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성장 지도는 경기남부의 반도체와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넓어졌다. 그러나 서울을 사이에 둔 경기북부의 시간은 달랐다. 안보와 환경 보전, 수도권 집중 억제는 국가가 지켜야 할 공익이다. 그러나 그 목적을 위해 특정 지역이 오랫동안 감당한 부담과 잃어버린 발전의 기회도 함께 살펴야 한다. 공익을 위해 한 지역에 집중된 부담을 누가,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북부의 과제는 바로 이 질문에서부터 고민돼야 한다. 결국 노력과 투자가 성장으로 이어지기 어려웠던 국가 제도를 바꾸는 것부터 시작돼야 한다. 이에 중부일보는 ‘경기북부, 이제는 국가가 키워야 한다’는 대주제로 ▶경기북부 70년…같은 희생, 다른 대우 ▶규제가 만든 격차, 북부 미래 설계를 위한 과제 ▶기회발전특구, 경기북부의 첫번째 성장판 ▶메가특구, 경기북부에도 길을 열어라 등 4부에 걸쳐 짚어본다.
전체 면적의 92.6%가 군사시설 보호구역인 연천 등 경기북부 주민들은 안보 규제에 더해 수도권 정비계획법 등 다중규제로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사진은 양주 북부 개발 사업 부지. 사진=중부일보DB
◇ 집 고치는 일부터 기업 투자까지, 일상에 겹친 규제
경기북부 땅의 40.2%, 약 1천715㎢가 군사시설 보호구역이다. 연천은 군 전체 면적의 92.6%, 파주는 87.6%가 군사시설보호구역이다. 경기도 군사시설보호구역의 약 82%가 북부에 집중돼 있다. 국가 안보를 위한 공간적 부담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보여주는 수치다.
군사시설 보호구역 안에서는 건축과 토지 이용 과정에서 군사작전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고 행위에 따라 군과 협의해야 한다. 건물 높이와 위치를 조정하거나 작전시설을 보완하는 조건이 붙기도 한다. 주민에게는 생활공간 개선, 기업은 생산시설의 규모와 투자 일정을 결정하는 문제다. 땅을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땅을 원하는 때에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 북부 40.2% 군사시설보호구역
집 수리·토지 이용 군과 협의해야
군사규제 벗어나도 '수정법' 암초
공업지 물량 확보·기반시설 난망
여기에 지역별로 수도권정비계획법과 개발제한구역, 상수원 관련 규제가 겹친다. 북부의 개발제한구역은 약 479㎢, 팔당특별대책지역은 약 386㎢다. 군부대 협의를 마쳐도 토지이용과 환경 관련 기준을 별도로 충족해야 한다. 안보와 수도권 집중 억제, 환경 보전이라는 서로 다른 목적의 제도가 한 사업에 동시에 적용되는 것이다.
어느 절차에서 사업이 멈출지 예측하기 어렵고 조건을 맞추기 위한 비용이 늘어나면 투자 결정은 늦어진다. 개별 규제의 필요성과 함께, 중첩된 규제가 주민과 기업에 만드는 부담도 살펴야 한다. 북부의 규제는 새로운 사업과 일자리를 만드는 기회까지 좁힌다.
의정부에 있는 미반환공여지 레드클라우드 전경. 사진=경기도청
◇ 군사규제 개선을 산업 성장으로 연결하려면
수도권 규제는 산업 공간을 넓히는 단계에서 또 다른 문턱이 된다. 과밀억제권역에서는 공업지역의 신규 지정이 원칙적으로 제한되고 예외적으로 지정하더라도 기존 총면적을 늘리지 않는 등 조건을 따라야 한다. 성장관리권역도 수도권정비계획에 따른 공업지역 관리에서 자유롭지 않다. 자연보전권역에는 일정 규모 이상의 개발사업과 학교 등 시설의 신설·증설 제한이 적용된다.
미군반환공여구역도 반환만으로 성장거점이 되지 않는다. 의정부처럼 과밀억제권역에 속한 지역은 공여구역 관련 공장 신설 특례가 있어도 산업단지 조성에 필요한 공업지역과 물량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토지 정화와 도로·용수·전력 등 기반시설 조성에 비용과 시간이 들고 도시계획 절차도 필요하다. 군사적 사용이 끝난 공간을 기업과 주민의 공간으로 바꾸려면 다수의 중앙부처 제도를 함께 풀어야 한다.
생산시설이 모이기 어려우면 협력업체와 연구개발 기능이 자리 잡을 기회도 줄어든다. 일터와 교육·의료시설이 부족하면 주민은 다른 도시까지 이동해야 한다. 규제의 영향은 산업 입지를 넘어 생활 기반의 격차로도 이어진다.
