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경제환경 속에서 경영인의 리더십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에 본 칼럼은 리더십 개발, 다양한 리더십 유형, 미래 사회에 필요한 리더십 등 리더십과 관련된 폭넓은 주제를 연재한다. / 편집자주
보십시오.
우리 손안의 작은 반도체가 세계의 정보를 집어삼키고, 우리가 만든 배가 오대양의 파도를 가르며, 우리가 부르는 노래가 인종과 언어의 벽을 넘어 지구촌의 맥박을 뛰게 합니다.
최근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가 오스카상 장편 애니메이션상 (Best Animated Feature)과 주제가상 (Best Original Song)으로 역사적 2관왕 수상을 기록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20여 가지가 넘는 분야에서 세계의 정점(頂点)에 우뚝 서 있습니다.
'K-'라는 접두사는 이제 단순한 국적의 표시가 아니라, 세계가 신뢰하는 일종의 구원 표상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일까요?
왜 유독 철도(鐵道)만은 그 찬란한 '세계 1위'의 반열에서 멈칫거리고 있는 것입니까?
매일 아침 우리를 실어 나르는 그 육중한 철마(鐵馬)는 왜 반도체처럼 영민하지 못하고, K-팝처럼 유연하지 못한 것일까요?
안개 속에 숨은 거대한 '이익의 둥지’
철도는 본래 '선(Line)'의 미학입니다.
출발지와 목적지를 잇는 가장 완고하고 정직한 궤적이지요.
하지만 이 정직한 궤도 위에는 보이지 않는 안개가 자욱합니다.
바로 공공서비스라는 미명(微名) 아래 뿌리 깊게 박힌 관행(慣行) 카르텔(Cartel)의 안개입니다.
철도는 국가의 혈맥입니다.
혈맥이 튼튼해야 몸이 사는데, 불행히도 이 혈맥에는 국가 예산이라는 숙주를 빨아먹는 관행(慣行)의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역사적 유산처럼 내려온 이 견고한 조직은 정부의 비호 아래, 그들만의 정교한 '이익 안분(案分)' 시나리오를 짜고 있습니다.
기술의 혁신보다는 '내 밥그릇의 보존'이 우선이고, 서비스의 질 향상보다는 '퇴직 후의 자리'가 더 중요한 이들에게 세계 1위라는 목표는 오히려 그들의 안락한 둥지를 뒤흔드는 위협일 뿐입니다.
닫힌 성채와 빨대 경제의 역설
철도가 세계 1위로 나아가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우리가 철도를 여전히 '나눠 먹기식 성채' 관행(慣行)으로 방치했기 때문입니다.
반도체 리더들이 나노(Nano)의 세계에서 무한 경쟁을 통해 우주를 보듯, 철도 리더십은 관료와 공기업, 그리고 특정 협력업체로 이어지는 폐쇄적인 관행(慣行) 사슬 안에 갇혀 있습니다.
이것은 '관행(慣行) 경제'입니다.
국민의 혈세가 투입되는 국가 예산은 철도 산업의 고도화를 위한 연료가 되어야 마땅하건만, 실제로는 관행(慣行) 카르텔의 혈관을 채우는 영양분으로 전용되고 있습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이들의 정교한 관행(慣行) 논리는 늘 '공공성'과 '안전'이라는 방패 뒤에 숨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공공성은 효율과 혁신에서 나오며, 진정한 안전은 투명한 경쟁 속에서 담보되는 것입니다.
외국의 거울: 궤도를 바꾼 혁신의 사례들
눈을 돌려 세계를 보십시오.
철도 강국들은 이미 '독점의 안락함'이라는 관행(慣行) 마약에서 깨어났습니다.
1987년 일본 국철(JNR)은 37조 엔이라는 천문학적인 부채를 안고 파산 직전에 몰렸으나, 분할 민영화를 통해 JR이라는 혁신의 상징으로 거듭났습니다.
민영화 이후 JR 7개 사는 수조 원대의 흑자 기업으로 변모했고, 정부 보조금에 연명하던 관행(慣行) 기생의 구조를 스스로 타파했습니다.
경쟁이 도입되자 역사는 인기 있는 백화점이 되고, 열차는 지역 문화를 담는 아름다운 그릇이 되었습니다.
독일의 'DB(도이체반)' 역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며 상하 분리(시설과 운영의 분리)를 단행했습니다.
철도 궤도라는 '공적 공간'을 민간의 창의적 운영자들에게 개방함으로써, 유럽 대륙을 잇는 거대한 물류와 여객의 혁신을 이끌어냈습니다.
이들이 세계 1위의 위상을 지키는 비결은 단순히 기술력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관료적 관행(慣行) 카르텔이 예산을 좀먹는 것을 막고, 오직 '고객의 만족'만이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시장의 엄격한 규율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다가오는 '특이점(Singularity)', 경고를 무시하지 마라
더욱 무서운 것은 이제 철도 산업이 맞이할 파도입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 로봇, 그리고 인류의 지능을 넘어서는 '특이점(Singularity)'의 기술은 이미 철도 궤도 위를 덮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보조가 아니라 산업의 근간을 뒤흔드는 지각변동입니다.
만약 철도 산업이 관행(慣行) 카르텔의 좁은 이익에 매몰되어 인공지능이 설계하는 최적의 물류 시스템과 로봇이 수행하는 정밀한 유지보수를 거부한다면, 결과는 자명합니다.
진화하지 않는 종은 멸종하듯, 특이점 기술을 수용하지 못하는 한국 철도는 세계 시장에서 완전히 도태될 것입니다.
하드웨어적 속도에만 집착하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인공지능이라는 혼(魂)을 탑재하고 로봇이라는 근육을 활용해 '지능형 철도'로 거듭나야만 생존할 수 있습니다.
궤도를 이탈하는 용기
철도는 국가의 미래를 싣고 달리는 상상력의 플랫폼이어야 합니다.
이제 철도 리더십은 '디지로그'의 지혜를 발휘하기에 앞서, 먼저 이 거대한 관행(慣行) 기생의 사슬을 끊어내고 미래 기술을 향해 문을 열어야 합니다.
철도 경제의 리더들이여, 이제 레일이라는 물리적 구속과 관행(慣行) 카르텔이라는 심리적 구속에서 벗어나십시오.
철도는 더 이상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공간 산업'이며 '시간 산업'이며, 무엇보다 인공지능과 함께 인류의 내일을 투명하게 나르는 신뢰의 산업이어야 합니다.
안일한 공생(共生)의 궤도를 이탈하는 용기만이, 대한민국 철도를 21번째 세계 1위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썩은 살을 도려내고 미래의 기술을 이식하는 아픔 없이는, 결코 세계의 정점에 서는 환희를 맛볼 수 없습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피터 드러커
배재우 스토리월드컨설팅 대표ㆍ경영행정학 박사
/ 배재우 스토리월드컨설팅 대표·경영행정학 박사
키워드
#리더십경영
관련기사
[리더십 경영] (66) 유럽의 몰락과 공공 서비스 유럽 사회복지 시스템화
[리더십 경영] (65) 무너진 독일 철도의 정시성 신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경고
[리더십 경영] (64) 사람이 문제이고 사람이 답이다
[리더십 경영] (63) 낡은 하드웨어의 늪과 소프트웨어 혁신의 갈림길
[리더십 경영] (62) 공공 리더십의 대전환, '관리'를 버리고 '통합'을 입어라
배재우 스토리월드컨설팅 대표
다른기사 보기 +
저작권자 © 철도경제신문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