, 수출의 13.1%를 차지할 정도로 거대한 산업군으로 성장했다.
◇ 50년 전의 집념이 일궈낸 세계 최고
ETRI의 작은 연구실에서 시작된 32K ROM 개발과 만화책 한 권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당시 정책 입안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된 '반도체 공업육성계획'과 이를 기술로 뒷받침한 연구원들의 집념은 오늘날 대한민국을 세계 최고의 ICT 강국으로 밀어 올렸다.
40여 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의 위상은 눈부시게 변했다. 당시에는 실물조차 보기 힘들었던 반도체는 이제 국가 전체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핵심 중의 핵심 산업이 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이끄는 거인이 되어 전 세계 IT 생태계를 주도하고 있다. 텅 빈 청정실에서 먼지 한 톨과 싸우며 설계 도면을 살피던 연구원들이 심은 작은 씨앗이 이제는 전 세계가 의지하는 거대한 숲이 됐다.
이제 대한민국 반도체는 새로운 50년을 준비하고 있다. 과거의 도전 정신은 이제 인공지능(AI), 6G 이동통신, 양자 컴퓨팅 같은 미래 기술로 이어지고 있다. 불모지에서 시작해 세계 최강국이 됐고, 남을 따라가는 것을 넘어 이제는 세상의 표준을 만드는 선도 국가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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