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근 객원논설위원
[데일리로그 = 이상근 객원논설위원(現 삼영물류 대표)] 세계의 공장은 오랫동안 중국이었다. 값싼 노동력과 거대한 내수 시장, 그리고 촘촘하게 구축된 항만·도로·철도 등의 인프라는 글로벌 제조업과 국제물류를 중국 중심으로 묶어 두는 가장 강력한 기반이었다. 국제물류 역시 이 구조를 전제로 최적화됐다. 아시아에서 생산해 미주와 유럽으로 보내는 장거리 해상운송은 오랫동안 가장 효율적인 글로벌 공급망 모델처럼 작동했다.
하지만, 팬데믹은 이러한 구조가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특정 지역의 봉쇄와 항만 혼잡, 컨테이너 부족은 단순한 물류 차질이 아니라 글로벌 생산과 유통 전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여기에 미·중 전략 경쟁까지 겹치면서 공급망은 더 이상 경제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 됐다.
최근에는 중동지역의 군사적 긴장까지 국제물류 리스크를 확대시키고 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해상 운송의 약 20% 이상이 통과하는 전략적 해상로로 평가된다. 만약 군사 충돌이나 해상 통항 제한이 발생할 경우 에너지 공급뿐 아니라 글로벌 물류 비용과 운송 안정성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기업들은 점차 하나의 사실을 깨닫고 있다. 중국에만 의존하는 공급망 구조는 평소에는 효율적일 수 있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다. 결국 오늘날 글로벌 공급망 전략의 핵심은 더 이상 '어디에서 가장 싸게 생산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디까지 분산해야 위기에도 멈추지 않는가'라는 질문으로 이동하고 있다.
- 생산 이전이 아닌 공급망 리스크 분산
탈중국 전략은 흔히 생산기지 이전으로 단순하게 이해된다. 그러나 국제물류 관점에서 보면 이는 훨씬 복합적인 변화다. 생산지가 이동하면 단순히 공장 위치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물류 루트, 운송 방식, 리드타임, 재고 전략까지 동시에 재설계해야 한다.
최근 글로벌 전자·가전 산업에서 이러한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많은 기업들이 중국 중심 생산 구조에서 벗어나 베트남, 태국, 인도 등 동남아시아로 생산 거점을 분산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흔히 탈중국으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중국을 완전히 떠나는 것이 아니라 생산 거점을 여러 지역으로 나누는 방식에 가깝다.
대표적인 사례가 애플(Apple)이다. 애플은 여전히 중국에서 대규모 생산을 유지하고 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인도와 베트남 생산 비중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아이폰 생산 일부가 인도로 이동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중국을 떠나기 위한 전략이라기보다 공급망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리스크 분산 전략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이러한 변화는 물류 구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기존에는 중국 연안 항만 중심으로 구축된 해상 네트워크가 글로벌 물류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생산 거점이 동남아시아로 확대되면서 선사들은 동남아 항만을 연결하는 항로를 늘리고 기존 노선을 재편해야 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재고 전략이다. 팬데믹 이전에는 가능한 한 재고를 줄이는 ‘저재고 전략’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공급망 중단 위험에 대비해 전략 재고를 일정 수준 유지하려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탈중국의 핵심은 결국 중국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공급망 리스크를 분산하는 것이다.
- 물류의 중심이 지역으로 이동
탈중국과 함께 주목받는 전략이 니어쇼어링이다. 니어쇼어링은 소비시장과 가까운 지역으로 생산을 이전하는 전략이다. 과거에는 생산 비용이 가장 낮은 지역을 중심으로 공급망이 구성됐지만 최근에는 운송 안정성과 리드타임이 중요한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의 멕시코 생산 확대는 대표적인 니어쇼어링 사례다. 과거에는 아시아에서 생산해 해상으로 미국까지 운송하는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멕시코 생산이 늘어나면서 북미 지역 내 공급망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글로벌 기업들의 생산 전략에서도 확인된다. 예를 들어 테슬라(Tesla)는 미국 텍사스, 중국 상하이, 독일 베를린 등 여러 지역에 생산 거점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특정 지역에서 생산 차질이 발생하더라도 다른 거점에서 생산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를 구성한 것이다.
유럽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난다. 동유럽과 북아프리카는 유럽 시장과 가까운 생산 거점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국제물류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 과거 글로벌 물류의 중심이 장거리 해상운송이었다면 이제는 지역 기반 공급망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 프렌드쇼어링과 지정학 리스크
최근 공급망 전략에서 또 하나 주목받는 개념이 프렌드쇼어링이다. 프렌드쇼어링은 정치적으로 안정적이고 협력 관계가 유지되는 국가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구성하는 전략이다.
이러한 전략이 등장한 배경에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있다. 특히, 중동 지역의 긴장은 국제물류 기업에게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홍해 항로는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핵심 해상 루트이며 수에즈 운하와 연결된 글로벌 물류의 핵심 축이다. 만약, 이 지역의 해상 안전성이 악화될 경우 선박들은 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하는 장거리 항로를 선택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우회 항로는 운송 기간을 약 10~15일 이상 증가시키고 해상 운임과 보험료 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 지정학 리스크는 단순한 정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물류 구조를 변화시키는 핵심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 기업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공급망 전략을 조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생산을 베트남 중심으로 운영하면서 인도와 브라질 등 여러 지역에 생산 거점을 구축해 왔다. 이는 글로벌 시장과 가까운 생산 거점을 활용해 물류 리스크를 분산하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 분산되는 공급망, 복잡해지는 물류
이러한 변화는 국제물류 지도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과거처럼 몇 개의 초대형 생산 거점과 허브 항만에 집중된 구조에서 벗어나 여러 지역 거점이 연결되는 네트워크형 공급망으로 이동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인도, 멕시코, 동유럽 등 새로운 생산 거점이 등장하면서 글로벌 물류 흐름도 점점 분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기업에게 새로운 부담을 안겨준다.
생산지를 분산하면 운송 경로는 늘어나고 리드타임 관리와 재고 전략은 훨씬 복잡해진다. 특히, 중견·중소 수출입 기업에게 이러한 변화는 더 큰 도전이다. 글로벌 대기업과 달리 이들은 복수 생산 거점과 대체 물류 루트를 동시에 운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앞으로 국제물류 기업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단순한 운송 제공자가 아니라 복수 생산지와 시장을 연결하는 공급망 설계자로서의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
결국, 뉴노멀 시대 국제물류의 경쟁력은 단일 루트의 효율성이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도 운송을 유지할 수 있는 유연성에 달려 있다.
- 탈중국 이후 물류 전략이 기업 경쟁력을 결정
탈중국, 니어쇼어링, 프렌드쇼어링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다. 이는 글로벌 경제와 국제물류가 맞이한 구조적 전환이다. 생산과 물류는 더 이상 비용 논리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안정성, 지정학 리스크, 회복 가능성이 동시에 고려되는 시대가 됐다.
팬데믹, 미·중 갈등, 그리고 중동지역의 긴장은 하나의 공통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은 더 이상 단일 지역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차이나 이후의 세계에서 물류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지원 기능이 아니다. 이제 물류는 기업 경쟁력을 결정하는 전략 그 자체가 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또 다른 질문을 남긴다. 공급망을 분산한다고 해서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글로벌 물류는 더 많은 불확실성과 함께 움직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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