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열 농심 부사장. 사진=농심
한국금융경제신문=허지현 기자 |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농심 라면 한 번 안 먹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신라면, 짜파게티, 안성탕면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국민 라면 라인업’은 수십 년간 농심을 국내 식품업계의 절대 군주로 군림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지금 영광의 무게는 고스란히 독(毒)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경쟁사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전례 없는 메가 히트작을 터뜨리며 영업이익과 기업가치를 수 배씩 끌어올리는 동안 농심의 왕좌는 흔들리는 중이기 때문이다.
현재 시장과 업계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오너 3세 경영인인 신상열 미래사업실장(부사장)에게 쏠리고 있다.
신 부사장은 지난 3월 20일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사내이사에 공식 선임되며 경영 운전대를 완전히 쥐었지만 그가 마주한 현실은 참담하다.
신 부사장이 주도해 온 신사업들은 수년째 돈만 삼키는 하마로 전락했고 핵심인 라면 사업마저도 ‘외화내빈(外華內貧)’의 늪에 빠졌다.
농심이 그리는 미래, 이른바 ‘뉴 농심’의 성패는 전적으로 신 부사장의 경영 능력에 달렸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성적표는 ‘체질 개선 실패’와 ‘전략 부재’라는 신랄한 평가뿐이다.
한국금융경제신문은 신 부사장이 이끌어온 사업들의 성과와 농심이 처한 총체적 부진의 원인을 분석해 본다.
◆[Part 1] 아킬레스건 된 ‘라면 의존도 85%’…신상열 부사장의 멈춰 선 신사업 엔진
농심의 비즈니스 구조를 들여다보면 한쪽으로 쏠림이 심하다. 전체 매출에서 라면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85% 안팎이다. 스낵을 제외하면 사실상 라면 한 품목으로 회사를 지탱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포트폴리오는 원자재 가격 폭등이나 글로벌 공급망 위기, 내수 침체 등 외부 변수가 발생할 때마다 회사 전체를 흔드는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농심이 그리는 미래의 핵심 축은 늘 ‘탈(脫)라면’과 ‘사업 다각화’였다. 그리고 이 거대한 전환의 키를 쥐고 중심에 선 인물이 바로 오너 3세 신 부사장인 것이다.
신 부사장은 2021년 상무 승진 이후 구매실장과 미래사업실장을 거치며 농심의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하는 총책임자 역할을 맡아왔다. 그러나 그가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선 이후 거둔 신사업 성적표는 낙제점에 가깝다. 신사업들의 매출 비중은 수년째 전체 매출의 한 자릿수라는 미미한 수준에 갇혀 있다.
가장 대표적인 실패 사례가 그의 신성장 동력 1호로 꼽혔던 건강기능식품(건기식) 브랜드 ‘라이필’이다. 농심은 지난 2020년 자체 개발한 ‘저분자콜라겐펩타이드’를 앞세워 호기롭게 건기식 시장에 진출했다. 국내 건기식 시장이 수조 원 규모로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황금기였기에 시장의 기대도 컸다.
그러나 라이필의 현재 위상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론칭 이후 6년이 지났음에도 시장 내 존재감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가장 큰 원인은 브랜드 포지셔닝의 실패와 신 부사장의 마케팅 전략 부재다.
소비자의 뇌리에 각인된 ‘농심=라면·스낵’이라는 대중적이고 친근한 이미지는 프리미엄과 신뢰성을 생명으로 하는 건기식 브랜드로 가기 위한 거대한 장벽이 됐다. “라면 회사에서 만든 콜라겐과 유산균이 얼마나 몸에 좋겠냐”는 시장의 냉소적인 시선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여기에 대기업과 전문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우후죽순 뛰어들며 경쟁이 극도에 달한 레드오션 시장에서 농심은 차별화된 마케팅이나 독점적인 유통 채널을 확보하지 못했다. 후발 주자로서 판도를 뒤집을 만한 과감한 투자나 혁신적인 제품 라인업 확장 대신 정체된 콘셉트를 유지하다 보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마케팅 비용만 소모되는 악순환이 이어진 셈이다.
신 부사장이 주도한 첫 번째 메이저 프로젝트가 사실상 장기 침체 국면에 접어들면서 그의 경영 리더십에도 첫 번째 커다란 스크래치가 남았다.
