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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로드픽] IMO가 바다 회계 기준 바꾼다… 해운은 비용 전쟁, 조선은 인증...

사이버보안은 IT 부서의 비용 문제가 아니라 선박의 운항 자격과 직결되는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해적 및 무장강도 문제도 같은 흐름에서 읽힌다. IMO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선박 대상 해적 및 무장강도 사건은 전년...

[로드픽] IMO가 바다 회계 기준 바꾼다… 해운은 비용 전쟁, 조선은 인증...

-자율운항·호르무즈 안전통로·사이버보안·대체연료 규제 동시 논의… 선박 경쟁 기준 ‘건조’서 ‘운항 검증’으로 이동

-해운협회, 회원사 비용 부담 커지고 HMM은 리스크 관리 시험대… 조선 3사 고부가 수주와 책임 확대 사이에 섰다

국제해사기구(IMO)가 이달 영국 런던에서 여는 제111차 해양안전위원회(MSC 111)는 표면적으로는 해사 안전 규정을 손보는 회의다. 그러나 회의의 무게는 그보다 훨씬 무겁다. 선박 한 척의 값어치가 무엇으로 매겨질지, 항로의 안전성이 어떤 기준으로 평가될지, 조선소가 선주에게 팔아야 할 상품이 ‘배’에 머물지 ‘운항 가능한 시스템’으로 넓어질지를 가르는 분기점이 될 수 있어서다.

6일(현지시간) IMO에 따르면 이번 MSC 111에서는 자율운항선(MASS·Maritime Autonomous Surface Ships) 국제 안전규범을 비롯해 아라비아해·오만해·걸프 지역과 호르무즈 해협 주변 정세가 해운과 선원 안전에 미치는 영향, 해상보안 강화, 해적 및 무장강도 대응,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대체연료 선박 안전규제, 장거리 식별·추적 체계(LRIT), 해양 디지털화 전략 등이 핵심 안건으로 다뤄질 예정이다.

이번 회의가 주목받는 이유는 선박을 바라보는 국제 해운시장의 기준 자체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선박의 경쟁력이 선체 성능과 엔진 효율, 운항 능력에 집중됐다면 앞으로는 보험, 통신, 데이터, 사이버보안, 연료 안전성, 국제 인증 체계까지 함께 묶인 형태로 평가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해운업계에서는 이미 “배는 바다에서 움직이지만, 운항은 보험과 금융 승인 위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나온다. 선박이 물리적으로 항해 가능하더라도 보험사가 담보 범위를 제한하면 운항은 어려워진다. 선체 상태가 양호해도 사이버보안 체계가 미흡하면 화주나 항만이 기피할 수 있다. 암모니아·수소 같은 차세대 연료도 연비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누출·폭발·환기 대응 체계가 국제 기준에 맞게 검증되지 않으면 선주 입장에서는 발주 자체가 부담이 된다.

MSC 111의 핵심 의제는 자율운항선 국제 안전규범이다. IMO는 이번 회의에서 비강제 형태의 MASS 코드를 최종 확정·채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초안은 자율운항선의 기술 기준을 넘어 운항 체계 전반을 다루는 수준에 가깝다. 조사·인증과 승인 절차, 위험평가, 시스템 설계, 소프트웨어 운용 원칙, 안전운항 관리, 경보체계, 인력 배치와 교육·훈련, 항해 안전, 통신 연결성, 원격운항, 선체 복원성과 화재 보호, 해상보안, 수색·구조, 화물 운송, 계류, 기계·전기 설비까지 포함됐다.

MASS 코드가 중요한 이유는 자율운항 기술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아서다. 실제로는 해상사고 발생 시 책임을 누구에게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국제 기준에 가깝다. 지금까지 해상사고의 책임 구조는 선장과 선주, 운항사, 선급, 항만당국을 중심으로 형성돼 왔다. 자율운항 체계에서는 소프트웨어 개발사와 위성통신 사업자, 원격운항센터, 데이터 공급업체, 사이버보안 업체까지 책임 구조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자율운항선 충돌 사고가 발생했을 때 원인이 항해 알고리즘 오류인지, 위성통신 지연인지, GPS 교란인지, 원격운항센터의 대응 지연인지에 따라 손해배상과 보험 처리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선박 사고가 기계적 결함 중심에서 데이터·통신·소프트웨어 리스크 중심으로 이동하는 셈이다. 책임 범위가 넓어질수록 보험료와 인증 비용은 올라가고, 계약 구조도 복잡해진다. 선박 인도 이후 소프트웨어 유지·보수와 보안 업데이트 부담까지 조선소와 운항사에 남을 가능성도 있다.

