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을 가진 모든 시민이
작가가 되는 시대가 도래해
혼종성과 상상력으로 대학과
지식인의 역할을 다시 묻다
“잡문은 오래된 미래” 최근 화제작 『잡문집: 함부로 내던진 돌멩이들』을 펴낸 한 원로 학자는 기자와의 인터뷰 첫머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주인공은 바로 정정호 중앙대 명예교수(영문학)이다. 그에게 잡문은 단순한 글쓰기 형식이 아니라, 문학과 담론의 기원을 다시 호출하는 실천이다. 시 다음으로 오래된 글쓰기 양식이었던 잡문이 왜 지금 다시 우리 앞에 등장해야 하는지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은 분명했다. 지난달 30일, 정 교수와 서면으로 질문과 답을 주고받았다.
정 교수는 잡문의 역사적 위상을 이렇게 짚었다. “잡문의 형식과 내용은 인간의 문자생활에서 시 다음으로 가장 오래된 일반적 글쓰기 양식이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낭만주의 이후 글쓰기가 전문화·귀족화되면서, 누구나 참여하던 담론의 장은 급격히 축소됐다. 이에 대해 그는 “이제는 일부 전업 작가나 등용문을 통해서만 글을 쓰는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습니다”라며, 디지털과 AI 시대에 글쓰기가 다시 시민의 공공 담론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정호 교수가 본인의 모습을 제미나이로 시각화했다. 잡문은 장르와 문학 중심주의를 넘어, 누구나 참여하는 공공 담론으로서 글쓰기의 민주화를 지향한다. AI 시대 대학과 지식인은 상상력과 실천을 바탕으로 현실에 개입하는 새로운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잡문, 문학의 경계 넘어 공공담론 이끌다
잡문은 단순한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론의 전환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정 교수는 “잡문은 기존 문학담론 형식의 해체를 넘어 하나의 인식론 체계의 변화입니다”라고 말한다. 시, 소설, 비평 등 근대적 장르 구분을 허물고 혼융하는 정신이야말로 21세기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어 “잡문은 탈근대적 인식론에 토대를 두고, 기존 전략을 해체하면서 동시에 확장합니다”라며, 해체와 재구성이 동시에 작동하는 담론 방식임을 강조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기존 문학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그는 “잡문은 순수문학 중심주의를 넘어 모든 장르를 포섭하고 혼융하는 문화윤리학”이라고 규정한다. 장르 간 위계를 해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누구나 글을 쓰고 발표할 수 있는 환경을 통해 문학의 민주화를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문해력을 가진 모든 사람이 작가가 될 수 있고 되어야 합니다”라는 정 교수의 말은 ‘만인 문인 시대’에 대한 선언으로 읽힌다.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대학 교육의 문제로 확장됐다. 그는 오늘날 대학이 지식의 재생산에 머무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금 대학에서 가장 필요한 교육은 ‘상상력 교육’입니다.” 기후위기, AI, 전염병, 새로운 자본주의 질서 등 복합적 위기 속에서,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세계를 새롭게 구상하는 능력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는 “상상력은 타자에 대한 공감과 ‘타자되기’를 가능하게 합니다”라며, 상상력 교육이 곧 비판적 교육임을 강조했다.
대학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서도 날선 비유를 던졌다. 정 교수는 소싯적 자신을 포함해 일부 교수를 “학술논문 제조 기능공”이라 비판하며,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를 환기했다. “대학 지식인들은 둔전병이 되어야 합니다.” 평상시에는 연구와 교육에 힘쓰되, 위기 상황에서는 현실 문제 해결에 나서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방관자는 결코 역사를 바꿀 수 없습니다”라는 그의 말은, 상아탑을 넘어선 실천적 지성의 필요성을 강하게 환기한다.
