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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달러 가치 훼손’만 부추기는 시장 개입 역효과 [트럼프 스톡커]

2024년 7월부터 글로벌 대형 자산운용사 뱅가드를 이끌고 있는 살림 램지 최고경영자(CEO). 그는 뱅가드 역사상 최초로 외부에서 영입된 CEO다.

2024년 7월부터 글로벌 대형 자산운용사 뱅가드를 이끌고 있는 살림 램지 최고경영자(CEO). 그는 뱅가드 역사상 최초로 외부에서 영입된 CEO다. 지난 20일(현지 시간) 뱅가드는 최근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의 주요 요인으로 꼽히는 인공지능(AI) 관련 전체 채권 발행 규모가 2027~2030년 연간 1조 달러(약 1400조 원)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사진 제공=뱅가드

11월 3일(현지 시간) 중간선거를 앞두고 다급하게 국채시장에 개입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시도가 달러화 가치 하락만 부추길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시장 참여자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국채 금리 상승 억제 노력 역시 실패할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통상 미국 국채 금리가 오르면 달러화 수익성도 그만큼 좋아지기에 화폐 가치가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현 월가는 단기적으로 채권 가격은 채권 가격대로 떨어지고 달러화 가치는 달러화 가치대로 급락하는 상황을 가정하는 모양새다. 이는 국채 금리와 달러화 가치가 당분간 서로 다른 요인에 따라 움직일 것이라고 판단한 결과다. 월가에서는 국가부채 급증, 중동 전쟁 장기화, 국제 유가 상승, 대규모 인공지능(AI) 투자 경쟁 격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완화 정책 주기 종료 등 근본적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요인이 국채 금리를 꾸준히 밀어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엔·달러 외환시장 개입, 바이백(국채 재매입) 규모 확대 같은 트럼프 행정부의 인위적인 정책만으로는 이를 막기 힘들다는 게 월가의 중론이다. 그러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는 달러화 유동성만 늘려 화폐 가치만 직접적으로 흔들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달러화만 희생하고 금리는 못 잡는 정책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셈이다. 달러화 가치와 국채 가격 움직임이 충돌할 경우 단기적으로 상승한 가상화폐와 금 가격 역시 오름세를 지속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美재무 ‘바이백’ 확대 비웃는 금융시장...국채 금리는 더 오르고 달러화 가치만 급락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이 지난 20일(현지 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1일 글로벌 채권시장에서는 3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가 0.01%포인트 오른 5.28%, 글로벌 채권시장의 추종지표(벤치마크)인 10년물이 0.03%포인트 상승한 4.73%를 기록했다. 월가에서는 미국 국채 10년물과 30년물의 심리적 저항선을 4.5%, 5.0% 정도로 책정하고 있다. 미국 국채 30년물은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준거 역할을 하기에 부동산 경기에도 직결된다.

이날 국채시장의 반응은 금리를 잡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으름장을 비웃는 결과였다. 앞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19일 국채 장기물 바이백 규모를 회당 20억 달러(약 2조 7700억원)에서 최소 40억 달러로 두 배 확대하는 조치를 전격 발표했다. 국채 바이백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기존 국채를 다시 사들이는 방식이다. 특정 만기 구간의 유동성을 높이는 효과를 낸다. 이번 조치의 적용 기간은 다음달 9일부터 중간선거 다음날인 11월 4일까지이고, 확대 대상은 10~20년물과 20~30년물 구간이다. 베선트 장관은 20일에도 CNBC에서 바이백 규모가 회당 40억 달러를 넘길 수도 있다며 “우리는 정책 수단이 많다”고 경고했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이 소식에 19일 장중 한때 4.65%로 내려갔지만, 20일 곧바로 4.71%대로 복귀했다. 19일 5.19%까지 하락했던 30년물 금리도 20일 5.27% 이상으로 반등했다. 이어 국채 금리는 21일 한 차례 더 오르며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에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을 이어갔다.

시장의 이 같은 반응은 투자자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바이백 규모 확대 정책을 효력이 제한적인 임시 처방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 국가부채 급증, 고유가, AI 투자 열풍에 따른 회사채 공급 증가 등 구조적인 인플레이션 요인이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채권 유동성만 조절하는 방식으로는 금리를 억제하기가 매우 어렵다. 바이백 규모가 40억 달러로 늘더라도 그 비중은 국채 10~30년물 전체 잔액의 2.4%에 불과할 정도로 작다.

