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만들어낸 수많은 산출물 중에서 현대사회 들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건 기업이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 총아로 떠오른 기업은 인류의 성장동력을 견인하는 엔진 역할을 하면서….’
중소기업중앙회가 2012년 펴낸 50년사 <도전의 50년 희망 100년>의 첫 구절이다. 경제 5단체 중 하나인 중기중앙회가 설립된 건 196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해다. 중기중앙회가 산업화 원년에 출범한 건 우연이 아니다. 자동차부품, 페인트, 고무, 피복 분야 등 중기중앙회를 구성하는 협동조합 29곳이 1962년 앞다퉈 세워졌다.
中企 대변하는 '구심점'
1950년대 말 1만여 개에 불과한 중소기업은 경제 성장 훈풍을 타고 1980년 48만 개로 늘어났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중소기업은 850만 개로 전체 기업의 99.9%를, 중소기업 종사자는 1913만 명으로 80.4%를 차지했다.
이런 여정에 중기중앙회가 미친 영향력은 실로 컸다. 힘없는 중소기업 목소리를 결집해 정부와 국회에 전달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다. 자산 31조원을 보유한 노란우산공제, 중소기업 판로를 돕는 홈앤쇼핑은 중기중앙회가 일궈낸 대표 성과로 꼽힌다. 협동조합은 880여 곳으로 늘어났다.
중소기업과 함께 산업 생태계를 형성하는 대기업도 중기중앙회 성장을 도왔다. 1987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을 지을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부족한 공사비를 흔쾌히 지원한 건 유명한 이야기다. 10년 뒤엔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이 경기 용인 중소기업인력개발원 건립에 건축비 300억원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중기중앙회가 내년 2월 차기 회장 선거를 치른다. 16년간 재임한 김기문 회장이 물러나면서다. ‘중통령’으로 불리며 부총리급 의전을 받는 중기중앙회장이 되기 위해 5명 이상이 출사표를 던졌다.
'금권 선거' 오명 벗어야
역대 중기중앙회장 선거는 혼탁했다. 수십억원을 써야 당선된다는 불편한 소문이 뒤따르곤 했다. 금품 제공과 불법 선거운동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일도 있었다. 이번 선거는 어떨까. 이미 골프 접대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품권을 뿌리는 후보가 있다는 얘기가 나돈다. 유권자가 600명에 불과한 데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한 달에 그치는 깜깜이 선거 탓에 정책으로 대결하기보다 돈봉투로 표심을 얻는 풍토를 낳는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제주에서 열린 ‘2026 중소기업 리더스포럼’은 사실상 선거 전초전 양상을 띠었다. 선거관리위원회 요청으로 출마 후보자들은 불참했으나 표심을 얻으려는 물밑 대리전이 치열했다. 모 후보 측근이 참석자에게 현금을 주다가 들켜 망신을 샀다는 소식도 들린다. ‘인공지능(AI) 시대’를 기치로 내건 포럼이 무색해지는 막걸리 선거의 구태다. 일각에선 김심(金心)이 특정 후보에게 있다며 불만을 터뜨린다.
중소기업계에는 노동 규제, 대·중소기업 격차 등 난제가 산적해 있다. 중기중앙회장은 무한 책임과 사명감이 있어야 감당할 수 있는 자리다. 헛된 명예와 감투욕을 채우는 권좌가 아니다. 이구종 초대 회장은 사재까지 털어 중기중앙회 살림에 보탰다. 오명의 역사 되풀이와 불공정 시비는 중소기업인 얼굴에 먹칠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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