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글 1천자를 쓰는데, 지옥이 펼쳐졌어요.” 김률아(21)씨가 인공지능(AI) 없는 글쓰기를 시작하며 느낀 아찔한 기분을 전했다. 지난해 5월부터 챗지피티(GPT), 제미나이, 클로드, 퍼플렉시티 등 다양한 인공지능 서비스를 이용하는 률아씨가 온전히 자신의 힘만으로 글을 써본 것은 약 10개월 만이었다. 다만 평소 몇 배의 공력을 들여 직접 자료를 찾고 글을 다듬으며 인공지능의 ‘효율’과 ‘정답’ 이면에 ‘생략’돼 있던 정보를 보게 됐다. 주제에 깊이 몰입하게 되면서 글쓰기의 간절함, 그리고 사유의 힘도 함께 경험했다.
대학교 3학년 률아씨와 대학교 신입생 김소희(21)씨는 지난달 25일부터 31일까지 일주일간 ‘에이아이 디톡스’(인공지능 없는 일상)에 도전하고 그 결과를 8일 한겨레에 전했다. 검색, 고민 상담, 글쓰기, 과제에 이르기까지 인공지능 서비스와 뗄 수 없어진 대학 생활을 강제로 1~2년 전으로 되돌려본 것이다. 이들은 인공지능 없는 삶의 불편과 비효율성을 호소하면서도, 사회문제에 대한 감정, 친구와의 소통 등 잊혔던 것들을 되짚어본 경험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인공지능 ‘디톡스’ 기간 률아씨는 학보사에 ‘인공지능 전쟁무기’를 주제로 칼럼을 기고했다. 평소라면 퍼플렉시티로 필요한 자료를 모으고, 제미나이로 문장과 표현을 다듬어 서너 시간이면 뚝딱 완성했을 글을 꼬박 10시간 걸려 썼다. 자괴감이 들었다. “유치한 문장을 인공지능이 잘 고쳐주거든요. 그걸 못 하니 글이 생각보다 안 써졌어요.”
얻은 것도 있다. 인공지능이 찾고 요약한 자료 대신 논문과 기사, 영상을 4시간 넘게 찾아보는 동안 ‘전쟁’이라는 주제에 감정이 흔들린 것이다. 률아씨는 “전쟁 피해자들에게 감정이 엄청나게 동했다. 글을 잘 써서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평소보다 간절하게 썼다”며 “인공지능이 설명을 깔끔하게 해줘서 그런지, 사회적 이슈와 사람 사이를 분리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말했다. 박숙자 서강대 교수(전인교육원)는 률아씨 경험을 ‘몰입’과 ‘연루’로 설명했다. 박 교수는 “객관과 중립을 표방하는 인공지능을 통한 자료 조사는 학습자가 자료에 몰입하고 연루되는 경험을 막는데, 사실 그 경험 자체가 글쓰기에 필수적”이라며 “인공지능에 자료 조사를 의존하면 자기 생각을 수정할 가능성이 사라질 위험도 있다”고 짚었다.
“사람보다 인공지능에게 고민 상담을 더 많이 했다”는 소희씨는 챗지피티가 사라진 1주일 새, 친구와 두 차례나 전화통화를 했다고 했다. 그는 “챗지피티는 기록이 있으니 추가 설명 없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어 편한데, 친구에게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다 말해야 하니 연락을 꺼렸다”면서도 “친구들과 대화하며 오히려 과거 일을 다시 설명하다가 새로 느끼는 감정이 많았다”고 했다. 률아씨도 참다못해 한밤중 친구를 불렀다. 률아씨는 “보통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으면 제미나이와 대화를 하고 실제 마음이 진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말할 대상이 없어지니 새벽에 냅다 친구를 불러냈다”며 “얘기를 하면서 친구가 나에게 서운한 점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돼 귀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운영사 비누랩스가 지난해 2월 낸 ‘제트(Z)세대 트렌드 리포트’를 보면 응답자(1천명) 71.2%가 인공지능 서비스를 ‘일상적으로’ 이용한다고 답했다. 각종 서비스의 빠른 확장세를 고려하면, 현재 그 수준은 한층 늘었을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인공지능 디톡스가 “좋은 경험”이었다면서도 이를 이어가는 데는 난색을 보였다. 률아씨는 “학교생활과 아르바이트로 바쁜데 인공지능이 없으니 밥 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야 했다. 친구들은 인공지능으로 쉽게 과제를 끝내는데 나는 합리적이지 못한 삶을 사는 것 같았다”며 “인공지능이 없어지니 너무 힘들어서 신봉하는 마음이 더 커질 것 같단 생각도 든다. 그래도 사회적 사안을 알아볼 때는 최대한 덜 쓰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짧게나마 인공지능에 결부된 일상을 벗어나 보는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현준 성공회대 연구교수(평화월딩연구소)는 “기술이 사회 전반의 속도를 증강시키니 사용하지 않으면 비효율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학생들이 더 빨리 더 많은 결과물을 내도록 하기보다 인공지능 없는 공부를 고려해 과제를 내는 등 대학의 평가 방식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