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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40주년’ 조수미를 만나다

이름 그 자체가 브랜드가 된 조수미 소프라노가 올해 데뷔 40주년을 맞았습니다.

‘데뷔 40주년’ 조수미를 만나다

[앵커]

'최초' 그리고 '최고'.

오랜 시간 이런 수식어가 붙었습니다.

이름 그 자체가 브랜드가 된 조수미 소프라노가 올해 데뷔 40주년을 맞았습니다.

세계가 사랑하는 프리마돈나 조수미 님을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지금 화면에 보이는 이 상패, 굉장히 인상적인데 어떤 상인가요?

[답변]

네, 지금 보시는 이 아름다운 모습의 소프라노는 바로 마리아 칼라스입니다.

세기의 프리마돈나죠.

그 프리마돈나를 기리는 그 상을 제가 올해 받게 되어서, 그리고 한 번도 이렇게 TV에 제가 가까이 보여드린 적이 없어서 제가 들고 왔어요.

[앵커]

그런데 (마리아 칼라스 상)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제가 맞느냐?' 이렇게 되물으셨다고 하는데, 믿기지 않으셨나요?

[답변]

일단은 오페라의 중심지인 유럽에서 동양인이 주역을 맡아서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활동을 하는 것은 사실은 거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구나 전 세계인이 숭배하는 이런 중요한, 이름, 밸류를 가지신 마리아 칼라스 상을 제가 받게 돼서 정말 동양인으로서는 또 처음이라 굉장히 사실은 안 놀랄 수가 없었죠.

[앵커]

데뷔 40주년의 소회, 살펴보겠습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답변]

글쎄요.

세월이 너무 빠르다는 생각이 들고요.

뭘 이루겠다, 뭐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악가가 되겠다.

이런 마음보다는 제가 하고 싶었던 또 제가 사랑하는 일을 하면서 지금까지 열심히, 정성껏, 최선을 다해서 왔기에 아마 40년이라는 세월이 이렇게 뿌듯하고 또 저 자신이 생각했을 때 자랑스럽게 온 것 같습니다.

[앵커]

40년 전에 오페라의 본고장이죠.

이탈리아에서 첫 무대에 오르셨어요? 그때 좀 기억이 생생하신가요?

[답변]

네, 저는 1983년 8월 23일, 갓 나이 스무 살 때 작은 가방 두 개를 들고 이탈리아 로마 공항에 새벽 3시에 떨어졌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단 하나 확실했던 거는 노래를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었고요.

동양인이라는 그런 약간 그 당시에 핸디캡이 없지 않아 있었고.

또 저는 노래에는 잘했을지 모르지만, 유럽인들처럼 이렇게 표현력이라든가 무대 장악력이 떨어질 수도 있었겠죠.

그래서 저는 그 무대 데뷔 3개월 전부터 영화를 하시는 그 여배우와 3개월 동안에 카메라를 켜 놓고 표정 연습, 걷는 연습, 무대 연습을 완벽하게 하고 갔거든요.

그래서 저는 무대가 너무 자연스러웠고 '아, 여기는 당연히 내가 서야 할 곳이었어' 이런 생각으로 무대에 섰던 것 같아요.

[앵커]

그 이후에 한결같이 정상을 지키셨습니다.

원칙이나 아니면 비결이 있으셨다면 뭐가 있을까요?

[답변]

우선 체력에 굉장히 신경을 썼어요.

워낙 비행기를 자주 또 오랜 시간 타고 가서 뉴욕에서 동경을 가거나 동경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가야 돼서 또 어떨 때는 바로 연습장에 가서 노래를 해야 되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아프거나 이렇게 힘들어지면 안 되거든요.

또 하나 중요했던 거는 제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 한시도 잊은 적 없이 나는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아티스트라는 그 마음으로 세계 어느 무대에 가서 자랑스럽게 노래한 게 지금까지의 원칙과 비결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앵커]

매일 일기를 쓰신다면서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답변]

일기는 저는 1983년 3월 28일 이탈리아에 도착한 그 새벽 3시부터 지금까지 계속 쓰고 있어요.

일기는 나와의 하나의 대화이고 내가 오늘 하루 어떻게 지냈는지 또 내일은 어떻게 할 것인지.

