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가 미국 내 생체정보 무단 수집 소송이라는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혔다. 특히 원고측의 기술 공세로 기업 내부 기밀이 노출되는 강제 증거조사 단계에 진입하며, 기술 보안과 대외 신뢰도가 시험대에 올랐다. 이번 기획에서는 ‘실질적 피해’ 입증이 승패를 가를 분수령이 된 소송 과정을 분석하고, 글로벌 사업의 성패가 걸린 법리적 쟁점과 향후 과제를 진단한다. [편집자주]
네이버 분당 사옥. 사진=네이버
네이버와 계열사인 라인·스노우를 상대로 미국에서 제기된 생체정보 무단 수집 집단소송이 본격적인 판결 국면을 앞두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얼굴 인식 기술을 활용하는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이 잇따라 거액의 배상 책임을 진 전례가 있는 만큼 판결 후폭풍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은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규제 수준이 상대적으로 엄격해 이번 사건의 결과에 따라 향후 네이버가 미국 시장에서 서비스를 확대하거나 사업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부담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네이버 소송은 단순한 기업과 소비자 간 분쟁을 넘어 플랫폼의 개인정보 책임 기준을 확정할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원고 '2차 수정 소장' 제출…법적 논리 강화
지난해 7월 8일 원고가 법원에 제출한 2차 수정 소장. 사진=미국 캘리포니아주 북부 연방지방법원
지난해 7월 8일, 원고 라넬라 성아(Ranela Sunga), 스테파니 보너(Stefanie Bonner), 세나 첸(Senna Chen), 저스틴 볼로나(Justin Bologna)는 두 번째 수정 소장을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북부 연방지방법원 재판부에 제출했다. 최초 소장, 1차 수정에 이어 논리를 강화한 두 번째 소장으로 네이버를 향한 총공세 의지를 확고히 했다.
두 번째 수정 소장에서 크게 보강·변경된 부분은 세 가지로, 원고 측은 네이버 서비스가 실제로 얼굴 특징값 등 생체정보를 생성·처리했다는 기술적 설명을 보다 구체적으로 추가했다. 또 해당 행위가 일리노이주 생체정보보호법(Illinois Biometric Information Privacy Act·BIPA)이 규정한 ‘수집·획득’에 해당한다는 법적 논리를 강화하고 네이버가 미국 이용자들의 사진 데이터를 활용해 얼굴 인식 기능을 운영하면서도 사전 고지 및 서면 동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다 상세히 적시했다.
원고 측은 “네이버의 서비스 구조와 데이터 처리 과정이 미국 내 이용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일리노이주 법원의 관할 및 BIPA 적용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사실관계도 추가로 보강했다.
네이버는 이에 대해 11월 12일 반대 의견서를 제출했다. 의견서에서는 기존입장인 ▲원고의 실질적인 피해가 없고 ▲미국 관할권이 없으며 ▲사생활 침해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여기에 원고가 네이버-라인-스노우 등 여러 회사를 하나의 공동 기업으로 묶어 책임을 묻는 점도 지적했다. 네이버 측은 “각 회사는 독립적인 법인이며 서로 지배·통제 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며 “다른 회사의 행위를 네이버에 귀속시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올해까지 이어져 이달 들어 신규 변호인 선임·재판 스케줄 확정 등 세부 절차가 진행 중인 상황이다. 향후 시나리오는 ▲합의 ▲약식판결 ▲배심재판 등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배심재판의 경우 통상 항소심까지 진행하기 때문에 재판이 기약없이 길어지게 돼 네이버로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합의에 대한 유혹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은 9500억 배상
…
패소시 '치명타'
마크 저커버그 메타 플랫폼즈(구 ) 최고경영자(CEO)가 2018년 4월 미 상원 법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개인정보 수집 관련 질의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업계에서는 이번 소송이 단순 네이버 브랜드 이미지에 손상을 가하는 것을 넘어, 실질적 재무 피해를 줄 수 있음을 경고한다. 이번 소송과 판박이처럼 비슷했던 (현 메타 플랫폼즈)의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은 생체정보 수집과 관련한 집단소송에서 여론과 재판 흐름이 불리해지자 거액의 합의금을 내고서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는 네이버의 소송 방어가 쉽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2015년 일리노이주 사용자들은 을 상대로 이번 네이버 소송과 동일한 법원인 캘리포니아주 북부 연방지법에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쟁점도 유사했다. 이 사진을 분석해 얼굴인식 기능을 제공하면서 이용자의 생체정보를 동의 없이 수집했다는 주장이다.
