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I 생성 이미지.
로봇수술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단순히 의사의 손을 정밀하게 보조하던 '기계 장비'에서 데이터를 학습하고 수술 과정 전반에 개입하는 AI 플랫폼'으로 진화하면서다. 생성형 AI와 로봇 기술이 결합된 피지컬 AI가 임상 현장에 본격 투입되면서 기존 의료기기 기업 중심이던 시장 구도 역시 빅테크와 AI 기업까지 가세한 플랫폼 경쟁으로 확장되는 양상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다빈치 이후 20년 기계 경쟁의 종식이자 데이터 기반 수술 생태계 경쟁의 시작으로 해석한다. 최대 52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이 시장을 둘러싸고 수술실이 새로운 기술 패권의 전장이 되고 있다.
24일 보건산업진흥원 데이터에 따르면 의료 피지컬 AI 시장은 2030년까지 최대 360억~520억달러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며, 이 중 수술 로봇이 약 40%를 차지하는 핵심 영역으로 분석된다.
특히 수술 로봇 시장은 연평균 15% 이상 성장세가 예상되며 최소침습수술(MIS) 확대와 고령화, 의료 인력 부족이 수요를 동시에 끌어올리는 구조다. 이는 단순 의료기기 시장을 넘어 'AI 기반 의료 인프라 시장'으로의 확장 가능성을 시사한다.
피지컬 AI에서 주목되는 수술 로봇이 기존의 로봇수술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판단 기능의 개입' 여부다. 기존 로봇수술은 의사가 모든 수술 경로와 판단을 직접 수행하고, 로봇은 이를 정밀하게 구현하는 ‘수동형 도구’에 가까웠다. 즉, 로봇은 손 떨림을 보정하고 미세 조작을 가능하게 하는 정밀 기계에 머물렀으며, 수술 과정 전반의 의사결정은 전적으로 집도의에 의존하는 구조였다.
반면 피지컬 AI 기반 수술 로봇은 생성형 AI와 데이터 분석 기술이 결합되면서 수술 전·중·후 전 과정에 걸쳐 기능이 확장되고 있다. 수술 전에는 환자 영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적 수술 경로를 설계하고, 수술 중에는 실시간 영상 인식을 통해 위험 구조를 식별하거나 다음 수술 단계를 제안하는 등 ‘판단 보조 기능’이 작동한다. 수술 후에는 데이터를 축적·분석해 결과를 학습하는 구조까지 포함된다.
특히 Vision-Language-Action(VLA) 모델 기반 기술은 영상 정보와 언어 이해를 결합해 상황을 해석하고 행동까지 연결하는 수준으로 발전하면서, 단순 보조를 넘어 ‘행동 가능한 AI’가 수술 환경에 진입하는 초기 단계로 평가된다.
이 같은 변화는 로봇수술의 개념을 ‘정밀 기계’에서 ‘지능형 시스템’으로 전환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 AI 기반 수술에서는 수술 정확도 향상과 함께 합병증 감소, 회복 기간 단축 등의 임상적 효과가 보고되며 기술 도입에 대한 의료 현장의 수용성도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실제 국내 상급종합병원의 임상 데이터는 이러한 플랫폼화의 위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최근 단일 기관 세계 최초로 로봇수술 5만례를 달성한 세브란스병원과 누적 2만 6000례를 기록한 삼성서울병원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들 병원의 분석에 따르면 피지컬 AI 보조 수술을 받은 환자의 평균 입원 기간은 2.3일로 개복 수술(5.7일) 대비 60% 가량 단축됐으며, 악성 질환 재입원율 또한 0.54%로 개복 수술(3.92%)보다 현저히 낮았다. 이는 고도화된 데이터 플랫폼이 환자의 안전과 병원 운영 효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고 있음을 시사한다.
경제적 파급력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국내 민간 보험사의 로봇수술 실손보험 청구액은 지난 한 해에만 1170억 원 규모로 전년 대비 17.2%나 급증했다. 고가의 시술 비용에도 불구하고 '정밀함'과 '빠른 회복'이라는 확실한 가치에 환자들의 지갑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술의 진화 속도에 비해 제도적 뒷받침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산업진흥원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의료진의 76%가 AI 및 로봇수술 시 발생할 수 있는 사고의 법적 책임 소재가 불명확하다는 점을 가장 큰 우려로 꼽았다. 또한 2025년 시행된 ‘디지털의료제품법’에도 불구하고, 외부 데이터 결합 범위나 피지컬 AI 별도 수가 인정 등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아직 미비한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이제 단순한 장비 도입 지원을 넘어 ‘K-의료 AI’의 글로벌 표준화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영미 한림대의료원 도헌디지털의료혁신연구소 커맨드센터 부센터장은 "피지컬 AI 시대는 무엇을 자동화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인간이 수행해야 하는가를 다시 정의해야 하는 전환점"이라며, "의료 서비스의 본질인 인간 중심의 돌봄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기술을 설계하고 활용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병원 설계 단계부터 로봇 운영을 고려한 건축 가이드라인을 수립하고, 지역사회 돌봄 서비스까지 데이터가 이어지는 통합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며, "대한민국을 거점으로 하는 ‘AI-Bio Alliance’ 구축 등을 통해 한국형 의료 AI 거버넌스를 글로벌 표준으로 확산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글로벌 빅테크들이 이 520억 달러 규모의 거대 플랫폼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각축전을 벌이는 가운데, 우리 정부와 산업계가 규제의 빗장을 풀고 데이터 주권을 확보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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