한국해운협회가 받을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지금까지 협회의 주요 대응 축이 운임, 세제, 환경규제, 선원 문제였다면 앞으로는 사이버보안, 원격운항, 데이터 표준, 보험 담보, 전쟁위험 항로, 선원 재교육 문제까지 함께 다뤄야 할 가능성이 커졌다.

문제는 회원사들의 대응 여력이 균일하지 않다는 점이다. 대형선사는 자체 디지털 운항 체계와 보안 투자 역량을 확보할 수 있지만, 중견·중소선사는 국제 규범 변화에 필요한 비용을 선제적으로 감당하기 쉽지 않다. 사이버보안 시스템 구축, 원격운항 대응 체계, 데이터 관리 인프라, 선원 재교육은 단기간에 끝나는 투자가 아니라 지속적인 운영비 성격이 강하다.

한국해운협회는 앞으로 회원사 전체를 대표하면서도 회사 규모별로 다른 이해관계를 함께 조율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대형선사는 국제 규범 변화에 맞춘 고도화 투자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고, 중소선사는 규제 속도 조절과 비용 부담 완화를 요구할 수 있다. 협회의 역할은 업계 대변을 넘어 비용·책임·정책 조정 기능으로 넓어질 수밖에 없다.

비용 부담도 현실적이다. MASS 코드가 당장 강제 규범으로 시행되지 않더라도 시장은 IMO 논의를 먼저 반영할 가능성이 크다. 보험사와 선급, 항만, 화주들이 이를 새로운 리스크 평가 기준으로 보기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선사들은 선박 사이버보안 점검, 원격운항 대응 매뉴얼 구축, 데이터 백업 체계 마련, 선원 교육, 통신장비 업그레이드 등에 추가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이런 지출은 곧바로 매출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 대응하지 않을 경우 보험료 인상이나 항만 입항 제한, 화주 계약 불이익으로 연결될 수 있다.

책임 구조 변화도 부담이다. 자율운항과 디지털 선박이 확대되면 사고 책임의 경계는 지금보다 훨씬 복잡해진다. 선장의 판단 문제인지, 원격운항센터 대응 지연인지, 소프트웨어 오류인지, 통신 장애인지, 외부 침입 때문인지를 따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 선박보험 체계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영역이 생긴다. 한국해운협회는 향후 표준계약과 표준약관, 선원 책임 범위, 보험 담보 기준 등을 놓고 정부와 보험업계, 선급 사이에서 조정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

호르무즈 해협 인근의 화물선/연합뉴스

호르무즈 해협 문제 역시 협회에는 부담 요인이다. IMO는 이번 회의에서 아라비아해·오만해·걸프 지역, 특히 호르무즈 해협 주변 정세가 해운과 선원 안전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할 예정이다. UAE가 제출한 안전·보안 및 선원 보호 결의안 초안에는 항행의 자유 보장과 필수 물자·승무원 지원 확보를 위한 ‘안전통로’ 필요성이 담겼다. IMO 사무국도 장기간 해당 해역에 머무르는 선원들이 교육·자격증 문제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지침 초안을 준비한 상태다.

안전통로 논의 자체가 위험 신호다. 국제기구 차원에서 안전통로 확보 문제가 공식 의제로 올라왔다는 것은 기존 상업항로의 안정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운시장에서 항로는 지도 위에 그어진 바닷길만을 뜻하지 않는다. 보험증권과 재보험 한도, 선박금융 계약, 신용장, 항만 입항 승인, 화주의 납기 조건이 맞물려야 비로소 작동한다. 특정 해역의 위험등급이 올라가면 선박은 물리적으로 운항 가능하더라도 경제적으로는 멈출 수 있다.