오히려 21일 금융시장에서 눈길을 끈 지점은 전날부터 이어진 국채 금리 상승이 아닌 갑작스러운 달러화 가치 하락에 있었다. 이날 유럽연합(EU) 유로화, 일본 엔화, 영국 파운드, 캐나다 달러, 스웨덴 크로나, 스위스 프랑 등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반영하는 달러인덱스(DXY)는 98.80으로 내려가 5월 13일(98.52) 이후 약 100일 만에 최저치가 됐다. 달러인덱스는 브레턴우즈 체제의 금본위제를 끝내고 변동환율제를 도입했던 1973년 3월의 달러 가치를 100으로 놓은 뒤 현재의 가치를 따지는 지수다. 시장 참여자들이 베선트 장관의 발언을 시중에 달러 유동성을 계속 풀어 국채 금리를 억지로 누르겠다는 메시지로 해석했다는 방증이다.

채권은 물가, 환율은 인위적 정책에 따라 별개로 움직이는 데 베팅...日외환시장 개입 때 이미 경험

가타야마 사쓰키 일본 재무상. EPA연합뉴스

통상적인 상황에서 시장의 달러 약세 베팅은 트럼프 행정부가 달러화 표시 자산의 수익률, 즉, 국채 금리를 낮추는 데 성공할 것이라고 예상할 때 이뤄진다. 그럼에도 이날 투자자들은 특이하게 국채 가격과 달러화 가치 하락에 모두 기대를 걸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시장 개입이 금리 억제 효과는 내지 못하고 달러화에 대한 신뢰만 훼손할 것이라고 봤다는 뜻이다.

실제 미국 재무부는 지난달 30~31일부터 1998년 이후 28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 재무성과 엔화 매수에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장기채 금리를 안정시키는 데에 실패했다. 엔·달러 환율은 일본 재정확대 정책 우려와 맞물려 이달 10일부터 다시 159엔을 돌파하면서 160엔 선에 재차 다가섰다. 이 과정에서 12일 100을 넘었던 달러인덱스도 13일부터 90대로 내려왔다. 트럼프 행정부의 인위적 개입 정책이 국채 가격과 달러화 가치를 모두 떨어트리는 상황을 시장 참여자들이 불과 며칠 전에 이미 경험한

것이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월가 전문가들은 이번에도 트럼프 행정부가 달러만 희생시키고 장기 금리를 억제하지 못할 가능성을 상당히 유력하게 내다보고 있다.

이는 잠재적인 인플레이션 상승 요인 가운데 어느 것도 해소될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 우선 미국의 국가부채 규모가 지나치게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19일 재무부는 미국의 총 국가부채가 18일 기준으로 40조 470억 달러(약 5경 5645조 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국가부채가 30조 달러를 넘어선 시점이 2022년 1월인 점을 감안하면 불과 4년 만에 10조 달러가 더 불어났다. 2026 회계연도(2025년 10월~2026년 9월) 종료를 두 달가량 앞둔 현 미국 행정부의 누적 이자 비용만 1조 1700억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15% 증가했다.

AI 투자를 위한 기업들의 빚 또한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20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구글 모회사 알파벳과 아마존,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 마이크로소프트(MS), 오라클 등 5대 하이퍼스케일러(초대형 AI 데이터센터 운영사)의 2020~2024년 부채 발행액은 연평균 300억 달러(약 42조 원) 미만이었지만, 지난해와 올해에는 각각 1000억 달러(약 140조 원)와 2000억 달러(약 280조 원)를 돌파했다. 이들 가운데 지난 1년간 회사채로 자금을 조달하지 않은 기업은 마이크로소프트 한 곳뿐이다. 자산운용사 뱅가드는 나아가 이들 5곳을 포함한 전체 AI 관련 채권 발행 규모가 2027~2030년 연간 1조 달러(약 1400조 원)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빚에 빚을 얹는 회사채 물량이 대량으로 쏟아지다 보니 추가 채권을 발행할 때마다 금리는 계속 올라가고 있다. 미국 국채 대비 알파벳 회사채의 추가 금리(스프레드)는 올 4월 0.63%포인트에서 이달 0.85%포인트로, 아마존은 지난해 11월 0.55%포인트에서 7월 0.80%포인트로 각각 상승했다. 신용등급이 가장 낮은 오라클은 지난해 9월 1.05%포인트에서 올 2월 1.45%포인트로 뛰었다.

