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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대청호오백리길 2구간 트레일러닝 도전기 [초록버스와 대청호의 랑데부] ②

또, 무모한 도전일까. 조금만 뛰어도 헉헉대는 체력으로 트레일러닝을 한다고? 로망이 있었다. 대청호오백리길 다니면서 가진 생각, 달리면서 대청호를 품어 보리라. 그간 엄두도 못 내다가 최근 달리기를 몇 개월 하면서 생긴 ‘근자감’이 나를 부추겼다.

대청호오백리길 2구간 트레일러닝 도전기 [초록버스와 대청호의 랑데부] ②

또, 무모한 도전일까. 조금만 뛰어도 헉헉대는 체력으로 트레일러닝을 한다고? 로망이 있었다. 대청호오백리길 다니면서 가진 생각, 달리면서 대청호를 품어 보리라. 그간 엄두도 못 내다가 최근 달리기를 몇 개월 하면서 생긴 ‘근자감’이 나를 부추겼다.

대청호오백리길 2구간은 10㎞. 대덕구 이현동 두메마을 억새습지부터 동구 직동 냉천버스종점까지다. 높진 않지만 제법 오르락내리락 이어지는 산길도 포함된 구간이다. 오늘은 냉천버스종점 1㎞ 앞둔 찬샘정에서 종점으로 가지 않고 연계구간인 노고산성으로 향한다. 막판 오르막 구간이 만만치 않겠지만 2구간 와서 노고산성 조망을 안 보고 갈 순 없다.

노고산성 넘어 찬샘마을로 내려가 마무리하는 여정. 일종의 원점회귀 구간 되시겠다. 총 거리 12㎞ 남짓, 누적고도(여정 동안 올라간 오르막 고도 총합) 550m 예상한다. 물론 달리는 것보다 산길 포함 그냥 걷는 구간이 꽤 많겠지만 도전에 의미를 두고 싶다. 가을초입 날씨 좋았던 그날의 이야기, 50대 청춘의 대청호 트레일런 도전기를 시작한다.

대청호는 트레일런 최고의 코스

호숫가 달리고 숲길·산길·마을길

트런 입문자엔 2구간 최적의 길

걷기 좋고 뛰기 좋은 런하이 코스

걷뛰하며 대청호의 낭만 즐감을

#1. 초록버스 71번

이번 시즌 대청호오백리길 시리즈 주제는 대전 초록버스와 대청호의 랑데부다. 도심과 대전 외곽을 연결하는 외곽버스인 초록버스를 타고 대청호오백리길을 찾는 여정이다. 초록버스 타고 갔다가 초록버스 타고 나온다. 자가용을 타고 가지 않기 때문에 굳이 원점으로 돌아오지 않아도 되니 좋다.

신탄진네거리 정류장으로 들어오는 71번 버스. 버스 앞에 '대청호오백리길 가는 버스'라고 쓰여있다.

오늘 출발점인 대덕구 이현동 두메마을로 가기 위해 71번을 탄다. 71번 버스는 대덕구 용호동과 대전동신과학고(동구 비룡동)를 오가는 초록버스다. 직동종점도 경유한다. 직동이 종점인 71번도 있다. 71번 버스는 노선 자체가 유람이다. 금강과 대청호반을 따라 간다. 금강 물길 따라 대청댐 방면으로 달리다가 보조댐/삼정취수장 지나 추동 방면 추동길로 접어든다. 추동길(대청호수로)은 명품 자전거길로 선정된 곳이다. 사계절 드라이브코스로도 유명하다. 그만큼 풍광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길이다. 71번 버스는 추동길과 노선이 거의 일치한다.

버스 창 밖으로 지나가는 대청호 풍경. 71번 버스는 노선 자체가 유람이다.

왼쪽으로 금강이 보이더니 금세 대청호를 끼고 달린다. 버스 창밖에서 쾌청한 호숫빛이 전해온다. 윤슬을 한참 바라본다. 덜컹이는 초록버스는 힐링이다. 버스 안 어르신들이 주고받는 이야기 소리도 다정하다. 신탄진네거리 정류장부터 20분, 이현동이다. ‘이현동’이 들어간 정류장은 3곳이다. 두 번째 정류장 ‘이현동마을정보센터’에서 내리면 좋다.

#2. 미술관 같은 마을

이현동은 뒷산 모양이 배 같이 생겼다 해서 배고개(배오개)라 했다. 한자로 배나무 이(梨), 고개 현(峴)을 써서 이현(梨峴)이 됐다. 지금은 두메마을, 오색빛호박마을 등 별칭이 많다. 고래골도 있다.

마을 전체가 미술관 같다. 발걸음 옮길 때마다 벽화와 아기자기한 조형물이 시선을 잡고 발길을 잡는다. 시작은 20여년 전 이 마을에 터전을 잡은 조윤상·신정숙 부부였다. 이 부부가 도예공방 ‘하늘강아뜰리에’를 운영하면서 이곳을 거점으로 예술마을의 움이 트기 시작했다. 하늘강아뜰리에는 대전시 지정 민간정원 1호다.

