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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대구시의사회 80주년 맞아 예술제...환자를 위해서 진료하지만, 나를 위해선 예술한다

의사에게 예술은 진료실 밖의 취미에 머물지 않는다. 의료 현장에서 사용하는 약병은 아름다움의 본질을 묻는 현대미술 작품으로 거듭나고, 오랜 세월 환자를 돌봐온 의사의 붓끝에는 사람을 향한 마음이 담긴다. 진로를 고민하던 의대생에게는 그림이 불확실한 시간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민복기 대구시의사회장이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유채현기자

의사에게 예술은 진료실 밖의 취미에 머물지 않는다. 의료 현장에서 사용하는 약병은 아름다움의 본질을 묻는 현대미술 작품으로 거듭나고, 오랜 세월 환자를 돌봐온 의사의 붓끝에는 사람을 향한 마음이 담긴다. 진로를 고민하던 의대생에게는 그림이 불확실한 시간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진료실에서 환자를 만나는 이들에게 예술은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통로다. 최근 대구시의사회 80주년을 맞아 열린 예술제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의사들이 각자의 작품세계를 선보였다. 이곳에서 민복기 대구시의사회장과 김경수 낙타정형외과 원장, 경북대 의과대학 김범진 학생을 만나 의학과 예술을 잇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동아리 활동에 미술관 자주 찾아

의료용 약병을 예술 작품으로

의학·예술·인문 연결 교육 관심

△민복기 대구시의사회장...약병으로 아름다움의 이면을 묻다

피부과 전문의이자 작가인 민복기 대구시의사회장은 보툴리눔 톡신과 필러, 스킨부스터 등을 담았던 의료용 약병을 작품의 재료로 활용한다. 진료 현장에서 익숙하게 접하는 약병을 변형하고 연결해 새로운 조형물로 만드는 작업이다.

민 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 의학을 전공한 뒤에도 미술 동아리 활동과 전시를 이어갔고, 해외 학회에 참석할 때면 미술관을 찾아 작품을 살폈다. 전통적인 회화에서 현대미술로 작업의 방향을 넓히던 그는 2001년 무렵 의료용 약병에 주목했다. “기존에 사용하던 재료만으로 작업하기보다 저만의 표현 방식을 찾고 싶었습니다. 의료 현장에서 매일 접하는 약병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충분히 새로운 작품의 재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약병을 단순히 배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열을 가해 형태를 바꾸거나 여러 개를 연결하고, 표면에 색을 입히는 등 다양한 기법을 활용한다. 의료기관에서 소독과 감염 관리 절차를 거친 재료를 조형 작업에 활용해 익숙한 의료용품을 낯선 예술 작품으로 바꾼다.

민 회장이 작품을 통해 탐구하는 주제는 아름다움이다. 외적인 아름다움을 가꾸는 일에는 자신감을 얻고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그 과정에는 고통과 부담도 따른다. 그는 아름다움을 만들어가는 과정과 그 이면에 담긴 복합적인 감정을 작품으로 표현한다. “아름다움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아름다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는 기쁨도 있지만, 감내해야 하는 고통과 부담도 있습니다. 그런 양면성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메디시티’를 주제로 한 연작은 100점을 넘어섰다. 의료와 뷰티가 결합한 도시로 대구가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예술로 확장한 결과다. 의료용 약병을 통해 의학과 미술의 경계를 넓히는 동시에 관람객이 아름다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길 바란다는 의도가 담겼다.

그는 예술과 의학이 별개의 활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발과 주름, 흉터 등을 치료하는 피부과 진료에서도 세밀한 관찰력과 미적 감각, 손기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예술활동을 통해 작품을 만들듯, 선천적인 외형 문제로 어려움을 겪던 환자가 치료를 통해 편안하게 웃는 모습을 보는 일 역시 의사로서 큰 보람이다.

“진료는 단순히 증상을 치료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환자가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살피고 치료를 통해 일상에서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의학과 예술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민 회장은 의학과 예술, 인문학을 연결한 교육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의료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 활용되는 시대일수록 인간의 감성과 창의성, 공감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앞으로 해외 의료봉사와 현지 의료진 교육을 이어가면서 현지의 풍경과 문화에서 얻은 영감을 작품으로 풀어내는 것도 구상하고 있다.

김경수 낙타정형외과 원장이 서화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화 시작 10여년 특선도 두 번

좋은 글 쓰고 일상에서 실천 노력

환자 대하는 태도 되돌아 보게 해

△ 김경수 낙타정형외과 원장...붓으로 글을 새기며 마음을 가꾸다

70여년 동안 의료 현장을 지켜온 낙타정형외과 김경수 원장은 어린 시절부터 마음에 예술에 대한 열정을 품어왔다. 1934년생인 그는 국민학교 시절 풍금을 연주했고, 중학교 때는 미술 교사의 권유로 시작한 미술부 활동을 계기로 예술계에 발을 들이게 됐다.

