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이동 없는 AI 학습
글로벌 제약 10개사 참여
보안·효율 잡은 기술 확산
AI 신약개발에 자본 몰려
민감한 원시 데이터는 개별 서버에 안전하게 보존한 채 AI 학습 결과만 공유해 공동 모델을 구축하는 ‘연합학습(FL)’이 신약 개발의 핵심 대안으로 부상했다. 글로벌 멜로디(MELLODDY) 프로젝트에 이어 한국형 K-MELLODDY 사업도 본격화되며, 보안과 데이터 활용이라는 난제를 해결해 신약 발굴 속도를 혁신적으로 높일 전망이다. /챗GPT 제작 이미지
# 연합학습은 ‘영업비밀을 공유하지 않고도 맛의 황금 레시피를 찾아내는 비결’과 같다. 전국의 떡볶이 맛집 사장님들이 각자의 비법 소스를 절대 가게 밖으로 유출하지 않으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떡볶이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식이다. 사장님들은 소스 레시피(원시 데이터)를 보내는 대신, 각자 주방에서 요리를 해본 뒤 “설탕을 한 스푼 더 넣으니 맛이 좋아졌다”는 식의 조리 팁(학습 결과)만 중앙 본부로 전송한다. 본부는 이 팁들을 모아 ‘최고의 황금 비율’을 완성한 뒤 다시 각 식당에 배포한다. 결과적으로 사장님들은 소중한 가문의 비법을 지키면서도, 모두의 경험이 응집된 최고의 레시피를 손에 쥐게 되는 혁신적인 협력 모델인 셈이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신약 개발에 '연합학습(Federated Learning)' 기술이 핵심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전통적인 머신러닝 기법은 예측 모델 구축을 위해 방대한 원시 데이터를 한곳으로 모아야 한다. 그러나 제약 및 의료 산업에서는 임상 시험 결과·화합물 라이브러리·환자 기록 등이 민감한 정보로 취급된다. 기업 지식재산권(IP) 보호는 물론 미국 의료정보보호법(HIPAA)이나 유럽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 등 엄격한 규제 탓에 데이터 공유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연합학습은 이 같은 난제를 우회하는 기술이다. 원시 데이터를 외부로 이동시키지 않고 각 기관이 보유한 로컬 서버에서 AI 모델을 개별적으로 학습시킨다. 이후 학습으로 얻은 가중치(Weight)나 암호화된 요약본만 중앙 서버로 보내 글로벌 AI 모델을 고도화한다. 데이터는 원래 위치에 안전하게 보존되면서도 다수 기관 지식을 통합할 수 있는 구조다.
글로벌 제약사 10곳 뭉친 'MELLODDY' 프로젝트
제약 분야에서 연합학습 효용성을 입증한 대표적 사례는 유럽의 '멜로디(MELLODDY)' 프로젝트다. 2019~2022년 총 1840만 유로(약 270억원)가 투입된 이 프로젝트에는 얀센 파마슈티카 NV(존슨앤드존슨 자회사)·아스트라제네카·바이엘·노바티스·암젠·GSK 등 10개 글로벌 제약사와 기술 파트너들이 참여했다.
연합학습은 개별 기관의 원본 데이터를 외부로 유출하지 않고 인공지능을 고도화하는 보안 기술이다. 중앙 서버가 배포한 모델을 각 기관이 로컬 데이터로 학습시킨 뒤, 데이터 자체가 아닌 학습 결과값(가중치)만 서버에 전송한다. 이를 취합해 업데이트된 글로벌 모델을 공유함으로써 정보 보안과 모델 성능 향상을 동시에 달성한다. /구글 제미나이 제작 인포그래픽
목표는 1000만개 이상의 분자와 10억개의 테스트 결과로 구성된 초대형 화합물 라이브러리에서 기밀 유출 없이 머신러닝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오킨(Owkin)이 개발하고 리눅스 재단이 호스팅하는 오픈 소스 연합학습 프레임워크 '서브스트라(Substra)'가 도입됐다. 보안 강화를 위해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해 단일 중앙 관리자 개입 없이 파트너 간 모든 작업의 비공개 기록(Audit Trail)을 유지했다.