◆[Part 2] 기대감만 키우는 ‘스마트팜’과 만년 샌드위치 신세 ‘음료 사업’
신 부사장이 언론과 시장에 자문해 온 또 다른 미래 먹거리는 ‘스마트팜’ 사업이다. 농심은 라면 스프에 들어가는 건조 채소 등 원료 수급 노하우를 바탕으로 중동 지역에 스마트팜 시스템을 수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사우디아라비아나 UAE 등 기후 여건상 농업이 어려운 국가들을 공략한 것은 영리한 틈새시장 공략으로 보였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스마트팜 사업이 과연 농심이라는 거대 기업의 국내외 매출과 영업이익을 견인할 수 있는 대규모 수익 모델로 정착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붙는다. 단발성 시스템 수출이나 일부 국책 과제 참여 수준을 넘어 연속성 있는 수익을 증명해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이 농심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식품기업’이 아니라 기술력을 갖춘 ‘테크 기업’으로서의 실질적인 가치 증명이다.
스마트팜 설비 구축은 초기 투자 비용과 유지 보수 비용이 막대하게 들어가는 비즈니스다. 글로벌 경기 둔화나 중동의 정세 변화에 따라 프로젝트 자체가 지연되거나 취소될 리스크도 크다.
신 부사장이 스마트팜을 농심의 주력 사업 반열에 올리려면 하드웨어 수출을 넘어 데이터 기반의 소프트웨어 구독 모델이나 대규모 상업용 농장 직접 운영 등 확실한 스케일업 대안을 보여줘야 하지만 현재까지는 구체적인 청사진 없이 “가능성이 높다”는 모호한 수사만 반복되고 있다.
신 부사장의 경영 능력 부재는 기존 비(非)라면 사업의 방치와 퇴보에서도 드러난다. 라면과 스낵을 제외한 기타 부문 중 가장 심각한 곳은 바로 음료 부문이며, 그중에서도 ‘백산수’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한때 농심은 생수 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제주삼다수’의 유통권을 잃은 후, 자체 생수 브랜드인 백산수를 출시하며 대대적인 반격을 예고했다. 중국 이도백하 지역에 수천억 원을 투자해 생산 공장을 짓고 백두산 원수를 강조하며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하지만 현재 백산수의 성적은 실망스럽다. 1위 제주삼다수의 벽은 단 한 번도 균열을 내지 못할 만큼 견고했고, 밑에서는 대형마트와 이커머스 플랫폼이 주도하는 초저가 PB(자체 브랜드) 생수 제품들이 무서운 속도로 치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백산수는 프리미엄 생수라는 애매한 포지셔닝에 갇혀 상위권과 하위권 사이에서 완전히 고립된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최근 수년간 매출 성장은 완전히 둔화되었고 유통 음료 부문 전반의 브랜드 파워도 약화되었다. 제로 음료, 기능성 음료 등으로 급변하는 대중의 소비 트렌트를 제때 읽지 못하고 과거의 오프라인 유통 영업 방식만 고수한 결과다.
신 부사장이 직접 경영의 지휘봉을 잡은 이후에도 음료 부문을 살려낼 실질적인 턴어라운드 실적 개선 대책은 전무한 상태다.
◆[Part 3] ‘한 발 늦은’ 글로벌 공략과 ‘신라면’ 그림자에 갇힌 성장의 한계
국내 시장의 정체를 돌파하기 위해 농심이 택한 길은 해외 시장이었다. 실제로 농심의 해외 매출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으며, 미국 현지 공장(1·2공장) 가동을 통해 북미 시장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역시 속내를 들여다보면 실속 없는 외형 성장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가장 큰 문제는 영업이익률의 부진이다. 미국 등 주요 거점 시장에 대규모 공장을 증설하고 인프라 투자를 감행하면서 막대한 비용이 선투입됐다. 물류비, 인건비, 원자재 가격 상승 압박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현지 법인의 운영 효율성을 극대화하지 못하다 보니 매출 덩치는 커졌지만 실제로 남는 돈은 시장의 기대치를 밑도는 현상이 수년째 지속되고 있다. 외형은 성장했으나 내실은 부실한 구조적 모순이 이어진 것이다.
더욱 치명적인 실책은 글로벌 K-푸드 트렌드를 리드하지 못하고 경쟁사에 주도권을 통째로 빼앗긴 ‘늑장 대응’에 있다. 경쟁사인 삼양식품이 불닭볶음면이라는 단일 메가 브랜드를 전 세계 문화 현상으로 진화시키며 전 대륙을 휩쓰는 동안 농심은 철저히 방어적인 포지션에 머물렀다.
특히 유럽 시장 공략 타이밍의 실기는 뼈아프다. 경쟁사가 2024년 유럽 판매법인을 세우고 2025년에는 물류법인까지 선제적으로 배치하며 유럽 대륙의 직진출 체제를 완료하는 동안 농심은 뒤늦게 가동을 준비하며 한 박자 늦은 추격을 시작했다.
글로벌 인프라 싸움에서도 밀렸다. 폭발하는 글로벌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경쟁사가 이미 수출 전용 신공장을 완공해 가동하며 물량을 쏟아내는 시점에 농심의 수출 전용 부산 녹산공장은 여전히 공사 중이며 올해 하반기에나 겨우 가동될 예정이다. 수요가 정점에 달했을 때 공급 물량을 대지 못해 시장을 내어준 꼴이다.
