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호 전기작가·수필가
도시는 사람보다 먼저 잠에서 깨어난다.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길을 걷다 보면 빗자루를 든 사람이 보인다.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 거리를 쓸고 공원의 낙엽을 치우는 손길이 있다. 관공서 문이 열리면 민원인을 맞는 사람이 있고 도로와 주차장 곳곳에서 도시의 하루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그 곁을 무심히 지나간다. 그러나 그들이 하루라도 자리를 비우면 금세 불편을 느낀다.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다. 그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기간제근로자라는 이름으로 일하고 있다.
노동의 가치는 고용형태에 따라 달라질 수 없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하루의 시간을 내어 일하는 사람의 땀은 다르지 않다. 노동은 단순히 임금을 받기 위해 시간을 내주는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이 가족을 부양하고 자신의 삶을 꾸리며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 그래서 노동을 존중한다는 말은 결국 사람을 존중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런 점에서 울산시가 마련한 기간제근로자 처우개선 방안을 반갑게 맞는다. 울산시는 2027년부터 기간제근로자에게 공정수당을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급량비를 인상하며 명절 수당도 새롭게 지급할 계획이다. 행정과 민원 지원, 환경과 청소, 공원과 녹지 관리, 주차와 교통관리 등 여러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전혀 작지 않은 변화다.
나는 '고정수당'이라는 말 앞에서 잠시 생각하게 된다. 계약서에 적힌 3개월이나 6개월이라는 숫자는 행정에서는 단순한 근무 기간일 수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삶으로 들어가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계약이 끝나갈 무렵이면 다시 일할 수 있을까 걱정해야 한다. 다음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생활비도 헤아려야 한다. 자녀에게 들어갈 돈도 있고 부모에게 드릴 용돈도 있다. 계약서에는 그런 사정까지 적히지 않는다.
우리는 오랫동안 노동을 경제의 언어로 이야기해 왔다. 사람은 '인력'이 되고 그 사람에게 지급되는 돈은 '인건비'가 된다. 행정에서 효율을 따지고 예산을 계산하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숫자를 오래 바라보다 보면 그 뒤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잊기 쉽다. 노동정책은 그 숫자 뒤에 가려진 얼굴을 다시 바라보는 일이어야 한다.
기간제 노동자가 겪는 고용불안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계약이 끝날 때마다 다음 일자리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에게 그 불안은 생활 그 자체다. 그 부담을 개인의 몫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공공이 조금이라도 함께 나누겠다는 뜻이라면 이번 공정 수당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급량비 인상과 명절 수당 신설도 마찬가지다. 밥 한 끼의 값은 누구에게나 같다. 명절을 기다리는 마음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따로 있을 리 없다. 같은 일터에서 함께 땀 흘리면서 누구에게는 당연한 그것이 다른 누구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면 서러운 일이다. 복지는 거창한 데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제대로 먹게 하고 명절이면 가족 앞에서 조금은 넉넉한 마음을 갖게 하는 일도 사람을 존중하는 방법이다.
울산은 노동으로 성장한 도시다. 자동차와 조선, 석유화학 공장의 불빛이 오랫동안 울산의 밤을 밝혀왔다. 그 불빛 아래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 작업복에 기름때를 묻힌 채 퇴근하던 노동자가 있었고 야간 근무를 마치고 새벽밥을 먹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손과 땀이 모여 오늘의 산업도시 울산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울산의 노동 존중은 구호보다 생활 속에서 먼저 보여야 한다. 거리를 청소하는 사람의 한 끼를 살피고 공원을 가꾸는 사람의 내일을 걱정하며 민원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고용 형태 때문에 서럽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지방정부가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 일하는 가장 불안정한 노동자부터 돌아보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이번 조치가 마지막이어서는 안 된다. 공정 수당이 비정규직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명분이 되어서도 안 된다. 계절적이고 일시적인 업무에는 기간제 고용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해마다 같은 일이 반복되고 늘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면 계약서를 되풀이해 새로 쓰는 그것이 과연 옳은지도 돌아봐야 한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돈만이 아니다. 내일을 계획할 수 있는 안정도 필요하다. 몇 가지 수당을 더 주는 것만으로 노동존중이 완성될 수는 없다.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라면 보다 안정적인 고용으로 나아가는 길도 함께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책상 위에서 바라보는 일터와 현장에서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 바라보는 일터는 다를 수 있다. 무엇이 힘든지, 무엇이 가장 서러운지,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이 가장 잘 안다. 노동자를 정책의 대상이 아니라 정책을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으로 대할 때 노동존중이라는 말에도 비로소 온기가 생긴다.
좋은 도시란 무엇일까. 높은 건물이 많고 공장이 잘 돌아가는 도시만을 좋은 도시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침마다 거리를 쓸어주는 사람, 계절마다 꽃을 심고 나무를 돌보는 사람, 민원인을 맞는 사람,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도시의 하루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노동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도시가 좋은 도시일 것이다.
울산시가 이번에 내디딘 한 걸음을 그래서 반갑게 바라본다. 공정 수당과 급량비 인상, 명절 수당 신설은 몇 가지 수당을 더 지급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그 안에는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하나의 원칙이 담겨 있어야 한다. 노동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원칙이다. 사람이 노동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 사람의 삶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노동은 사람을 소모하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세우고 가족을 지키며 세상 속에서 당당하게 살아가게 하는 힘이어야 한다. 결국 노동 존중은 인간 존중이다.
내일 새벽에도 누군가는 우리보다 먼저 거리로 나와 도시의 하루를 준비할 것이다. 우리는 그 사람의 이름을 알지 못한 채 곁을 지나갈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사람이 흘린 땀의 값만큼은 잊지 않는 도시였으면 한다. 고용 형태가 달라도 노동의 무게는 다르지 않다고 말해주는 도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노동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도시. 이번 기간제근로자 처우개선이 그런 울산으로 가는 따뜻하고 단단한 첫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최경호 전기작가·수필가
최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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