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락 씨는 여전히 인테리어 일을 하면서 동시에 노인들을 위한 봉사 공연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사진 최승락
포크가수에서 인테리어 업자로
가수 최승락이 음악과 인연을 맺은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주일학교에서 찬양을 부르며 자연스럽게 노래를 익혔고 통기타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음악은 그의 삶에서 가장 큰 즐거움이 됐다. 어린 나이에 서울로 올라가 생활했지만 넉넉하지 않은 형편 속에서 꿈을 이어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생계를 위해 구두를 닦으며 생활하던 열여덟 살 무렵 을지로의 음악다방 ‘타임’의 오디션에 붙으면서 꿈을 키웠다. 통기타 하나를 들고 무대에 오른 그는 그 일을 계기로 밤무대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대전과 부산 등 전국을 오가며 무대에 섰고 포크 음악을 부르며 가수의 꿈을 키워갔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누군가 이끌어 주는 사람도 특별한 기회도 없었다. 그는 이제 생각하면 특출난 재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고 담담히 말한다. 군 입대를 계기로 음악으로 성공하겠다는 꿈은 잠시 접었지만 제대한 뒤에도 기타만큼은 놓지 못했다. 특별히 다른 일을 찾지 못했던 그는 다시 기타를 메고 전국의 무대를 다녔다.
1980년대 홍성에 정착한 뒤에는 학사주점 ‘시인과 농부’를 개업하고 라이브 공연을 이어갔다. 당시 홍성에서는 보기 드문 통기타 라이브 공연은 큰 인기를 얻었다. 공연이 있는 날이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들이 몰렸고 지역에서는 연예인이 부럽지 않을 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안치환과 강산에를 비롯해 최백호, 정태춘 등의 포크와 포크록을 즐겨 불렀고 직접 만든 노래도 있었지만 발표에 대한 욕심은 없었다. 사람들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고 한다.
이때 가수가 아닌 새로운 길을 만나게 된다. 주점을 직접 꾸미고 무대를 만들었는데 그게 지역 사람들에게 새로운 인테리어로 받아들여져 주변에서 인테리어를 부탁하는 일이 하나둘 생겨났다.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었지만 손재주 하나로 공간을 만들었고 입소문이 퍼지면서 인테리어 일이 본업이 됐다. 주점운영은 6년만에 그만두고 이후 디자인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며 전문 인테리어 업자로 자리 잡았다. 이제는 자신의 천직은 가수가 아니라 목수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목수에서 지역문화 설계자로
그가 지역 문화예술 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계기는 2010년대 명동상가 버스킹이었다. 시장 활성화를 위해 매주 금요일 열리던 거리 공연에서 라이브 무대를 통해 다른 여러 지역 예술가들과 함께 시민들을 만났다. 당시 군에서도 공연을 지원하면서 거리에는 활기가 넘쳤고 버스킹은 홍성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 일을 계기로 당시 홍성예총 오정자 회장의 권유를 받아 예총 활동에 참여했다. 이후 오 회장이 갑작스럽게 별세하면서 선거도 없이 후임으로 제5·6대 홍성예총 회장을 맡게 됐다.
당시 예총은 별도의 사무공간도 없이 임대 건물을 옮겨 다니는 형편이었다. 그는 거리공연과 각종 문화사업을 추진하며 기반을 다졌고 현재의 예총 건물을 마련하는 데 힘을 보탰다. 이후 4~5년 동안 홍성역사인물축제 집행위원장을 맡아 축제를 이끌었으며 군과 함께 다양한 문화예술 사업을 추진하면서 예총의 역할을 크게 넓혔다. 이전에는 없던 여러 문화사업이 하나둘 생겨난 것도 이 시기였다.
그는 문화예술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서예와 미술, 국악 등 서로 다른 예술 분야가 힘을 모을 때 더 큰 시너지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경험했다.
다만 최근의 문화예술 환경은 예전보다 어려워졌다고 느낀다. 문화사업 예산은 줄어들고 의욕적으로 활동하려는 사람들도 예전만큼 많지 않다. 한때 홍성역사인물축제와 거리 공연으로 활기가 넘쳤던 모습이 점차 줄어드는 현실이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그의 무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최근에는 노인들을 위한 봉사 공연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으며 용봉초등학교 인근에 누구나 편하게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라이브 카페를 준비하고 있다. 자신의 노래뿐 아니라 지역 음악인들이 함께 공연하고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문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새로운 꿈이다. 앞으로는 이응노 생가 등 지역 문화자원과도 연계해 홍성만의 문화공간을 만드는 데 작은 힘을 보태고 싶다는 바람도 품고 있다.
화려한 가수의 길을 걷지는 못했지만 음악은 그의 삶을 문화로 확장시켰다. 기타 한 대로 시작된 꿈은 이제 무대 위를 넘어 사람과 사람을 잇고 지역 문화를 키워가는 또 다른 노래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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