이 모든 글로벌 전략의 중심에 있는 신 부사장은 ‘신라면’이라는 거대한 그림자를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농심이 해외 시장에 내놓은 카드들을 보면 신라면 툼바, 신라면 로제 등 기존 신라면의 명성에 기댄 라인업 확장(스핀오프) 제품이 전부다.
신라면을 대체하거나 혹은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차세대 독자 브랜드’ 발굴 능력은 완전히 멈춰 섰다. 신라면이 출시된 지 4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까지도 40년 전 유산에만 의존해 글로벌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신 부사장이 농심홀딩스아메리카 CEO를 겸직하며 해외 사업을 총지휘하고 있음에도 “글로벌 감각과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Part 4] 주총 직후 터진 ‘뷰티 사업’ 카드, 뜬구름 잡는 승계용 보여주기인가
신사업 부진과 글로벌 실책으로 코너에 몰린 신 부사장이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선임된 직후 꺼내 든 카드는 뜻밖에도 ‘뷰티 사업 확장’이었다. 농심은 콜라겐을 활용한 화장품 개발 및 뷰티 시장 진출을 대대적으로 알리며 이를 신 부사장의 핵심 주도 사업으로 포장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과 투자자들의 반응은 싸늘함을 넘어 우려에 가깝다. 건기식 라이필 하나 제대로 안착시키지 못한 상황에서 그보다 경쟁이 훨씬 치열하고 고도의 트렌드 감각이 요구되는 화장품 시장에 진출해 성과를 내겠다는 발상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국내외 뷰티 시장은 이미 올리브영을 중심으로 한 H&B 스토어와 인디 브랜드, 그리고 전통의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이 촘촘하게 장악하고 있는 초과포화 시장이다. 식품 대기업이 화장품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브랜드 이미지 훼손과 막대한 손실만 입고 철수한 사례는 많다.
업계 일각에서는 신 부사장의 느닷없는 뷰티 사업 확장을 두고 “사내이사 선임 이후 오너 3세로서 무언가 보여줘야 한다는 조급증이 낳은 패착” 혹은 “탈라면이라는 명분을 쌓기 위한 뜬구름 잡기식 보여주기 경영”이라는 비판과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진정성 있는 사업적 고민과 철저한 시장 분석에 기반한 진출이라기보다 신 부사장 본인의 경영 승계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치적 쌓기용 이벤트’로 보인다는 의미다. 스마트팜, 건기식, 생수 등 기존에 펼쳐놓은 부진 사업들의 대책 마련과 구조조정이 시급한 시점에 또다시 새로운 리스크를 짊어지는 꼴이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실적으로 증명하라
사내이사에 선임된 오너 3세 경영인에게 시장이 바라는 것은 화려한 보도자료나 뜬구름 잡는 미래 비전이 아니다. 숫자로 증명되는 실적과 경영 성과다.
신 부사장의 경영 부진과 향후 대책을 묻는 질의에 대해 사측은 다소 원론적이고 궁색한 답변을 전달 받았다.
농심 관계자는 “건강기능식품, 스마트팜 등의 신사업은 모두 별도의 사업 부서가 사업을 추진중이고, 미래사업실 소속인 신 부사장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다”며 “미래사업실은 농심의 미래 먹거리를 개발하고 검토하는 조직으로, 정식 사업화가 결정된 이후에는 각 부서가 해당 사업을 주관한다”고 말했다.
농심은 현재 부진한 사업은 각 부서가 사업을 주관하며 신 부사장과는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신 부사장이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선 지금, 농심이 추진하는 사업이 신 부사장과 관련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신 부사장이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선 지금 농심의 위상은 흔들리고 있다. 안방에서는 경쟁사들에게 추격을 허용했고, 글로벌 시장에서는 골든타임을 실기했으며, 대안으로 내놓은 신사업들은 모호하다.
오너 3세 경영인이 본격적인 경영에 뛰어든 이상 이러한 총체적 난국의 중심에는 앞으로 늘 미래 먹거리를 진두지휘해 왔던 신 부사장의 이름 석 자가 걸려 있을 것이다.
이에 그가 주도하는 뷰티 사업과 스마트팜, 건기식이 진짜 뉴 농심의 날개가 될지, 아니면 힘겨운 승계 잔혹사를 증명하는 마지막 도화선이 될지는 오롯이 신 부사장의 리더십에 달려 있다.
신 부사장은 이제 본인이 짊어진 왕관의 무게를 엄중히 깨닫고 철저한 경영 쇄신과 실적 증명에 사활을 걸어야 할 때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