위험도가 높아질 경우 전쟁위험보험료와 선원 위험수당이 오르고, 우회 항해가 늘어나며, 항차가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 항차 지연은 컨테이너 회전율 저하와 선복 부족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에 화주의 납기 지연 클레임까지 겹치면 선사의 부담은 빠르게 커진다. 한국해운협회는 비용 증가를 완화하기 위해 정부·보험업계·국제기구와 협의를 강화해야 하지만, 지정학 리스크 자체를 협회의 협상력만으로 통제하기는 어렵다.

HMM에 미칠 영향은 단기 부담과 중장기 기회가 함께 존재하는 구조다. HMM은 장거리 항로 중심의 원양 컨테이너선사다. 컨테이너 해운에서 중요한 경쟁력은 운임 자체보다 정시성과 네트워크 안정성에 가깝다. 운임이 다소 높더라도 화물이 예정된 일정에 안정적으로 도착해야 화주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과 중동 해역 리스크가 커질 경우 영향은 특정 항로에만 머물지 않을 수 있다. 우회 운항이 늘어나면 항차가 길어지고, 동일 선복으로 처리할 수 있는 물동량도 줄어든다. 컨테이너 박스 회전율이 떨어지면 장비 부족 현상이 발생하고, 주요 항만 체선까지 겹치면 선박 스케줄을 정상화하는 비용도 커진다. 컨테이너 해운에서 지연은 시간 문제가 아니라 자본 효율 문제다. 선박과 컨테이너가 제때 회전하지 못하면 같은 자산으로 창출할 수 있는 매출 규모 자체가 줄어든다.

화주와의 계약 관계도 변수다. 중동 리스크가 커질수록 화주는 운송 지연에 대한 책임을 선사에 묻는 경향이 강해질 수 있다. 반면 선사들은 불가항력이나 전쟁위험 조항을 근거로 방어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대형 화주일수록 선사에 요구하는 기준은 운송 능력을 넘어 공급망 안정성 자체로 이동하고 있다. HMM은 국내 대표 원양선사라는 상징성이 큰 만큼 상업회사 이상의 역할 기대를 받고 있다. 국내 수출기업 입장에서는 글로벌 공급망 위기 상황에서 HMM이 사실상 ‘마지막 물류 안전판’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전쟁위험 확대와 보험 제한, 항만 혼잡, 우회 운항 증가 같은 문제는 선사 한 곳의 역량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반대로 규제 강화가 HMM에 유리하게 작용할 여지도 있다. 사이버보안과 디지털 운항 체계, 선원 재교육, 친환경 선대 전환, 항로 리스크 분석은 초기 투자와 유지비 부담이 큰 영역이다. 규모가 큰 선사는 이 비용을 넓은 선대와 글로벌 네트워크에 분산할 수 있지만, 규모가 작은 선사는 선박 한 척당 부담해야 하는 단위 비용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HMM이 투자 여력과 재무 체력을 유지한다면 IMO 규제 변화는 시장 진입장벽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해양 디지털화 전략도 HMM에 새로운 경쟁 요소가 될 수 있다. 컨테이너 해운은 이미 상당 부분 데이터 산업에 가까워졌다. 선박 위치와 항만 체선, 연료 소모량, 기상 정보, 화물 적재 상태, 환적 일정, 빈 컨테이너 재배치까지 하나의 네트워크처럼 연결돼 움직인다. IMO가 해양 디지털화 전략을 본격 논의하고 관련 위원회와 함께 추진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해운사의 경쟁 기준이 운임 경쟁에서 ‘얼마나 예측 가능한 운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가’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HMM이 이 흐름에 성공적으로 대응할 경우 선복을 공급하는 회사를 넘어 ‘납기 신뢰도’를 파는 선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조건은 까다롭다. 디지털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 보험사와 글로벌 화주들이 요구하는 것은 데이터 신뢰성, 항로 위험 대응 프로토콜, 사이버 사고 발생 시 복구 시간, 선박별 리스크 관리 체계, 위기 상황에서의 대체 항로 운영 능력 등을 수치로 검증할 수 있는 운영 체계다. 앞으로 HMM의 경쟁력은 선복 규모나 운임 수준보다 위험을 얼마나 정교하게 예측·관리하고 이를 시장에 설명할 수 있는가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

(왼쪽부터)통합 HD현대중공업 조선소 야드 전경과 미국 HII 조선소 야드 전경 [사진=각사]

조선 3사에 미칠 영향도 한쪽으로만 보기 어렵다. 겉으로는 호재다. 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은 LNG선, 대형 컨테이너선, 친환경 추진선, 스마트십 분야에서 세계 최상위권 경쟁력을 갖고 있다. IMO가 암모니아, 수소, 메틸·에틸알코올 연료 선박의 안전 지침과 교육체계를 논의하는 것은 한국 조선 3사에 고부가 발주 기회를 줄 수 있다. MSC 111은 수소 연료 선박 안전, 암모니아 화물의 연료 사용, 액화수소 대량 운반, IGC 코드 개정, 대체연료 선원 교육 등을 다룰 예정이다.

