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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동양칼럼/ 맹신자들의 언어, 그리고 검증되지 않는 정치

1951년 부두 노동자 출신의 무명 철학자 한 사람이 세계 지성사에 이름을 새겼다. 에릭 호퍼(Eric Hoffer)와 그의 책 <맹신자들(The True Believer)>이다.

동양칼럼/ 맹신자들의 언어, 그리고 검증되지 않는 정치

▲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1951년 부두 노동자 출신의 무명 철학자 한 사람이 세계 지성사에 이름을 새겼다. 에릭 호퍼(Eric Hoffer)와 그의 책 <맹신자들(The True Believer)>이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캘리포니아 부두에서 짐을 나르며 살아온 이 사내는, 히틀러와 무솔리니와 스탈린이 어떻게 대중을 광기로 몰아넣었는지를 밑바닥 노동자의 시선으로 해부했다. 그의 결론은 단순하지만 서늘하다. 선동가의 말은 결코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호퍼에 따르면 대중운동을 이끄는 언어는 처음부터 검증을 목적으로 설계되지 않는다. 모호한 강령, 실현 불가능한 약속, 결코 반증될 수 없는 신념의 언어로 채워진다. 검증 가능한 정치적 약속은 실패하면 곧바로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위대한 민족의 부활’이나 ‘새로운 인간형의 탄생’ 같은 말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마찬가지로 성패를 가늠할 잣대가 없다. 자기경멸에 빠진 대중—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은 이 검증 불가능성 앞에서 오히려 안도한다. 실패할 리 없는 신념에 자신을 통째로 위탁함으로써,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는 자율성의 무게를 벗어던지는 것이다. 호퍼가 보기에 이것은 정치가 아니라 종교다. 정치는 결과로 심판받지만, 종교는 믿음으로 유지된다.

이 진단이 21세기 대한민국 정치 무대에 그대로 겹쳐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최근 여당 전당대회 연설장에서 흘러나온 말들을 떠올려보라. ‘반명과 신천지 연합’이라는 근거 없는 괴담, 정통성을 둘러싼 ‘적통 논란’ 그리고 ‘이재명 정부의 성공’이라는 지극히 막연한 구호. 이 가운데 무엇 하나 검증 가능한 명제가 없다. 무엇을 성공이라 부를 것인지, 어떤 지표로 판단할 것인지, 언제까지 무엇을 해내겠다는 것인지—아무 답이 없다. 문제는 검증 불가능한 언어일수록 청중의 환호는 커진다는 점이다. 대비되는 사례가 있다. 뉴욕시장 조란 맘다니는 버스 요금 동결, 임대 아파트 임차료 삭감처럼 극히 구체적이고 검증가능한 약속을 내걸었다. 실현되면 시민이 곧바로 확인할 수 있고, 실패하면 곧바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언어다. 일각에서는 이를 생활정치라는 의미로 ‘하수도 민주주의’라 부르지만, 이것이야말로 책임정치의 원형에 가깝다. 정치인이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서 분명한 약속을 하고 그 결과로 심판받는 것, 이것이 바로 책임 정치다.

지금 이 정부가 내세우는 ‘중도’, ‘실용’, ‘통합’이라는 언어도 같은 검증 불가능성의 함정에 빠져 있다. 중도통합이 실질적 기획이 되려면 협치의 구체적 로드맵이 있어야 한다. 연정과 연합의 정치를 제도화할 선거제도 개혁, 정치개혁 프로그램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통합론은 그 내용을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통합을 위해 개혁을 유보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개혁을 통해 통합을 이루겠다는 것인지조차 밝히지 않는다. 이 또한 하나의 신념 선언일 뿐, 정책이 아니다. 반도체 산업을 축으로 한 최근의 성장 기대감도 마찬가지 구조를 안고 있다. 침체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청년에게 기회를 준다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 성장 이후 교육과 노동의 미래는 어떻게 재편되는지, 돌봄과 복지 체계는 어떻게 다시 설계되는지, 사라지고 생겨날 일자리의 지형은 무엇인지—정부와 여당으로부터 가슴에 와닿는 구체적 언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설명 없는 성장론은 정책이 아니라 믿음을 강요하는 이데올로기에 가까워진다.

민주주의는 본래 검증 가능한 책임정치를 지향하는 체제다. 정권이 전지전능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영역과 목표를 분명히 좁혀 말하는 것이 통치의 덕목이다. 검증을 회피한 채 의견과 신념의 언어로만 대중을 동원하려 한다면, 그것은 이미 정치가 아니라 종교화된 대중운동이다. 에릭 호퍼는 어린 시절 시력을 잃었다가 열다섯 살에 기적처럼 눈을 되찾았다. 그 후로 부두에서 평생을 노동하며, 틈틈이 혁명과 전쟁을 관찰하고 기록해 이 책을 완성했다. 노동자의 눈으로 써 내려간 이 서늘한 문장들, 적어도 정치인들이 한 번쯤 꺼내 읽어야 할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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