20일에는 미국 반도체기업 브로드컴도 600억 달러(약 84조원) 이상의 부채 조달을 대주단과 협의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자금 조달에 300억 달러 규모의 후순위 채권 발행도 포함될 수 있다. 브로드컴의 선순위 담보부채권 보증 규모가 1000억 달러에 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가부채, 유가, AI 빚투, 연준 긴축 등 근본 원인 모두 미해결...중간선거 때까지 무리수 이어질 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동반한 중동 전쟁의 장기화는 인플레이션 불확실성을 키우는 최대 주범이다. 14일부터는 트

럼프 행정부가 이란의 교역 상대국에 대한 경제 제재를 예고하면서 국제 유가가 6거래일 연속 상승 곡선을 그렸다. 21일 영국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10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은 94.39달러로,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0월 인도분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선물은 87.06달러로 각각 치솟았다.

시장 금리가 먼저 폭등하니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확률도 쉽게 떨어지지 않고 있다. 시카고상업거래소(CME)의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선물시장은 연준이 9월 15~1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금리를 현 3.50~3.75%로 동결할 확률을 일주일 전인 14일 66.9%에서 21일 60.1%로 낮췄다. 반대로 인상 확률은 33.1%에서 39.9%로 높여 잡았다. 연준이 19일 공개한 지난달 28∼29일 FOMC 정례회의 의사록에서도 다수의 위원은 물가상승률이 연준의 목표치인 2%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으면 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채 가격과 달러화 가치가 동시에 떨어지면 다른 자산들의 가격도 딜레마 상황에 직면한다. 당장은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니 대안 안전자산인 금 현물 가격이 21일 2.2% 오른 트로이온스당 4615.65달러에 거래됐다. 대체 화폐인 비트코인 가격도 이번주 22%가량 상승하며 7만 7000달러 선까지 올랐다. 비트코인의 강세에 21일 코인베이스(8.20%)와 로빈후드(13.70%) 등 가상화폐 관련주도 급등했다.

문제는 금에는 이자가 없기에 채권 금리가 함께 오를 경우 상승세를 이어가기 어렵다는 점

이다. 21일 CNBC에 따르면 미국 예측시장 플랫폼 칼시에서 거래되는 비트코인 연말 가격의

평균값도 약 7만 5000달러에 그쳤다. 투자자들이 달러 약세에도 금리 불확실성 때문에 비트코인 가격이 지금보다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 재무부가 적극적으로 달러 약세를 유도하고 있음에도 일본 기업과 국민들마저 엔화 약세에 베팅하고 있다. 21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일본 내 은행이 보유한 외화 예금 잔고는 지난 2분기 26조 1000억 엔(약 227조 8000억 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18%나 증가했다. 특히 외화 예금 잔액이 3조 9772억 엔(약 34조 7000억 원)이나 증가해 일본 정부가 이를 전면 허용한 1998년 이후 28년 만에 최대폭으로 늘어났다. 개인의 외화 예금 잔고 보유액은 지난해 2분기보다 8% 늘어난 6조 7000억 엔(약 58조 원), 기업의 잔고는 22% 증가한 19조 3000억 엔(약 168조 원)을 각각 나타냈다. 일본 사람과 기업들이 그만큼 엔화를 달러 등으로 바꿔 은행에 보관해 뒀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과 일본의 엔·달러 환율 개입 정책이 쉽게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중간선거를 겨냥한 트럼프 행정부의 금리 안정 정책이 초기부터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으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더 커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예측 불가한 조치가 더 빈번하게 나올 수 있는 까닭이다. 금리 상승과 달러화 가치 하락 속도 가운데 무엇이 더 빠른지에 따라 각 자산 가격도 연일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는 역설적으로 금리를 밀어올리는 인플레이션의 근본 문제들을 한두 달 안에 무엇도 해결하기 어렵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자신감 결여에서 비롯된 현상이기도 하다.

※ ‘트럼프 스톡커(Stocker)’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 투자에 도움이 될 만한 미국의 시장·기업·정책·정치·외교 관련 현장 이야기와 현안 분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구독하시면 유익한 미국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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