마을 곳곳 일상의 예술작품들이 눈에 띈다. 가장 눈길을 잡는 것은 감돌고기 작품이다. 여기저기 출몰하는 감돌고기(작품)가 반갑고 신기하다. 감돌고기 작품은 감돌고기가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감돌고기는 대전의 깃대종이다.

감돌고기 스토리 조형물. 바람이 불면 들리는 풍경소리가 압권이다.

또 다른 시그니처인 억새밭에서도 감돌고기 작품을 여럿 볼 수 있다. 억새밭은 1구간 종점이자 2구간 시작점이다. 출발을 위해 몸을 풀다보면 앞에 키가 큰 조형물이 보인다. 은은한 소리로 응원한다. 바람의 움직임으로 들리는 풍경소리. 풍경소리는, 대청호 담수로 농지를 잃고 사향(思鄕)한 이주민들과 하천을 떠나간 감돌고기를 소환해 위로한다. 풍경소리 들으며 출발한다. 자, 달려볼까.

#3. 몸은 무겁지만 설렌다

아침에 쌀쌀해서 긴 바지를 입었더니 불편하다. 러닝백에 너무 많은 걸 넣었나, 무게감이 만만찮다. 천천히 달리자. 어차피 빨리 달릴 수도 없지만 최대한 체력을 비축해놔야 한다. 설렌다. 마음도 뛴다.

찬샘마을까지 1㎞, 부수동 느티나무까지 3㎞(누적거리 4㎞), 황호동 전망좋은곳까지 1㎞(5㎞). 평지와 가까운 구간, 뛰어본다. 평균 8분대 페이스(1㎞ 가는 데 걸리는 시간, 분/㎞)로 천천히 달린다.

억새습지 지나 찬샘마을로 가는 다리를 밟는다. 대청호로 스며드는 효평천 위를 지나는 덱(deck) 다리다. 찬샘마을 들어서서 좌회전, 편안한 숲길을 달린다. 새소리와 바람소리, 발소리만 들린다. 아, 헉헉대는 숨소리도 크다. 느린 속도지만 초반은 늘 힘들다. 평지라 생각했는데 완만한 오르막이다.

출발한 지 30분쯤 이정표를 만난다. ←황호동 전망좋은곳 1.8㎞, 찬샘마을 2㎞ →. 그 뒤에 표지판이 하나 더 있다. ‘문화재 가는 길’ 성치산성. 호숫가까지 가지 않고 성치산성으로 바로 올라가는 길이다.

이정표. 성치산성 바로 올라가는 길.

부수동 느티나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고갯길을 넘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나무 아래서 쉬었을까.

직진한다. 20분 뒤 포스 작렬하는 느티나무 한 그루를 만난다. 부수동 느티나무. 340년 이상 수령의 아우라가 압권이다. 부수동은 연화부수(蓮花浮水), 연꽃이 물에 뜬 형상의 명당이 있다고 해서 부른 것이 부수(芙水)로 변한 이름이다. 전설 속 여인 부용의 슬픈 이야기를 들으며 황호동으로 넘어선다.

#4. 무릉도원이라 부르던 곳

곧 갈림길 이정표를 만난다. ←대청호 전망좋은곳 0.2㎞ 성치산성 1.2㎞ →. 성치산성으로 가는 오르막을 바로 타도 되지만, ‘황호동 전망좋은 곳’에서 쉬었다 가기로 했다. 갈림길에서 5분도 안 걸려 도착한 ‘전망좋은 곳’. 이정표엔 대청호 전망좋은 곳, 지도엔 황호동 전망좋은 곳, 황호동 전망대 등 달리 표기돼 있지만 다 같은 곳을 말한다. 인공시설이 있는 건 아니다. 물과 뭍의 경계, 대청호의 시원한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대청호의 평범한 풍경이지만, 물결 앞에 서면 늘 감탄사 연속이다.

‘황호동 전망좋은 곳’ 호숫가에 서 있다. 호수 건너편은 대청호오백리길 1구간, 오른쪽은 청남대.

황호동 전망좋은 곳. 실사 배경에 AI 도움을 받아 완성한 사진이다.

실사 배경에 AI 도움 받아 완성한 사진.

황호동 큰섬과 작은섬 사이에 안긴 명당 같은 곳. 오른쪽 큰섬 옆으로 청남대가 눈에 들어온다. 봉황탑이 보인다. 호수 건너 대청호오백리길 1구간 지명산 아래 땅끝 호숫가가 짚인다. 내가 좋아하는 대청정이 보일 법도 한데 열심히 찾아도 안 보인다. 작은섬에 가려졌을 수도 있겠다. 아래 물가로 내려서서 호반의 소리를 즐긴다. 호수의 고요. 물새소리가 가장 크게 들린다. 바람 부는 날엔 일렁이는 물결 소리가 거센 곳인데 오늘은 잔잔한 평화다.

예전에 우리가 ‘대청호의 무릉도원’이라 불렀던 곳을 찾아간다. 모퉁이 돌아 바로 앞이다. 큰섬과 이어질 듯 마주 보는 곳, 수묵화 같은 곳인데 지금은 예전 모습이 모두 무너졌다. 경치가 예전만 못하다. 아쉬운 마음에 사진 몇 장 찍고 돌아선다.

