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왼쪽)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산 분할 파기환송심 2차 변론기일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태원(65) SK그룹 회장이 노소영(65)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지급해야 할 이혼 재산분할액이 파기환송심에서 9440억 원으로 정해졌다. 종전
항소심이 인정한
1조 3808억 원보다 4368억 원 줄어든 금액이다. 최 회장이 2017년 이혼 조정을 신청한 지 9년 만에 나온 사실심 판단이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가사1부(재판장 이상주 부장판사)는 전일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재산 분할 파기환송심 선고기일에서 “최 회장은 노 관장에게 9440억 원과 이에 대한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최대 쟁점은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이 부부 공동재산으로서 재산 분할 대상에 포함되는지 여부였다. 1심은 SK㈜ 주식을 최 회장의 특유재산으로 판단해 분할 대상에서 제외했다. 특유재산은 혼인 전부터 보유한 고유재산으로 원칙적으로 재산 분할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항소심을 따라
혼인 기간과 재산 형성 시점·과정 등을 종합해 노 관장의 기여를 인정하고 해당 주식을 분할 대상에 포함했다.
재판부는 “해당 주식은 혼인 기간 중 최 회장 명의로 취득한 재산으로 부부 모두가 형성과 가치 유지·증가에 기여했다고 인정된다”고 밝혔다.
분할 대상 재산의 가액 산정 기준일은 환송 전 항소심 변론 종결일로 정했다.
재판부는 재판상 이혼이 확정된 뒤 재산 분할을 청구하더라도 분할 대상 재산과 가액은 원칙적으로 이혼소송의 사실심 변론 종결일을 기준으로 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했지만 그 상승에 최 회장의 경영적 기여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며 “이혼이 확정된 후 주식 처분 여부에 따라 발생한 이익이나 손해까지 모두 전 배우자와 나눠야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최근 SK㈜ 주가가 급등하면서 어느 시점의 주가를 기준으로 재산 가치를 평가할지가 또 다른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바 있
다. 환송 전 항소심 변론 종결일인 2024년 4월 16일 당시 SK㈜ 주가는 16만 원대였지만 파기환송심 변론 종결일인 지난달 26일에는 81만 원대로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
다만 재판부는 환송 전 항소심 변론 종결일 이후 SK㈜ 주가가 크게 오른 사정을 재산 가액에는 반영하지 않는 대신 재산 분할 비율을 정할 때 고려했다. 공동재산을 보다 공평하게 나누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항소심에서 반영됐던 노태우 전 대통령 측의 300억 원 지원금은 노 관장의 기여도 산정에서 제외했다. 대법원은 해당 자금이 실제 존재하더라도 불법 자금에 해당하는 만큼 재산 분할 과정에서 노 관장 측의 기여로 평가할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
혼인 파탄 이전 공동재산의 형성·유지와 관련해 이미 증여된 재산도 분할 대상에서 빠졌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재산 분할 비율을 노 관장 3분의 1, 최 회장 3분의 2로 정했다. 환송 전보다 노 관장의 몫이 소폭 낮아졌다. 재판부는 “부부 공동재산의 상당 부분은 혼인 기간 중 형성·취득된 자산”이라며 “쌍방의 협력으로 이룩한 공동재산을 공평하게 분배하기 위해 환송 전 항소심 변론 종결일 이후 최 회장 보유 주식 가치가 큰 폭으로 상승한 점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재산 분할은 SK㈜ 주식을 직접 넘기는 방식이 아닌 현금 지급 방식으로 이뤄진다. 재판부는 해당 주식이 최 회장의 SK그룹 경영권과 지배력의 기반이라는 점 등을 고려해 현금 분할을 명령했다.
최 회장의 변호인 측은 이날 “20년에 가까운 혼인 해소 과정에서 최 회장은 지난해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친 것에 대해 송구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입장은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한 뒤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노 관장 측 변호인들은 취재진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법원을 빠져나갔다.
2003년 보석으로 풀려난 최태원(왼쪽) SK그룹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서울구치소를 떠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재계의 관심은 최 회장이 약 1조 원에 달하는 재산 분할금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쏠리고 있다. 그동안 재산 분할금 규모에 따라 최 회장이 그룹 지주사인 SK㈜ 지분을 일부 매각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돼왔다. SK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SK㈜ 지분을 최 회장이 처분할 경우 그룹 지배력이 약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지급해야 할 재산 분할금이 항소심의 1조 3808억 원보다 약 4368억 원 줄어들면서 최 회장이 SK㈜ 지분 17.9%를 최대한 유지한 채 다른 자산과 배당 등을 활용해 현금을 마련할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최 회장은 우선 주식담보대출과 부동산 및 기타 현금성 자산을 총동원해 재원 마련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최 회장이 총수익스와프(TRS) 거래를 통해 경제적 이해관계를 보유한 비상장사 SK실트론 지분도 유동화 대상으로 거론된다. SK㈜가 두산과 매각 협상을 진행 중인 SK실트론 지분 70.6% 외 최 회장이 개인적으로 보유한 29.4%를 별도 매각하는 방안이다.
양측은 당초 SK실트론의 기업 가치를 5조 원 수준으로 논의했지만 반도체 업황 호조로 가치가 높아지면서 최근에는 6조~7조 원 수준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SK 관계자는 “(최 회장이 개인적으로 보유한) SK실트론 지분 매각은 재원 마련의 후순위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SK텔레콤과 SK하이닉스 등 주요 계열사의 배당 확대를 통해 현금을 확보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나증권은 앞서 “SK그룹의 지배구조 관련 문제를 줄일 수 있는 방안으로는 우량 자회사의 배당 확대가 사실상 유일하다”고 분석했다. SK텔레콤을 비롯해 배당 여력이 높은 자회사들이 배당을 늘리면 SK㈜의 현금 흐름이 개선되고 이는 장기적으로 최 회장의 배당 재원 확충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한편
외신들도 관련 소식을 빠르게 전하며 큰 관심을 보였다.
미국 CNN 방송은 “테크 업계 거물의 전 부인이 10년 동안 이어진 ‘세기의 이혼’ 소송에서 인공지능(AI) 붐의 더 큰 몫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며 이날 두 사람의 이혼 소송 판결 결과를 보도했다.
CNN은 전국적인 관심을 끄는 이번 소송에서 또 다른 반전이 일어났다며 이날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금으로 9440억 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은 노 관장이 요구했던 금액보다 적은 액수라고 전했다.
로이터통신 또한
판결이 나온 즉시 속보를 통해 결과를 전하고 “이번 이혼 소송은 한국 제2의 대기업을 이끄는 억만장자 지분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고 해설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번 판결이 확정된다면 이는 한국 역사상 가장 비싼 이혼 소송이 될 것”이라며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를 인용해 최태원의 순자산은 약 56억 달러(8조 1800억 원)에 달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은 한국 최대 기업 중 한 곳을 세우는 데 기여한 배우자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지가 핵심 쟁점이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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