얀센 파마슈티카 소속 휴고 쿨만스(Hugo Ceulemans) 프로젝트 리더는 "연합학습을 통해 연구는 철저히 통제된 비공개 데이터베이스 내에서 이뤄지며 프라이버시를 유지하면서도 신약 후보 물질 발굴 프로세스를 가속화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고 밝혔다.
보안·효율 다 잡은 AI 워크플로우···의료계 도입 확산
연합학습 도입은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의료 및 IT 현장에 직접적인 이점을 제공한다. 병원과 연구 센터는 데이터를 외부에 반출하지 않으면서도 제약사와의 공동 연구에 참여할 수 있다.
특히 연합학습 시스템은 동형암호(Homomorphic Encryption)·다자간 컴퓨팅·차분 프라이버시(Differential Privacy) 등 고도화된 보안 컴퓨팅 기법과 결합해 데이터 노출 위험을 원천 차단한다. 이는 환자 분류·약물 표적 식별 등 임상 시험 전반의 정확도 향상으로 이어진다. 일례로 아스트라제네카는 미국 임상 시험에서 연합 전자건강기록(EHR) 시스템을 활용해 원시 데이터 공유 없이 환자 모집 및 모니터링 효율을 높이고 있다.
제약 산업의 AI 투자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업계 통계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적으로 AI 기반 신약 개발 분야에 약 140억 달러가 투입됐으며 최근 9년간 누적 투자액은 600억 달러에 달한다. 나아가 2024년 단백질 구조 예측 AI 시스템 '알파폴드(AlphaFold)'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 등이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하며 해당 분야에 대한 신뢰와 기대감은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한국형 모델, 한국제약바이오협회 'K-MELLODDY'
김화종 단장이 이끄는 한국제약바이오협회 K-MELLODDY 사업단은 연합학습을 한국형 AI 신약개발의 핵심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기존에는 병원과 제약사가 개인정보 보호와 기업 기밀 문제 때문에 의료 데이터를 외부로 내보내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국내 AI 신약개발은 데이터 확보 단계에서부터 한계에 부딪혀 왔다.
K-MELLODDY(연합학습 기반 신약 개발 가속화 프로젝트)는 데이터 유출 없이 AI 모델이 병원·제약사의 서버를 직접 찾아가 학습하는 '연합학습' 기술을 활용하는 국가 주도 사업단이다. 의료 데이터의 외부 반출 없이 가중치만 활용해 프라이버시 규제를 극복하며, 다수 기관의 방대한 임상 정보를 결합해 세계적 수준의 고성능 신약 개발 AI 모델 구축을 목표로 한다. /이상헌 기자
김 단장은 여성경제신문이 12일 보도한
[인터뷰] ① 김화종 제약협 K-MELLODDY 사업단장 "신약 혁신, '연합학습'으로"
을 통해 “AI 모델만 병원 서버 안으로 들어가 학습하고 원본 데이터는 밖으로 나오지 않는 구조”라며 연합학습이 개인정보 규제와 데이터 활용이라는 두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K-MELLODDY는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주관하고 보건복지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공동 지원하는 국가 연구사업이다. 2024년부터 2028년까지 추진되며, 병원·제약사·연구기관이 데이터를 외부 반출 없이 공동 활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김화종 단장은 연합학습의 가장 큰 장점으로 “다양한 병원 데이터를 동시에 학습해 범용성이 높은 AI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기존 AI는 특정 병원 데이터에 맞춰 개발되면 다른 병원에서는 성능이 급격히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지만, 연합학습은 여러 기관의 데이터 분포를 처음부터 함께 반영한다는 설명이다.
다만 현장 도입을 위한 과제도 남아있다. △안전한 로컬 컴퓨팅과 고속 네트워크를 지원하는 인프라 구축 비용 △의료진·데이터 과학자·법률 전문가 간 조율 △기관 간 데이터 공유 규칙 및 보상 체계 마련 등이다.
☞연합학습(Federated Learning)=원시 데이터를 외부로 보내지 않고 각 기관의 로컬 서버에서 AI 모델을 개별 학습시킨 뒤 결과값(가중치)만 중앙 서버로 보내 통합 모델을 고도화하는 기술. 민감한 데이터 유출 위험 없이 학습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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