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 / 사진=LG그룹 홈페이지
리더의 말에는 철학이 담긴다. 전략이 녹아 있고, 조직을 움직이는 방향이 된다. 특히 경영자의 언어에는 기업의 태동부터 성장까지 관통하는 목표의 본질이 압축돼 있다. 한 기업이 역동의 시간을 헤쳐온 도전과 응전의 역사 역시 그 말 속에 담긴다. 우리 산업화의 출발점에서 오늘의 선진 경제에 이르기까지 핵심 역할을 한 경영자들의 언어를 통해 또 다른 도약의 해법을 모색해본다. [편집자 주]
"국가와 사회에 헌신한 의인들을 기리는 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무다." 구본무(具本茂, 1945~2018년) LG그룹 선대회장이 남긴 말이다.
이 문장은 단순한 사회공헌 선언이 아니다. 기업이 사회 속에 존재하는 이유며 마땅히 기업들이 짊어져야 할 무게를 담은 말이다.
구 회장은 LG연암문화재단을 통해 독립유공자와 국가 헌신자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꾸준히 이어갔다.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의무가 아닌 소명으로 여긴 경영자였다.
구 회장은 1945년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회장의 손자로 태어났다. 1995년 LG그룹 회장에 오른 그는 이후 23년간 그룹을 이끌며 LG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냈다. 그러나 그의 경영이 주목받는 이유는 외형 성장보다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이기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신념으로 정도경영을 LG의 핵심 가치로 삼았기 때문이다.
구 회장은 인간 존중과 정도경영으로 LG의 품격을 세운 경영자로도 불린다. 그의 경영 철학의 첫 번째 축은 인간 존중이었다.
구 회장은 "LG의 가장 소중한 자산은 바로 인재들"이라고 했다. 반도체도, 브랜드도, 특허도 아닌 사람이 가장 큰 자산이라는 이 말은 그의 경영 전반을 관통하는 원칙이었다.
그는 경기가 나빠질 때마다 인력 구조조정을 손쉽게 택하는 경영 관행에 선을 그었다. 위기 때일수록 사람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이었다. 실제로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도 대규모 인력 감축보다 체질 개선을 택했다.
인재에 대한 그의 시각은 독특했다. 타고난 재능보다 성실함을, 성실함보다 일에서 의미를 찾는 태도를 더 높이 샀다. 스펙이 아닌 태도를 보겠다는 이 철학은 LG의 채용과 육성 방식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두 번째 축은 정도경영이었다. 구 회장이 말하는 정도경영은 단순히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었다. 윤리와 실력은 별개가 아니라 하나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반칙 없이도 이길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것, 그것이 정도경영의 완성이라는 논리였다.
신의에 대한 강조도 남달랐다. 이해관계자와의 약속을 생명처럼 여기는 이 태도는 재임 기간 내내 LG가 협력사와 고객, 임직원으로부터 신뢰를 쌓게된 토대가 됐다. 계열분리 과정에서 구씨와 허씨 가문이 갈등 없이 LG와 GS로 나뉜 것도 이 신의의 문화가 기반이 됐다는 평가가 많다.
구 회장 재임 기간 LG는 화학과 전자, 통신에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했다. 그리고 LG화학과 LG전자, LG디스플레이가 각 분야 글로벌 선두권에 오른 것은 그 결단의 결과물이다. 특히 LG화학은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세계 최상위권 기업으로 도약하며 구 회장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구 회장은 2018년 5월 별세했다. 향년 73세. 화려한 퍼포먼스보다 묵묵한 원칙을 택한 경영자였다. 국가 헌신자를 기억하는 것을 기업의 책무라 여겼던 그는, 정작 자신이 LG라는 조직에 조용히 헌신한 인물이기도 했다.
"어떻게 이기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그의 신념은 결과만을 향해 달리는 오늘의 경영 환경에서 더욱 묵직하게 울린다. 정도경영은 느리게 보이지만, 구본무의 LG가 보여준 것처럼 가장 오래가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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