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전경. 뉴시스
서울 전역과 경기도 12개 지역으로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확대한 지 1년 간 서울 주택 토지거래허가 신청 가운데 불허·반려 비율이 약 1000건 중 1건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투기 억제를 목적으로 광범위하게 허가구역을 확대 지정했지만 정작 집값 안정 효과를 거두지 못한 채 일선 자치구들이 실거주 요건 확인과 거주 이행 조사에 행정력을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청자의 서류 준비와 대기, 자치구의 인력 투입과 행정 비용을 고려할 때 일률적인 토지거래 사전 허가의 필요성을 재점검하고 단계적으로 토지거래허가제도의 출구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서울경제신문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서울시의 ‘25개 자치구 주택 토지거래허가 신청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10월 20일부터 올해 8월 31일까지 전체 주택 토지거래허가 신청은 6만6276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불허는 54건, 반려는 17건으로 총 71건을 기록해 전체 신청 건수의 0.1%에 그쳤다. 허가 비율은 96.6%였으며 신청자가 취하·철회한 경우는 3.3%(2215건)였다. 취하·철회 배경에는 대출 실행 등 자금 조달 차질이 상당 비중인 것으로 전해졌다.이번 서울 집계는 접수일 기준으로 단독·다가구·다세대·연립·아파트와 분양권·입주권·부담부증여 등을 포함한다.
특히 서울 외곽 지역에 매수세가 몰리면서 7435건으로 가장 많은 토허 신청 건수를 기록한 노원구는 불허가 0건이고 반려만 2건으로 집계됐다. 도봉·성북·은평·구로·금천구에서도 불허 건수는 0건으로 나타났다. 이들 6개 구에 접수된 신청 건수는 2만2790건으로 약 34%를 차지했음에도 불허 건수가 전무한 것이다.
반려 비율이 극히 낮은 이유는 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일선 자치구의 심사가 법령상 이용 목적과 실거주 요건을 충족했는지 확인하는 데 집중되기 때문이다. 강동구 관계자는 “투기성 거래를 판별하기보다는 정확한 요건을 충족했는지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강서구 관계자도 “요건에 맞고 2년 실거주를 하겠다고 하면 대부분 허가하고 있다”며 “정식 신청 전 사전 검토를 하기 때문에 거절되는 일이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투기 억제라는 정책 목적을 실거주 의무를 통해 집행하면서 확인과 관리에 행정력이 지속적으로 투입되는 구조가 나타나는 셈이다.
실제 불허 사유를 분석하면 실거주 유예·임시특례 요건과 관련된 사례가 26건으로 전체 54건의 절반에 가까웠다. 동작구에서는 매수인의 해외파견 결정으로, 성동구에서는 해외 거주에 따른 4개월 이내 전입 불가로 불허됐다. 무주택 세대 구성원 요건이나 임대차 기준일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도 일부 있다.
허가율은 높지만 모든 신청을 심사하고 이후 실거주 여부까지 확인해야 해 행정 부담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김 의원실에 따르면 평균 처리기간은 노원구가 14근무일로 사실상 3주에 달했고 송파구 12근무일, 강서구 10근무일, 강동구 8근무일이었다. 전담인력 3명이 근무하는 한 자치구 관계자는 “서류를 접수하는 것 이상으로 제도를 설명하고 신청서 작성을 돕는 상담에 시간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등기부와 건축물대장 등 서류에 익숙하지 않은 신청자에게 작성 예시를 안내하는 일도 담당자의 몫이다.
허가 이후에는 현장 조사도 이어진다. 자치구는 허가 건에 대해 연 1회 정기적으로 거주 여부를 확인한다. 강서구 관계자는 “전화로 갈음하지 않고 직접 방문하다 보니 민원인 일정에 맞춰 저녁이나 주말에 조사하기도 해 부담이 큰 상황”이라며 “전담 직원이 퇴사해 자리가 빈 상태에서 직원 3명이 다른 업무와 허가 업무를 병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동구 역시 4명을 배치했지만 실거주 조사까지 맡아 추가 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자치구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연간 수천건의 거래를 3~4명의 직원이 직접 나가서 조사하는 건 불가능해서 의심 사례 위주로 현장 조사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고 전했다.
행정 비용 등 사회적 비용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기존 규제에 사전 허가와 실거주 의무까지 더한 중첩 규제의 지속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지영 신한은행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이미 투기과열지구 등 규제 수단이 있는 상황에서 풍선효과를 막기 위해 실수요 거래가 있는 지역까지 광범위하게 묶었다”며 “투기 우려가 낮은 지역은 시장 상황에 따라 해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거주 의무가 전월세 공급까지 제약할 수 있어 행정 부담과 함께 임대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매수자의 직접 입주 의무가 완화되면 임대 물량의 순환을 도울 수 있다”며 “외곽지역의 경우 허가구역 해제가 전세시장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해제지역으로 수요가 이동하거나 갭투자가 유입될 가능성은 변수다. 양 위원은 단기적인 가격 반응과 중장기적인 시장 안정이라는 목표를 구분해 정책을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지정 범위와 기간을 조정해달라고 적극 요구하고 있다. 경기도는 지난달 22일 8·13 주택공급 대상지로 정해진 곳 외에는 토허 구역을 해제하고 지정 단위를읍·면·동 단위로 세분화하는 내용을 정부에 건의했다. 거래 위축과 도민 재산권 보호 등을 건의 사유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전날 국정감사에서 토허구역을 두고 실거주 의무가 전월세난을 심화시키고 매매가격을 밀어 올릴 수 있다고 “결단이 필요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정부는 연말까지 시장 상황을 지켜보고 토허제 연장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김 의원은 “정부는 서울 전역에 사전 허가를 요구하는 것이 국민이 감수하는 절차 부담에 상응하는 효과가 있는지 검증해야 한다”며 “시장 상황을 살피며 외곽 지역을 포함해 과열 우려가 낮은 곳부터 단계적으로 해제하고, 투기 우려가 확인되는 곳에 한해 서울시·자치구와 충분히 협의해 운영해야 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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