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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대구논단] 자기생살(自己生殺)

이재명 대통령이 대통령 4년 중임제 또는 연임제 제안과 함께, 이를 위해 자신의 임기를 단축하는 방안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밝히면서 정국에 또다시 개헌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대구논단] 자기생살(自己生殺)

이석형 객원논설위원 행정학 박사

이재명 대통령이 대통령 4년 중임제 또는 연임제 제안과 함께, 이를 위해 자신의 임기를 단축하는 방안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밝히면서 정국에 또다시 개헌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이 어느덧 4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르면서 급변한 시대 상황과 국민적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에 다수 국민과 정치권이 깊이 공감하고 있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1987년 헌법 체제의 핵심인 ‘대통령 5년 단임제’는 소위 군인 출신 권위주의 정부의 장기 집권을 막고 민주화를 정착시키는 데 역사적 소임을 다했다. 그러나 임기 후반 국정 동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정책의 연속성이 약해지며, 권력이 1인에게 과도하게 집중되는 제왕적 권력구조의 폐단 등 여러 치명적인 한계를 드러내 왔다. 또한 87년 체제 아래서 지방자치를 30여 년 실시해 오고 있지만, 여전히 중앙과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한이 쏠려 있다. 따라서 지방분권과 국민 기본권을 강화하고, 대통령과 국회의 권한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논의는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지난 10여 년 전부터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개헌의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되었으나, 선거가 끝나면 정치권의 이해득실에 따라 번번이 흐지부지되었다. 그런데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파격적으로 임기 단축 카드까지 제시하며 개헌 필요성을 언급함에 따라 개헌 논의는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와 함께 대통령 권한 일부를 국회로 넘기고 5·18 정신과 부마항쟁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는 구상과 함께, 구체적 내용은 여야 합의로 국회에서 정해야 한다는 원칙도 제시했다. 그 자체만 놓고 보면 개헌을 향한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야권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정권 연장을 위한 정치적 술책이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핵심은 이 대통령이 바뀐 헌법 아래서 다시 출마하지 않겠다는 불출마 선언을 명확히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직 대통령이 자신의 연임 가능성에 대해 명확한 답을 하지 않은 채 개헌을 제안하는 순간, 아무리 좋은 권력 분산 방안을 함께 내놓더라도 국민의 의구심을 완전히 피하기는 어렵다.

물론 현행 헌법은 제128조 제2항에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개헌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해서는 효력이 없다’라고 명시한 강력한 안전장치를 두고 있다. 그러나 개헌을 추진하면서 이 조항을 어떻게 수정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의 개헌 논의에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본질은 대통령 권한을 얼마나 국회로 넘길 것인가가 아니라, 현직 대통령이 새 헌법의 수혜자가 될 것인가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재명 대통령 개인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대통령이 그 자리에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현직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를 연장하거나 중임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태에서 임기제도 자체를 바꾸려 한다면, 국민은 그 개헌안을 국가의 미래를 위한 제도 개혁으로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대통령에게 유리한 제도 변경이라는 의심이 생기는 순간 개헌의 명분은 크게 훼손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정말 4년 중임제가 국가에 필요하다고 믿는다면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개헌이 이뤄지더라도 나는 다시 대통령에 출마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하면 된다. 그 한마디면 족하다. 그렇게 하면 개헌 논의의 초점은 대통령 개인의 신상 문제에서 헌법 제도 본연의 논의로 완전히 옮겨갈 수 있다. 4년 중임제가 5년 단임제보다 책임정치에 적합한지, 대통령 권한 일부를 국회에 넘기는 것이 권력분립에 도움이 되는지, 총리 추천권과 감사 기능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본격적인 토론을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연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끝내 하지 않는다면 개헌 논의는 또다시 정쟁의 늪에 빠져 물밑으로 가라앉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현직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위한 개헌이라는 야당과 국민의 의심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개헌은 특정 대통령의 임기를 늘리거나 조율하는 기술이 아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림 없이 작동해야 하는 국가의 기본 규칙을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 개헌을 추진하는 권력자는 오히려 자신에게 불리한 원칙을 먼저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나는 이 개헌의 수혜자가 되지 않겠다”라는 선언이야말로 현직 대통령이 개헌의 진정성을 입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결국 이재명 대통령이 자신의 기득권이나 살집을 스스로 도려내는 아픔을 감수하면서 새로운 틀을 짜는 결단인 ‘자기생살(自己生殺)’의 모습을 보여줄 때, 비로소 개헌은 단순히 한 정권의 과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시대적 과제로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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