마지막으로 정 교수는 자신의 작업을 하나의 ‘돌멩이’로 비유했다. “이번 잡문집은 기존 문학 담론의 평온한 수면 위에 던진 작은 돌입니다.” 다성적이고 혼종적인 글쓰기가 만들어낼 새로운 담론 지형에 대한 기대도 덧붙였다. “이미 새로운 상황은 먼저 나타났고, 이론은 뒤따를 뿐입니다.” 팔순의 나이에 던진 이 도발적 질문은, 문학과 대학, 그리고 우리 사회의 담론 구조 전체를 향해 잔잔하지만 깊은 파문을 남기고 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이다.
△『잡문집: 함부로 내던진 돌멩이들』을 매우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잡문’을 “오래된 미래”라고 규정하신 맥락에서,
왜 지금 이 형식이 다시 중심 담론으로 호출되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잡문의 형식과 내용은 인간의 문자생활에서 시가(노래) 다음으로 가장 오래된 하나의 일반적인 글쓰기 양식이었습니다. 시, 소설, 희곡, 평론, 수필 등은 모두 그 이후의 양식들입니다.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사람들이면 누구든 자유롭게 담론 행위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영국의 예를 들 때, 아마도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글짓기는 일부 전문적이고 천재적인 사람들만의 작업처럼 독점화, 소수화, 귀족화 되어 크게 축소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이전 신고전주의시대에는 담론의 폭이 훨씬 넓고 다변화 되어 있었습니다. 가령 편지, 일기, 기행문, 신문에세이 등 나아가 심지어 설교까지도 하나의 공공 담론 행위로 일반화되어 있었지요. 그러나 그 후에는 오히려 넓은 의미의 문학 또는 문학 담론의 가능성과 범위가 크게 축소되었습니다. 이제 21세기 초반 제4차 산업혁명 시대와 디지털 시대 나아가 AI와 ChatGPT 시대에 글쓰기는 다시 일반민주 시민담론으로 되돌리고 확산되어야 합니다. 일부 전업 작가들이나 어떤 등용문(신춘문예, 문예지 추천제도 등)을 통해 자격증(?)을 따 글을 쓰는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잡문의 희망은 문학담론의 민주화와 평등화입니다. 이제는 문해력을 가지고 글쓰는 모든 사람이 작가(Writer)가 될 수 있고 되어야만 하고 책이나 또는 어떤 다른 형태로든 출판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양식으로나 주제로 보나 잡문은 이제 우리 시대의 새로운 대중 담론 양식으로 다시 소환되어야 합니다.
△‘잡문’은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하나의 인식론처럼 보입니다.
잡문은 학문 체계를 해체하는 도구입니까, 아니면 확장하는 장치입니까?
잡문은 단순히 기존 문학담론 형식의 해체와 확산뿐 아니라 하나의 인식론 체계의 변화입니다. 오래전에 만들어진 엄격한 장르의 구분인 시, 소설, 희곡, 비평, 수필의 경계를 허물고 혼융하는 정신입니다. 21세기는 위대한 혼종(Hybridity)의 시대입니다. 고정된 경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아니 무너진지 꽤 되었습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전통적인 고전적 글쓰기인 (주로 한자로 이루어졌지만) 시문(詩文) 전통의 온고지신이고 법고창신의 자세로 새롭게 전화(appropriation)시키는 작업입니다. 우리 선현들은 시문으로 당대 시대의 개인의 일상적 삶을 놀라운 정도로 다양하고 풍요롭게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나 “근대”의 범주와 장르개념이라는 괴물이 그러한 글쓰기의 다양성과 풍요성을 크게 약화시켰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잡문은 ‘탈’근대적 인식론에 토대를 두는 것입니다. 탈근대적 인식론은 좋은 근대를 남겨두고 나쁜 근대를 광정(匡正)하여 공공민주담론으로서 문학의 가능성을 회복시키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잡문의 기존(근대의) 전략과 담론체계를 해체하고 확장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전략의 형식과 탈영토화하여 재영토화하는 작업이지요.
