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원 달서구청소년문화의집 관장
최근 넷플릭스 콘텐츠 ‘참교육’이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 작품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속이 시원하다고 말한다. 학교폭력과 청소년 범죄를 저지른 학생들이 단호한 응징을 받는 장면은 현실에서 느끼지 못했던 정의를 대신 실현해 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작품의 인기는 자연스럽게 촉법소년 연령 하향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드라마가 던진 질문은 단순하다. 잘못한 청소년에게 지금보다 더 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회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거나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때마침 정부 역시 살인, 성범죄, 강도 등 중대한 범죄에 대해서는 조건부로 형사책임 연령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러한 변화는 어쩌면 예상된 결과인지도 모른다. 청소년 범죄는 점차 흉포화되고 있으며 피해자와 가족들이 겪는 고통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촉법소년이라 괜찮다는 왜곡된 인식이 일부 청소년 사이에 퍼져 있다는 사실도 국민들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이렇게 사회가 분노하는 이유는 처벌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정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번쯤은 질문을 바꾸어 볼 필요가 있다. 연령을 한 살 낮춘다고 범죄는 줄어들까. 만약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면 지금까지 반복되어 온 촉법소년 논쟁은 이미 끝났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처벌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청소년 범죄의 원인을 해결할 수 없었고, 다른 나라에서도 단순한 연령 하향이 재범을 줄이지 못했다는 사례가 적지 않다. 반대로 일부 전문가들은 발달 과정에 있는 청소년의 특성을 고려해야 하며 국제적 기준에도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지금까지의 논쟁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은 피해자였다. 촉법소년 사건은 보호절차라는 이유로 피해자가 사건 진행 과정이나 처분 결과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해자의 회복도 중요하지만, 피해자의 회복은 더욱 중요한 관점이 될 수 있는데, 정의는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자신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받고 안전하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때 비로소 사회는 정의를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이제는 찬성과 반대라는 단순한 선택을 넘어 새로운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 중대한 범죄와 상습범죄에 대해서는 사회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하지만, 동시에 그 책임은 처벌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청소년이 자신의 행동을 성찰하고 피해를 회복하며 다시 공동체 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전문적인 상담과 교육, 교화 프로그램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피해자에게는 진술권과 처분 결과를 알 권리, 재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보호체계를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
또한 부모는 자녀의 잘못을 감싸는 방어자가 아니라 함께 책임을 나누는 교육의 주체가 되어야 하며, 학교는 생활교육과 교권을 회복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지역사회는 위기 신호를 조기에 발견해 개입할 수 있는 촘촘한 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 결국 청소년 범죄는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공동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청소년활동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 보면 대부분의 문제행동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지 않는다. 관계의 단절이 먼저 있었고, 돌봄의 공백이 있었으며,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아 줄 어른의 부재가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행동을 이해만 하자는 것은 아니다. 책임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책임은 응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변화와 회복으로 이어져야 한다.
‘참교육’이 우리 사회에 던진 진짜 질문은 촉법소년 연령을 낮출 것인가가 아니다. 우리는 처벌만으로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가, 아니면 책임과 회복이 함께 작동하는 공동체를 만들 것인가. 드라마가 주는 통쾌함은 두 시간이면 끝난다. 그러나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다. 청소년을 올바르게 성장시키고 피해자를 두텁게 보호하며 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은 훨씬 더 오래 걸린다. 그 느리고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진짜 ‘참교육’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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