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옥 문화체육부장
대구의 사계절은 음악으로 물든다. 봄이면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이 도시를 깨우고, 여름이면 월드오케스트라페스티벌이 클래식 선율을 펼쳐낸다. 가을이면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오페라의 향연으로 도시를 채운다. 축제 기간에는 국내외 예술단체들이 무대에 오르고, 공연장마다 애호가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오페라와 뮤지컬, 클래식을 이야기할 때 대구를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이제 대구는 음악을 통해 도시의 이름을 알리는 문화도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들 축제가 20여 년의 시간을 축적하는 동안, 과연 진정 시민의 축제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선뜻 긍정적인 답을 내놓기 어렵다. 공연장을 꾸준히 찾는 애호가와 회원,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이 여전히 축제의 중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의 열정과 참여가 있었기에 오늘의 축제가 가능했다. 오랜 시간 공연장을 지켜온 관객과 예술 애호가들은 지역 문화의 든든한 기반이었다. 그러나 대구의 축제가 한 단계 더 성장하려면 이제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 대구의 브랜드가 된 축제들이 국내를 넘어 세계적 축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애호가 중심의 축제에서 벗어나 시민 전체로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
그동안 대구의 축제들이 시민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공연장을 벗어나 시민을 찾아가는 공연을 마련하고, 축제 운영을 돕는 자원봉사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일부 축제에서는 시민 체험 프로그램도 시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아직 축제의 중심이라기보다 부수적인 행사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시민들이 축제의 일원이라고 여기는 체감은 여전히 크지 않다. 참여의 폭과 지속성, 도시 전역으로의 확산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직 아쉬움이 남는다.
세계적인 축제들이 오랜 생명력을 이어가는 이유는 분명하다. 축제의 주인이 시민인 것이다. 시민은 단순히 표를 구매하는 관객에 머물기 보다, 축제의 능동적인 참여자가 된다. 시민이 자원봉사자가 되고, 프로그램의 참여자가 되며, 도시를 찾은 방문객에게 축제를 소개하는 안내자가 된다. 이렇게 쌓인 참여와 기억이 축제를 단순한 행사가 아닌 도시의 문화 자산으로 만든다. 공연장은 축제의 일부일 뿐, 진짜 무대는 도시 전체가 된다. 유명 예술가와 수준 높은 공연이 축제의 품격을 높인다면, 시민의 참여와 공감은 축제의 생명을 이어가는 힘이다.
대구도 이제 ‘도시 전체가 함께 만드는 축제’라는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축제 기간이면 동성로와 서문시장, 김광석길, 수성못, 근대골목은 어떻게 축제와 연결되고 있는가. 공연장 밖에서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얼마나 되는가. 아이와 부모, 청년과 어르신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 체험은 충분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앞으로 대구 축제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축제가 도시와 연결되지 못하면 외부 방문객에게는 좋은 공연으로 기억될 수 있지만, 정작 시민에게는 남의 행사가 되고 만다. 공연장의 박수에 시민의 참여가 더해지고 지역 공간과 상권이 함께 움직이며 일상의 풍경 속에 축제의 기억이 쌓일 때 비로소 축제는 도시의 문화 자산이 된다.
시민의 참여를 늘리기 위해서는 축제 운영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공연 중심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시민 합창, 시민 오케스트라, 청소년 뮤지컬 프로젝트, 대학생 프린지 공연, 거리 버스킹, 야외 리허설 공개 등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 이미 운영 중인 찾아가는 공연과 자원봉사 프로그램도 단순히 횟수를 늘리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스스로 참여하고 다시 찾고 싶은 축제 경험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공연장 안의 축제를 공연장 밖으로 끌어내 시민의 일상 속으로 가져와야 한다.
지역 상권도 축제의 중요한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축제 기간 카페와 서점, 음식점, 호텔이 공연 정보와 할인 혜택을 공유하고 문화시설과 관광지가 하나의 동선으로 연결된다면 축제는 지역경제와 관광을 함께 살리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
학교 역시 미래 관객을 만드는 중요한 공간이다. 축제에 참여하는 예술가들이 학교를 찾아가 학생들과 만나고 리허설을 공개하며 공연 관람을 교육과 연결한다면 미래의 관객은 자연스럽게 성장한다. 오늘 객석에 앉은 한 명의 어린이가 20년 뒤 축제를 지키는 관객이자 후원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행사의 규모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속적인 기획과 행정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문화예산을 단순한 행사 운영비가 아니라 시민 참여를 확대하고 창작 생태계를 키우는 투자로 바라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세계적인 축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대구는 이미 수준 높은 공연을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그 공연을 시민의 일상과 연결하는 일이다.
황인옥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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