△『잡문집: 함부로 내던진 돌멩이들』에서 제시한
‘잡문’의 가치가 기존 문학 중심주의와 어떻게 다른 문제의식을 던진다고 보십니까?
제가 추구하는 잡문의 가치는 기존 근대의 산물인 순수문학중심주의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잡문은 기존의 장르 시, 소설, 희곡, 비평, 수필 등 칸막이 개념을 초월할 뿐 아니라 포월(transcendence)하는 것 입니다. 기존 장르들과 대등한 또 다른 장르의 위치를 새롭게 차지하여 대등해지려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장르들을 포섭하면서 그것들을 융복합하고 혼융하는 혼종(hybridity)의 섞음의 문화윤리학입니다. 칸막이적, 귀족주의적, 독점주의적 문학중심주의를 과감하게 벗어나 문학담론의 관행과 범주를 크게 확장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국민 모두가 원한다면 어떤 등단이나 추천제도를 벗어나 전문 문인 집단들과 달리 누구든지 다양하고 새로운 문학 담론을 생산해내고 어떤 형태로든 발표하고 출판해 낼 수 있는 문학담론의 민주화와 대중화를 지향합니다. 다시 말한다면 만인 문인시대를 꿈꾸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나아가 잡문은 문학 담론의 가능성을 크게 열어젖히고 확산해 나가는 새로운 글쓰기 양식이 될 수 있습니다.
△강조하신
‘상상력 교육’
은 현재 대학 교육의 어떤 한계를 비판하며,
어떤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대학교육은 주로 지금까지 우리 인류 문명과 사회를 만고불변의 진리와 그동안 축적된 지식 체계에 대한 문화적 재생산에만 몰두해왔습니다. 그러나 시대와 역사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전환기에 들어와 있습니다. 기후 변화와 자연재해로 인해 지구 생명 공동체의 진정한 위기가 닥쳤습니다. AI와 ChatGPT 등 디지털 혁명의 시대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고, 코로나와 같은 신종 전염병 등 새로운 재난의 시대가 도래했고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와 금융자본주의를 넘어 새로운 괴수의 형태로 물신주의가 판을 치고 있고, 전 지구적으로 새로운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향한 정쟁과 침략이 일상화 된 새로운 야수의 시대로 돌입하였습니다. 이러한 암울한 대전환기 시대인 지금 대학에서 가장 필요한 교육은 “상상력 교육”입니다. 앞으로 AI가 담당하게 될 지식전수 교육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꿈꾸며 설계하는 꿈과 상상력 교육을 전방에 내세워 어지럽고 위험한 시대를 광정(匡正)하고 인간의 오만과 탐욕으로 병들고 중독된 문명을 치유하고 해독제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상상력 교육은 비판적 교육에 다름아닙니다. 나아가 인공지능(AI)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상상력”입니다. 상상력은 우리의 영원한 테마인 “타자”에 대한 관심과 공감을 불러오고 “타자되기”도 가능케합니다.
△대학 지식인을
‘둔전병’
에 비유하신 의미와,
오늘날 지식인이 현실과 맺어야 할 관계는 무엇입니까?
오늘날 일부 철 없는 대학의 교수들은 상아탑에 홀로 들어앉아 케케묵은 아무도 읽지 않는 학술논문 제조 기능공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일부 교수들은 연구비 사냥꾼으로 자본주의의 전방에서 칼춤을 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 인류 문명과 문화의 중차대한 문제와 위기는 옆으로 재껴둔 채 말입니다. 상아탑 바깥의 현실이란 야시장 바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일부러 외면하는 것일까요? 대학 지식인들은 이제 자신의 학문영역에서도 최전방으로 뛰어야 하겠지만 캠퍼스 밖의 엄청난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학 지식인들이 둔전병(屯田兵)이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둔전병이란 국경지역에서 평화시에는 농사를 짓다가 유사시에는 전투병으로 나서는 사람들입니다. 평시에는 캠퍼스 안에서 연구하고 교육하면서 동시에 캠퍼스 밖 현실에서 어렵고 중대한 일이 생기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뛰쳐나와 지식인으로 그리고 유기적 지성인으로 행동할 자세를 언제나 갖추고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방관자는 결코 역사를 바꿀 수 없습니다. 대학 지식인들은 대학의 담 위에 걸터앉아 대학의 안과 밖의 현실들을 면밀히 주시해야 합니다.