음악과 미술에 대한 열정은 가득했지만, 의학을 공부하고 환자를 돌보면서 예술에만 시간을 쏟기는 어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그림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김 원장은 2015년 무렵부터 서화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고, 이후 작품 활동과 전시를 이어왔다. 2025년과 2026년에는 포도와 대나무, 국화, 매화 등 전통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글과 그림을 표현한 작품으로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잇달아 특선을 받았다.

김 원장이 서화를 통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작품의 외형보다 그 안에 담긴 뜻이다. 좋은 글을 읽는 것과 직접 붓으로 써서 곁에 두고 되새기는 일에는 차이가 있다고 본다. “글은 읽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붓으로 직접 써서 곁에 두면 그 뜻을 더 오래 되새기게 됩니다. 좋은 글귀를 반복해서 접하다 보면 생각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면 행동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에게 서화는 단순히 글씨와 그림을 감상하는 활동이 아니다. 작품에 담긴 의미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일상에서 실천하는 과정이다. 예술을 통해 감성을 기르고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 삶의 태도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생각은 환자를 대하는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의학적 지식과 과학적 판단이 진료의 기본이라면 환자의 말을 듣고 처지를 헤아리는 마음 역시 중요하다는 것이다.

“의사는 환자의 병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치료해야 합니다. 하지만 환자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이해하려는 마음도 필요합니다. 예술을 통해 감성을 기르는 일은 환자를 대할 때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김 원장은 후배 의사들에게도 예술 활동을 권한다. 바쁜 진료와 학업 속에서도 음악과 미술을 가까이하며 마음을 가꾸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예술이 의학적 전문성을 대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환자를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는 판단에서다. 오랜 세월 의사로 살아온 그에게 서화는 뒤늦게 되찾은 취미를 넘어 삶을 돌아보는 배움의 과정이다. 붓으로 글과 그림을 표현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작품에 담긴 뜻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과정 자체가 예술의 가치라고 본다.

경북대 의과대학 김범진 학생이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동아리 활동하며 많은 위로 받아

개나리의 따뜻함 전하는데 집중

아름다움 보다 감정 표현에 의미

김범진 경북대 의대 학생...

개나리에 담긴 희망

경북대 의대 유화 동아리 ‘아름’에서 활동하는 김범진 학생은 유화 ‘개나리’에 불확실한 시간 속에서 발견한 희망을 담았다. 2025년 봄에 그린 작품으로, 의정 갈등으로 휴학하며 학업과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에 탄생했다. 그는 “학교에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학업이나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 봄에 피어난 개나리를 보면서 지금의 어려움도 언젠가는 지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작품을 표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추운 겨울을 지나 피어나는 개나리에서 희망을 발견한 김범진은 밝은 노란색을 중심으로 작품을 구성했다. 평소 빈센트 반 고흐의 화풍을 좋아했던 그는 물감을 두껍게 쌓아 올리고 거친 붓터치를 활용해 꽃의 생동감과 질감을 표현했다. 꽃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 색채와 질감을 통해 봄의 따뜻함을 전하는 데 집중했다.

그림은 휴학 기간 일상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학업과 진로에 대한 고민에서 잠시 벗어나 작품에 집중할 수 있었고, 오랜 시간을 들여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면서 성취감도 느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는 학업이나 진로에 대한 고민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작품에 집중하다 보면 다른 생각을 내려놓게 되고, 하나의 그림을 완성했을 때는 뿌듯함도 느꼈습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이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의대 입학 후 새로운 취미를 만들기 위해 유화 동아리에 가입한 그는 색감과 질감을 표현하고 작품을 완성해가는 과정에 매력을 느꼈다. 2023년에는 고래가 있는 바다 풍경을, 2024년에는 거북이를 중심으로 한 바다 풍경을 그렸다. 이전 작품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면 ‘개나리’는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담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 “예전에는 제가 좋아하는 풍경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번 작품은 제가 직접 겪은 상황과 감정을 담았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제 마음을 돌아보게 됐고, 그 감정을 색과 붓질로 표현하는 과정도 의미 있었습니다.”

의학 공부가 정확한 지식과 판단을 요구한다면 그림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 같은 대상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는 의사가 된 뒤에도 그림을 꾸준히 이어가며 자연 풍경과 일상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언젠가는 그림을 본업으로 삼는 날도 꿈꾸고 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시간도 결국 삶의 일부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앞으로도 의학 공부를 이어가면서 그림을 놓지 않고 싶습니다.”

김범진은 자신의 작품이 관람객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 작품을 통해 따뜻함과 희망을 찾기를 바란다는 소망이다. “다른 분들도 학업이나 진로에 대한 고민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시간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그림을 보면서 따뜻함을 느끼고, 각자의 어려움 속에서도 작은 희망을 발견하셨으면 합니다.”

유채현기자 ych@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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