※아래 영상은 2015년 1월 대청호오백리길 2구간.

#5. 올 것이 왔다

다시 갈림길, 성치산성 오르는 포인트 앞. 숨 한 번 내쉬고 발길을 내딛는다.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뛰지는 못 하지만 열심히 걷는다. 오늘 구간 중 가장 난코스 되시겠다.

호흡은 점점 거칠어 지고 다리는 SOS를 부른다. 초반 체력비축이 실패일까, 뛰기는커녕 오르막 오르기도 만만찮다. 그렇다고 고도가 높은 곳인가, 그렇지도 않다. 너무 쉽게 깐봤던 탓이다. 우리 삶이 그렇다. 쉽게 볼 여정은 없다. 분수를 알아야 하고 주제 파악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축구 국대 김민재 말처럼 고개 처박고 뛴다, 걷는다, 오른다. 힘들다.

오르막과 내리막의 반복, 힘들지만 중독성 있다. 숨소리는 더 거칠어진다. 뭔 트레일러닝이야, 그냥 걸으면서 평범한 대청호 이야기 쓰면 되지. 포기해도 아무도 몰라. 유혹이다. 그러나, 다시 나아간다.   드디어 성치산성.

성치산성 조망. 오른쪽이 대청댐 보조여수로. 그 옆으로 천년의 숲 조성 현장과 이촌마을이 보인다.

숨 고르며 길게 물을 마신다. 다양한 조망은 허락지 않는다. 나뭇가지 사이 대청댐 보조여수로가 보인다. 대청호오백리길 1구간 길목이다. 아는 곳을 짚어본다. 그 옆으로 천년의 숲 조성 터가 보이고 그 옆은 이촌마을이다. 이촌마을 카페의 시원한 커피 한 모금이 입맛을 적신다.  성치산성은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가 치열하게 대립하던 시기 백제가 신라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한 성이란 기록이 전해진다. 백제의 아픔이 아려온다.

#6. 방심의 찰나

한 시름 놨다, 고 방심한 사이 오르내리막은 이어진다. 내리막길 뛰다가 또 지친다. 내리막이라고 쉬운 건 아니다. 내려갈 때 더 조심하란 말을 새긴다. 초보 러너는 이런저런 길 위에서 세상을 배운다.

차도 달리는 길이지만 거의 없다.

드디어 하산 길의 끝, 포장된 길이 보인다. 안도의 심호흡과 헐떡이는 숨이 오버랩된다. 평지다. 달려본다. 자동차도 다니는 길이지만 차가 많진 않다. 시멘트길이지만 낭만 돋는 숲길 샤워를 한다. 풀벌레 소리가 응원한다. 예전 이 길을 함께 걸었던 선후배들의 목소리가 들릴 듯하다. 보고싶은 사람들. 거친 숨소리 너머로 그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생각보다 빨리 찬샘정이다. 찬샘정은 대청댐 건설로 고향을 잃은 실향민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정자다. 여기서 가던 길 1㎞ 더 가면 대청호오백리길 2구간 날머리 냉천 버스종점이다. 2구간 10㎞의 끝.

찬샘정을 뒤로하고 노고산성 방향 계단을 밟는다.

찬샘정에서 노고산성 방향 계단을 밟는다. 이정표는 1㎞만 더 가면 노고산성이라고 가리킨다. 평소 30분도 안 걸린다고  쉽게 봤던 오르막, 오늘은 버겁다. 무거운 다리와 거친 숨소리가 쉬었다 가자고 되풀이한다.  그 사이 해는 위치를 점점 옮겨간다. 사진 찍으려면 해가 넘어가기 전에 도착해야 하는데, 마음은 급하다. 급할수록 다리는 더 정신을 못 차린다. 드디어 노고산성 조망 쉼터. 도착하자마자 소원의 종 먼저 친다. “소원 이뤄주세요.”

노고산성 소원의 종.

#7. 노고산성

백제의 한이 서려있는 노고산성(老姑山城)이다. 노고산(250m) 정상부에 있는 산성이다. 성 둘레는 300m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성벽 대부분이 허물어져 그 윤곽만 확인할 수 있다. 노고산의 이름은 산 정상부에 있는 ‘할미바위’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아들을 병사로 보내고 매일 새벽 치성을 드리던 노모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전설도 있다.

소원의 종 벤치에서 한참을 쉰다. 파노라마 뷰를 즐긴다. 익숙한 풍경이지만 계절마다 다르고 시각 따라 다르고 상황에 맞춰 다른 비경이다. 운동기록 어플을 본다. 운동 거리 10㎞를 막 넘어섰다. 시간은? 시간은 중요치 않다. 여기까지 왔다는 게 중요하다. 달린 시간보다 걸은 시간이 훨~~씬 많지만, 예상했던 바 실망하지 않는다. 나를 칭찬한다. 찬샘마을로 내려가는 길 오후 4시의 가을햇살도 날 응원한다. 수고했어, 오늘도. 난 늘 응원해.

글·사진·편집·영상=차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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