△『잡문집: 함부로 내던진 돌멩이들』이 보여주는
다성적, 혼종적 글쓰기가 앞으로 학문과 글쓰기 문화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전망하십니까?
저는 이번 저의 『잡문집』 글쓰기에 있어 논리나 일관성이 강조되는 근대적 사유를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저는 한마디로 섞음의 미학과 터뜨림의 정치학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오래전부터 섞음을 좋아했습니다. 비빔밥, 볶음밥, 잡채, 섞어찌개, 잡탕밥 등이 그것들입니다. 우리 최고의 고전의 하나인 『춘향전』을 예로 들어보지요. 이 소설에는 주제적인 면에서도 전근대(봉건), 근대, 탈근대 사상들이 섞여 있습니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경험할 수 있지요. 소설 기법적인 면에서도 서양 근대소설이나 모더니즘 소설과는 달리 다양한 장치들이 동원되고 있습니다. 시도 자주 등장하고 동양 고전 인용도 넘쳐나지요. 어떤 면에서 러시아 문학이론가 미하일 바흐친이 제창한 다성적(polyphonic) 소설이지요. 일부 서사적 일관성이나 단일성을 거부하고 이질적이고 풍요로운 목소리들이 불협화음처럼 울려나지요. 소설 『춘향전』은 이질적인 여러 소리들이 함께 어우러져 신분, 성별, 교육, 지역 등의 차이를 넘어 다양한 독자들에게 널리 확산되고 퍼뜨려져서 민족의 고전이 되었습니다. 21세기 새로운 개인주의에 토대를 둔 대중민주주의 시대에는 다성적인 소리들이 울려 퍼지는 쇄신적인 담론양식이 부상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의 요구와 욕망들을 수용할 수 있는 혼종적 담론체계로의 “잡문학”이론과 실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미 언제나 새로운 상황들이 먼저 나타나고 이론은 한참 뒤에 아니 너무 늦게 정립되는 것이 아닐까요?
△『잡문집: 함부로 내던진 돌멩이들』과 관련해서, 대학,교수사회를 포함한 사회 전반의 측면에서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번에 많이 부족한 제가 감히 출간한 『잡문집: 함부로 내던진 돌멩이들』은 시대에 거스르는(against the grain) 의도적이고 도발적인 행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점잖은 기존 문학 담론인 시, 소설, 희곡, 비평, 수필 등의 안전지대라는 평온한 호수의 수면 위에 하나의 작은 돌은 던진 것이지요. 대부분의 점잖고 양심적인 학자나 문인들은 저의 이러한 돌출 행동에 대해 눈쌀을 찌뿌리실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팔순이 된 나이에 뒷방 늙은이로 점잖고 조용히 지내고도 싶었지만 위험하게(?)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대학 재직시에 철 없는 학술논문 제조 기능공으로 오래 지내다가 오랜만에 용기 내어 전통적, 장르적 글쓰기만이 아닌 실로 다양하고 잡다한 종류의 짧고 긴 글들도 탈장르적·비전통적 글쓰기도 21세기 일반 대중시민들의 공공 담론으로써 일정한 역할을 하리라 믿습니다. 제가 수집해 무모하게 출간한 “잡문집”이란 새로운 화두를 함부로 내던졌습니다. 아무쪼록 저의 잡문집이 우리 기존의 문화에 던져진 하나의 작은 겨자씨가 되기를 겸손하게 기대해봅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