이번 기회는 과거 LNG선 호황과 성격이 다르다. LNG선 시대에는 화물창, 보냉재, 추진 효율, 건조 품질이 핵심이었다. 앞으로의 암모니아·수소·자율운항 선박은 선박 자체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독성가스 감지, 환기, 격리, 화재·폭발 대응, 선원 훈련, 원격 진단, 사이버보안, 항만 연료공급 인프라,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체계까지 맞아야 한다. 조선소가 배를 인도하면 끝나는 구조에서 벗어나 선박이 실제로 운항 허가를 받고 보험 인수를 통과하며 화주 계약에 쓰일 수 있도록 전체 체계를 설계해야 한다.

조선 3사의 수주 경쟁 구도도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가장 큰 변화는 경쟁 기준이 선가 중심에서 인증과 운항 신뢰도 중심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같은 선종이라면 가격과 납기, 연료 효율이 핵심 경쟁력이었다. 앞으로는 선급과 보험사, 항만당국, 금융기관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안전 체계와 디지털 운항 체계, 연료 대응 시스템을 얼마나 완성도 있게 갖췄는지가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다. 선주들이 요구하는 기준도 성능과 연비에서 국제 규범과 보험 인수, 항만 입항 절차까지 안정적으로 통과할 수 있는 선박인지로 넓어지고 있다.

중국 조선소와의 경쟁 방식도 바뀔 수 있다. 지금까지 중국은 가격 경쟁력과 대규모 생산 능력을 앞세웠고, 한국 조선업은 LNG선과 고부가 선박, 엔지니어링 역량에서 우위를 보여왔다. IMO 규범이 촘촘해질수록 초기에는 한국 조선업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안전 기준과 인증 체계, 친환경 연료 시스템, 디지털 운항 체계를 함께 충족해야 하는 시장에서는 한국 조선소에 대한 글로벌 선주의 신뢰도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이 국가 주도의 대규모 발주와 내수 시장 실증을 기반으로 인증 경험을 빠르게 축적할 경우 현재의 격차가 예상보다 빠르게 좁혀질 수 있다. 조선업계 안팎에서 “기술 우위가 곧 규범 우위로 이어진다고 안심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조선소의 협력 구조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지금까지 조선업의 핵심 파트너가 철강사와 엔진업체, 기자재업체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위성통신과 사이버보안, AI 항해 소프트웨어, 선박 데이터 플랫폼, 보험 컨설팅, 대체연료 공급망 기업까지 수주 경쟁력의 일부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조선소의 경쟁력은 “배를 얼마나 잘 건조하느냐”보다 “그 선박이 국제시장에서 실제로 운항 가능한 상품이 되도록 얼마나 안정적인 체계를 제공할 수 있느냐”로 이동할 수 있다.

수익성 구조 역시 복잡해진다. 친환경·자율운항 기반의 고부가 선박 발주가 늘어날 가능성은 있지만, 연구개발과 인증, 소프트웨어 유지·보수, 보증 책임, 인도 이후 시스템 관리 부담도 함께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율운항과 디지털 선박은 기존 선박과 달리 인도 이후에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보안 관리 문제가 계속 남는다. 이 과정에서 시스템 오류나 사이버 사고가 발생할 경우 하자 책임 범위를 둘러싼 분쟁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 조선 3사에 대한 평가를 일방적 호재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회사별로 보면 HD한국조선해양은 자율운항 솔루션과 스마트십 플랫폼을 함께 구축해왔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율운항 규범이 구체화될수록 선박 건조 능력뿐 아니라 운항 데이터와 원격 제어 체계를 함께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기술 시연과 실제 국제 인증은 다른 문제다. 실제 상업 운항 단계에서는 보험사와 선급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데이터 신뢰성과 안전 검증 체계를 확보해야 한다.