저로서는 지금 44년째 쓰고 있기 때문에 참 좋은 친구예요.

[앵커]

이 40년이라는 세월, 세계 최고의 프리마돈나.

이 왕관의 무게는 좀 버겁지 않으셨어요?

[답변]

버겁죠.

버겁지만 좋은 점도 참 많아요.

하지만 책임감이 늘 따르고, 또 하나 제가 늘 생각하는 거는 어떻게 보면 이제는 제 자리가 저의 그 능력이나 또 저의 가치? 그런 거를 재확인하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저를 따라오는 젊은, 또 지금 함께 열심히 하고 있는 젊은 성악가들 또 음악가들에게 그들이 자유스럽게 그리고 아주 당당하고 멋지게 조수미 씨가 이렇게 해왔으니까 우리 아티스트들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거를 뭔가 보여줄 수 있었고 또 길을 터줄 수 있어서 참 좋았다고 생각해요.

[앵커]

그런데 영광만 있었던 건 아니고 40년 동안 잃은 것도 많다. 이런 인터뷰를 하셨어요.

[답변]

저 같은 경우에는 제가 그 당시 김포공항을 떠나기 전에 저희 아버님께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생각은 아예 말아라고 말씀을 해 주셨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 뜻이 뭔지를 잘 알았거든요.

내가 갈 길은 음악이다.

그게 확실했기 때문에 제가 비록 결혼을 안 했다거나, 제가 아이들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런 경험을 할 수 없는 지금 나이가 됐지만 그래도 저는 굉장히 제가 원하는 많은 것을 이뤘고.

앞으로 또 그들을 위해서 살 거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굉장히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앵커]

흥미로운 게 있습니다.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전석을 무료 초대 공연으로 하신다고요?

어떤 배경인가요?

[답변]

제 공연이 이제 한국에서 하게 되면 사실은 굉장히 표가 빨리 나가는 공연들이라서 늘 안타까운 게 사실 제 공연을 봐야 되는 우리 젊은 친구들이 못 보는 경우가 참 많잖아요.

그래서 참 그게 안타까웠는데 이번에는 음악을 전공을 하고 또 음악에 관심 있는 그런 학생들을 다 전석 제가 무료 초대를 했어요.

그리고 또 그 초대를 한 이유는 뭐냐면은 이게 약간 이런 것 같아요.

한 사람이 또 한 무대가 또 그 하나의 음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저 자신도 그랬고.

[앵커]

KBS와도 공연을 준비하고 계시죠?

[답변]

네, 제게 그걸 물어봐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사실은 이게 약간 좀 축하하는 개념이잖아요.

이 조수미라는 아티스트가 사실은 지금까지 걸어온 행로가 사실은 쉽지 않고 어떻게 보면 외로울 수도 있었는데 항상 같이 이렇게 해 주시고, 제 음악을 사랑해 주시는 분들을 생각할 때 이번에는 그것도 10월 9일 날 우리 가족들이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클래식부터 크로스오버, 가곡 그다음에 민요. 정말 온갖 장르의 음악을 또 저뿐만이 아니라 우리 한국에서 좀 유명하신 그런 아티스트들이 함께 나오셔서 정말 멋진 콘서트를 마련했거든요.

함께해 주시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

[앵커]

이번 40주년 앨범 이름이 '컨티뉴엄(Continuum)'.

라틴어로 '계속', '진행 중'이라는 뜻인데, 앞으로 소프라노 조수미의 음악 여정, 어떻게 될까요?

[답변]

저의 여정은 사실 '40년 동안 이렇게 왔습니다' 하는 보고 형식의 셀레브레이션이 아니라 인생이 마치 흐르는 것처럼 좀 더 우리가 나이가 들수록 좀 더 아름다워지고 좀 더 성숙해지는 것처럼 저의 음악 생활도 똑같이 그렇게 될 거고요.

늘 배우는 마음으로 한시도 자만하지 않고 재미있고 또 뭔가 감동을 드릴 수 있는 그런 아티스트로서 계속 저는 앞으로 전진하겠습니다.

[앵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조수미 소프라노였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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