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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리더의 언어⑭]"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1993년 6월 4일, 삼성전자 정보통신부문 디자인 고문 후쿠다 타미오가 작성한 56장 분량의 보고서에는 삼성 디자인의 문제점과 임직원들의 안이한 태도에 대한 비판이 냉정하게 담겼다. 이 회장은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리더의 언어⑭]"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1993년 당시 '신경영 선언'하는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 / 사진=연합뉴스

리더의 말에는 철학이 담긴다. 전략이 녹아 있고, 조직을 움직이는 방향이 된다. 특히 경영자의 언어에는 기업의 태동부터 성장까지 관통하는 목표의 본질이 압축돼 있다. 한 기업이 역동의 시간을 헤쳐온 도전과 응전의 역사 역시 그 말 속에 담긴다. 우리 산업화의 출발점에서 오늘의 선진 경제에 이르기까지 핵심 역할을 한 경영자들의 언어를 통해 또 다른 도약의 해법을 모색해본다. [편집자 주]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이건희(李健熙, 1942~2020년) 삼성그룹 선대회장이 남긴 말이다. 이 회장은 세계 2류 기업을 초일류로 끌어올린 '신경영'의 설계자로도 불린다.

이 회장은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 호텔에 삼성그룹 임원 200여명을 소집했다. 삼성의 현실을 가차 없이 해부했고,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된다고 몰아붙였다. 그 말들은 훗날 '신경영 선언'으로 이어졌다. 그 핵심을 관통하는 한 문장이 바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였다.

1942년 대구에서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이 회장은 일본 와세다대와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수학했다. 1987년 부친의 별세 이후 삼성그룹 회장에 올랐다.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이 드러나게 된 계기는 '후쿠다 보고서' 때문이었다. 1993년 6월 4일, 삼성전자 정보통신부문 디자인 고문 후쿠다 타미오가 작성한 56장 분량의 보고서에는 삼성 디자인의 문제점과 임직원들의 안이한 태도에 대한 비판이 냉정하게 담겼다. 이 회장은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이 보고서를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6월 7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자마자 또 하나의 충격이 기다리고 있었다. 삼성 사내방송팀이 제작한 비디오테이프였다. 세탁기 조립 현장을 담은 그 영상에는 덮개 여닫이 부분의 규격이 맞지 않자 근로자가 칼로 깎아낸 뒤 대충 조립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이 회장은 격노했다.

이 회장은 프랑크푸르트 회의를 보름이 넘도록 이어갔다. 신경영 선언 이후에도 68일간 스위스, 영국, 일본을 돌며 임직원 1800여 명과 350여 시간의 회의와 간담회를 가졌다. 이를 풀어쓰면 A4용지 8500장 분량에 달한다. 한 기업의 총수가 두 달 넘게 현장을 돌며 직접 변화를 설득하고 주입한 전례 없는 방식이었다.

변화의 방향은 단 하나였다. 양(量)에서 질(質)로. 그때까지 삼성은 많이 만들어 많이 파는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이 회장은 그 공식을 뒤집었다. 불량품이 나오면 라인을 세워서라도 고치라고 했다. 1995년 구미 사업장에서는 불량 휴대폰 15만 대를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불태웠다. 이 장면은 이 회장의 경영 의지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지금도 회자된다. 당시 소각된 제품의 가치만 500억원에 달했다.

신경영의 또 다른 축은 인재였다. 이 회장은 2002년 6월 인재 전력 워크숍에서 "탁원한 천재 한 명이 10만~20만 명을 먹여 살린다"며 인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후 핵심 인재에 대한 파격적 대우와 영입은 그의 경영에서 일관된 원칙이었다.

반도체·디스플레이·스마트폰으로 이어지는 삼성의 기술 도약 이면에는 전 세계에서 끌어모은 인재들이 있었다. 서울대 출신만 뽑던 채용 관행을 깨고 지방대·여성·외국인 인재를 적극 영입한 것도 이 회장 시대의 변화였다.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다만 같은 실패가 반복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에세이에 "실패는 많이 할수록 좋다"고 했다. 실패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조직은 성장할 수 없다는 냉정한 통찰이었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것도 그의 방식이었다.

이같은 경쟁력은 외환위기가 덮쳤던 1997년 이후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배경이 됐다. 경쟁사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동안 삼성은 반도체 투자를 오히려 늘렸고, 그 베팅이 2000년대 삼성의 폭발적 성장을 이끌었다.

이 회장이 강조한 또 하나의 가치는 공생이었다. "기업은 혼자서만 잘해서는 안 되는 생명체다." 협력사, 고객, 사회와 함께 성장해야 기업도 지속될 수 있다는 인식이었다. 반도체·스마트폰·디스플레이로 이어지는 삼성의 생태계 전략은 이 철학의 산물이기도 하다.

신경영 선언 이후 30여 년, 삼성전자는 세계 반도체 시장의 정상에 올랐고 스마트폰 글로벌 1위 자리를 오랫동안 지켰다. 브랜드 가치는 세계 5위권에 진입했고, 삼성이라는 이름은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아이콘이 됐다. 2류 기업이라는 자기 진단에서 출발해 초일류를 향해 달려온 여정이었다.

이 회장은 2020년 10월 별세했다. 향년 78세. 그러나 "다 바꿔라"는 명령은 아직도 삼성 곳곳에 살아 있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조직은 변화에 잡아먹힌다. 이건희가 프랑크푸르트에서 쏟아낸 말들은 그 진리를 가장 직설적으로 표현한 경영어였다. 그리고 그것은 삼성 한 기업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익숙함에 안주하려는 모든 조직에게, 그의 말은 여전히 불편하고 유효한 질문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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