인구감소 지역인데 '수도권' 분류
기업 지원·세제·입지 혜택 등 없어
의대 없고 지역인재전형·채용 소외
◇ 수도권 기준과 지역 여건 사이, 지원제도 개선 과제
경기북부는 국가안보 부담이 큰 지역이면서 수도권이다. 기업 입지와 개발에는 수도권 관리 기준이 적용되는 반면, 비수도권을 대상으로 설계된 일부 기업 지원과 세제·입지 혜택에서는 제외되거나 다른 조건을 적용받는다. 규제의 부담은 접경지역으로 감당하면서 지원의 기준은 수도권으로 적용받는 구조다. 서울과 가깝다는 지리적 조건이 지역의 산업과 생활 기반까지 충분하다는 근거가 되고 있는지 따져볼 대목이다.
국가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이 비수도권 중심으로 설계되어 수도권에 포함된 경기북부 지역은 일부 지원에서 제외되거나 제약을 받고 있다. 비수도권은 산업단지 조성 때 개발부담금을 전액 면제받지만 경기북부 포함한 수도권 산업단지는 이 면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기회발전특구는 비수도권 55곳에 지정되었지만 ‘수도권 인구감소지역과 접경지역도 가능하다’는 법 조항에도 세부지침이 마련되지 않아 경기북부는 신청서조차 못 내고 있다.
비무장지대 지뢰 경계 알림판. 사진=경기도청
◇ 교육·취업 기회, 경기북부의 지역 여건도 살펴야
교육과 취업에도 경계가 있다. 지방대학의 지역인재전형과 지방 이전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채용은 해당 지역에서 학교 이수·졸업 등 요건을 기준으로 운영된다. 교육 여건이 열악한 경기북부 학생은 수도권 학생으로 분류돼 진학과 취업에서 밀려난다. 접경지역 등 경기북부 학생이 겪는 교육 여건은 달라도 제도는 같은 수도권 학생으로 구분하여 진학과 취업의 문이 좁다.
대표적인 예로 비수도권 의과대학의 지역인재전형은 해당 권역의 학교 졸업 등 요건을 충족한 학생에게 지원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경기북부는 수도권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러한 전형이 부재한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은 가까운 강원권 의대에 지원 하더라도 강원지역 고교 이수를 요구하는 지역인재전형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일반전형 등으로 진학할 수는 있지만 비수도권 학생에게 주어지는 별도의 기회는 없다. 강원도는 의과대학이 4개인 반면 북부에서 유일하게 의학 교육을 하는 차의과학대학교는 의과대학이 아닌 의학전문대학원으로, 북부에는 의과대학조차 없는 실정이다.
지역인재를 선발하고 정착을 돕는 정책의 취지는 중요하다. 그 취지대로라면 수도권 안에서도 열악한 경기북부 지역에 대해 의료교육을 포함한 교육전반에 걸쳐 동일한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수도권이라는 이유만으로 경기북부가 이러한 취지의 정책에서 배제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고민해봐야 한다.
군사 규제 완화를 성장 동력으로
비수도권 기준 적용·특별법 필요
70년 안보희생, 국가가 응답해야
◇ 같은 희생, 다른 대우(평택은 특별법 20조원, 경기북부는 ‘NO’
같은 미군기지 주둔 지역이지만 평택은 달랐다. 정부는 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주민 부담과 지역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2004년 평택지원특별법을 제정했다. 지역개발과 재정지원 등을 법적 틀 안에서 추진하도록 한 것이다. 국가가 필요로 하는 사업에 따른 지역의 부담을 국가 차원의 지원과 연결한 사례다. 2023년 평택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은 7천191만원으로 경기북부 평균(3천1만원)의 2.4배다. 국가적 필요에 따른 지역의 부담을 국가가 성장 기반 조성으로 뒷받침한 사례다. 도내 미군 공여구역의 80%를 떠안은 북부에는 이런 특별법이 없다.
캠프 그리브스 전경. 사진=경기도청
◇ 70년의 희생에 답할 책임, 이제는 국가에 있다
국방부가 지난 6월 발표한 군사시설 규제개선 정책은 변화의 출발점이다. 민통선을 군사분계선 이남 평균 6㎞ 정도로 조정하고, 제한보호구역을 실제 작전환경에 맞게 재검토하는 계획이다. 경기도도 군사규제 개선과 반환공여구역 활용, 도로·철도 등 기반시설 확충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 규제 완화를 기업 투자와 지역의 성장으로 연결해야 한다. 안보에 필요한 제한은 유지하되 필요성이 낮아진 규제를 정비하고 해제된 지역에 산업과 교통, 생활 기반이 들어설 수 있도록 부처별 정책을 연계해야 한다. 특히 규제 개선 이후의 투자 여건을 마련하는 책임도 중요하다. 국가가 부처별 제도를 연계하고 기반시설 조성을 뒷받침해야 해제된 땅이 산업과 일자리의 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 경기북부가 요구 하는 것은 국가를 위해 감당한 부담에 상응하는 발전의 기회다. 지난 70년의 희생을 인정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앞으로의 성장을 국가가 책임 있게 뒷받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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