한화오션은 특수선과 방산, 해양안보 네트워크와 연결된 강점이 부각될 수 있다. IMO가 해상보안 강화와 국제선박항만보안(ISPS) 코드 검토를 논의하는 상황에서 상선 보안이 군사·사이버·상업 운항이 결합된 영역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향후 선박 보안은 물리적 방호를 넘어 사이버 방어와 원격 대응 체계까지 포함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다.

XR기술(갤럭시XR)을 활용해 선박 엔진을 검사하는 모습 [사진=삼성중공업]

삼성중공업은 스마트십과 고부가 해양플랜트 분야 경험을 바탕으로 원격 모니터링과 디지털 엔지니어링 통합 역량에서 강점을 가질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율운항과 친환경 연료 선박이 확대될수록 선박 운항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관리하고 유지·보수 체계와 연결하는 능력이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다.

세 회사 모두 공통 부담도 안게 된다. 자율운항과 디지털 선박 시장이 확대될수록 선박 인도 이후 데이터 관리와 소프트웨어 유지·보수 책임 범위가 지금보다 훨씬 넓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소의 책임 구조가 “배를 건조해 인도하는 단계”에서 끝나지 않고, 인도 이후 시스템 안정성과 보안 관리까지 이어지는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해상보안 의제도 비중 있게 다뤄질 전망이다. IMO는 국제선박항만보안(ISPS) 코드가 불법·범죄 활동과 관련된 보다 광범위한 보안 위험을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지 검토할 예정이다. 이는 기존의 해적 대응 중심 보안체계가 사이버 공격과 항해시스템 교란, 항만 데이터 변조, 원격 침투 같은 디지털 위협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의미한다.

과거 선박 보안이 철조망과 경비 인력, 물리적 접근 통제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데이터와 시스템 보호가 핵심 영역으로 떠오를 수 있다. 항해 데이터가 변조될 경우 항만 입항 자체가 제한될 수 있고, 정비 이력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 보험 처리와 선급 인증이 지연될 가능성도 있다. 화물 데이터 오류 역시 통관과 납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사이버보안은 IT 부서의 비용 문제가 아니라 선박의 운항 자격과 직결되는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해적 및 무장강도 문제도 같은 흐름에서 읽힌다. IMO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선박 대상 해적 및 무장강도 사건은 전년 146건보다 약 17% 증가했다. 이는 바다의 위험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종류와 층위가 늘어나고 있다는 신호다. 과거 위험이 해적과 충돌, 좌초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사이버 공격과 항로 봉쇄, 보험 담보 제한, 친환경 연료 리스크, 데이터 변조 같은 요소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MSC 111은 한국 해운·조선산업 전반의 대응 역량을 시험하는 무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해운협회에는 부담 요인이 더 크다. 회원사 전체의 규제 대응 비용이 늘어나는 데다, 디지털·사이버보안 투자 여력이 큰 대형선사와 그렇지 못한 중소선사 사이의 격차까지 조율해야 하기 때문이다. HMM에 대해서는 중립적 평가가 가능하다. 단기적으로는 항로 리스크와 규제 대응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지만, 대형선사로서 디지털 운항 체계와 리스크 관리 역량을 경쟁 우위로 활용할 여지도 있다. 조선 3사 역시 친환경·자율운항 기반의 고부가 선박 수요 확대 가능성은 긍정적이다. 동시에 조선업의 범위가 선박 건조를 넘어 소프트웨어와 국제 인증, 보험 대응, 운항 데이터 관리까지 확장되면서 비용과 책임 구조도 무거워질 가능성이 크다.

IMO 관계자는 “MSC 111의 의미는 특정 기술이나 개별 규정 하나에 있지 않다”며 “앞으로 선박은 철과 엔진만으로 평가되지 않고, 데이터 신뢰성, 에너지 안전성, 보안 회복력, 국제 인증 가능성을 함께 증명해야 하는 자산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해운과 조선의 경쟁은 누가 더 큰 배를 더 많이 보유했느냐가 아니라, 누가 위험을 더 정확히 설명하고 국제 시장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관리하느냐로 옮겨가고 있다”고 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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