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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마른수건' 짜는 트럼프, 엔비디아 GPU 볼모로 또 투자 압박

미국 정부의 투자 촉진 정책으로 자국 내 AI 데이터센터 등 AI 인프라 투자가 확대될 경우 GPU 판매가 늘고, 이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공급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낸드플래시 등 고부가가치 AI 메모리반도체 제품...

'마른수건' 짜는 트럼프, 엔비디아 GPU 볼모로 또 투자 압박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의 엔비디아 사옥. 사진=EPA·연합

[주간한국 이주선 기자]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새로운 투자 압박 카드인 ‘반도체 수출 허가제’를 준비하고 있다. 최근 상호관세 위헌 결정으로 투자 압박 수단이 줄어들자 엔비디아, AMD 등 자국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의 첨단 그래픽처리장치(GPU) 수출을 통제하며 추가 투자를 끌어내겠다는 것이다. 이에 각국 정부와 반도체 기업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 ‘매머드’급 AI 개발 로드맵을 세워둔 상황에서 자칫 GPU를 제때 구하지 못할 경우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엔비디아로부터 블랙웰 26만 개를 들여오기로 한 우리나라도 영향권에 들 수 있다.

로이터통신, 블룸버그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외국 정부·기업들이 엔비디아 등의 AI 반도체를 구매할 때 미국 내 데이터센터 투자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만 구매를 허가해 주는 새로운 규제를 준비하고 있다. 현재 중국, 러시아, 북한 등 미국의 핵심 적대국에 적용하던 수출 제한 조치를 전 세계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AI 개발에 없어서는 안 될 자국산 GPU를 볼모로 세계 각국 정부·기업에 투자를 요구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되고 있다.

AI 반도체 수출 규제는 구매량에 따라 단계적으로 적용될 전망이다. 로이터통신이 입수한 내부 문건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20만 개 이상의 AI GPU를 승인하는 조건으로 상대국·기업에 미국 데이터센터 관련 투자를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10만 개 이상의 AI GPU를 구매하려는 해외 기업의 경우 정부 간 보증을 제공해야 하고 20만 개를 필요로 하면 미국 정부의 반도체 수출 담당자가 현지에 파견돼 점검하는 조건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같은 조치는 미국이 지난해 아랍에미리트(UAE)·사우디아라비아와 체결한 첨단 반도체 수출 계약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앞서 미국 정부는 지난해 11월 UAE 정부 산하 AI 기업인 G42와 사우디 국부펀드(PIF)가 설립한 휴메인에 대미 투자를 약속받고 각각 3만 5000개의 AI GPU 수출을 승인한 바 있다.

이 외에도 엔비디아나 AMD 등 미국 AI 반도체 수출 기업이 판매한 GPU 사용을 항상 모니터링해야 하는 조건도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수입 기업 역시 구매한 GPU를 다른 반도체와 연결해 하나의 거대한 AI ‘클러스터’를 형성하지 못하도록 막는 소프트웨어 설치·사용에 동의해야 한다. 클러스터는 개별 GPU를 고성능 네트워크로 연결해 하나로 묶어 연산 성능을 높이는 기술을 말한다. 이는 중국 등의 기업들이 클라우드를 통해 우회로 미국산 AI 반도체를 이용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다만 이들 규정은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닌 만큼 추후 변경될 수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미국 상무부는 이 같은 보도와 관련해 “미국 기술 스택의 안전한 수출 촉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중동과 역사적인 협정을 통해 수출을 성공적으로 확대했고 그 접근을 공식화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내부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 美 GPU 통제 파장…K반도체 ‘위기·기회’ 공존

미국의 새로운 반도체 수출통제 조치 발표가 임박하면서 세계 곳곳의 AI 개발 사업들이 멈춰 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GPU 판매 승인을 늦출 경우 각국이 사활을 걸고 추진 중인 대규모 AI 프로젝트들이 멈춰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UAE는 AI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전 엔비디아 AI GPU 도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미국 정부로부터 수출 허가를 받기까지 수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우리나라의 AI 개발 프로젝트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AI 3대 강국 도약을 목표로 국가AI컴퓨팅센터 구축 등의 대형 프로젝트를 잇달아 발표하며 엔비디아로부터 AI GPU 26만 개를 확보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올해 AI 관련 예산 역시 10조 1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두 배 가까이 늘렸다. 하지만 미국의 새로운 반도체 규제로 대미 추가 투자 부담을 떠안게 된 만큼, 프로젝트가 최악의 경우 지연될 위기에 처했다. 이로 인해 삼성그룹, SK그룹, 현대자동차그룹 등의 AI 팩토리·데이터센터 구축 계획에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미국의 AI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가 우리 반도체 기업에 있어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 정부의 투자 촉진 정책으로 자국 내 AI 데이터센터 등 AI 인프라 투자가 확대될 경우 GPU 판매가 늘고, 이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공급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낸드플래시 등 고부가가치 AI 메모리반도체 제품 수요도 함께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두 기업의 매출 확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AI 반도체를 본격 전략 자산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며 “단기적으로 각국의 AI 인프라 구축 계획에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발 AI데이터센터용 서버 수요의 확대와 함께 HBM 등 고성능 메모리를 공급하는 우리 기업 역할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위기와 기회가 상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주선 기자 leesun@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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