은 이 소송에서 “실제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며 강하게 맞섰다. 이용자가 플랫폼에 사진을 올리는 행위 자체가 일정 수준의 수집 동의를 의미한다고도 항변했다. 양측은 미 제9순회항소법원까지 소송을 끌고 가며 치열한 혈투를 벌였다.
2019년 항소법원은 “이용자들이 실질적 금전 피해를 입증하지 않아도 소송이 가능하다”며 원고 측에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이듬해인 2020년 은 6억5000만달러(약 9500억원)의 합의금을 제시했고, 2021년 법원은 이를 최종 승인했다. 현재까지 미국 생체정보 침해와 관련된 소송 중 최대 규모 배상액이다.
판례로 인해 생체정보는 단순 개인정보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게 됐다. 변경 또는 재발급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생체정보를 수집·이용하는 플랫폼에는 그에 비례하는 막대한 책임을 부여한 것이다.
원고 측이 네이버와의 소송에서 사건과 유사한 논거를 제시하는 것에 비춰볼 때, 앞선 판례가 소송 실행에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틱톡의 모회사 바이트댄스도 판례가 등장한 2019년 생체정보 불법 수집 집단소송에 휘말리며 9200만달러(약 1350억원)로 합의한 바 있다. 네이버 역시 이번 사건의 결론에 따라 영업이익의 상당부분을 반납해야 할지 모를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김정은 대륙아주 변호사는 “서비스 이용자인 정보 주체들도 관행적인 개인정보 수집·이용 동의에 익숙해져 있다”며 “이에 따라 실제로는 서비스 제공에 필수적인 범위를 넘어서는 개인정보까지 광범위하게 수집, 보관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집한 개인정보를 그 수집∙이용 목적을 달성한 후에도 제 때 파기하지 않고 계속 보관하는 경우가 많다”며 “회원이 서비스를 탈퇴한 경우에도, 법령상의 의무에 따라 일정기간 보관이 필요한 정보 외에 다른 정보들까지 장기간 계속 보관하는 경우가 자주 발견된다”며 기업의 개인정보 보관 실태를 지적했다.
◆소송 뿌리 '美 수정헌법 4조'…국내 플랫폼 업계 '촉각'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사진=네이버
미국에서 생체정보 관련 소송이 빈번하게 제기되는 배경에는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다. 미국 사회는 역사적으로 국가 권력이나 기업의 개인정보 수집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수정헌법 제4조를 통해 개인의 신체와 사생활을 보호하는 전통이 형성돼 있으며, 이러한 문화는 디지털 시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얼굴이나 지문과 같은 생체정보는 단순한 개인정보를 넘어 개인의 신체와 직접 연결된 정보라는 점에서 더욱 엄격하게 다뤄진다. 비밀번호나 계정 정보와 달리 한 번 노출되면 변경이 불가능하다는 특성 때문에, 미국에서는 생체정보를 가장 민감한 개인정보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 속에서 기업이 이용자의 생체정보를 수집하거나 활용할 경우 이용자의 명확한 동의를 요구하는 규제가 강화돼 왔다.
이번 네이버 소송은 미국에 진출했거나 진출을 준비 중인 한국 플랫폼 업체들에게 사실상 ‘생체정보 수집 가이드라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사회의 엄격한 개인정보 보호 기준이 법적 판단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21년 시작된 네이버와 미국 시민 간 법적 분쟁은 예상치 못하게 길어져 이제 누구도 물러설 수 없는 ‘외나무다리’ 승부가 돼 가고 있다. 원고는 사건이 기각될 시 오랜 기간 쌓인 고액의 변호사 비용을 물어내야 할 상황에 놓였고, 네이버는 ‘생체정보를 무단 수집한 플랫폼 기업’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낙인이 찍힐 위험에 처했다. 일각에서는 법률 비용을 각자 부담하기로 하고 사건을 합의 종결하는 방안이 거론되지만, 네이버가 선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 최종까지 강경 대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익태 CIL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 미국 변호사는 “미국은 소송 문화가 발달해 있는 텃밭이기도 하며, 개인이 소송하기에는 버거운 사정을 파악한 변호사들이 공적 목적과 금전적 이익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기획소송을 오래 전부터 발달시켜 왔다”며 “미국에서 기업을 상대로 개인정보 소송이 빈번한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유수 기업들에서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발생하는 점을 감안할때 개인정보 보관에 대한 기업의 경각심은 개선이 필요하다”며 “법적 제재를 받은 후에야 경각심을 가지고 보관하고 있는 실정이라 사후 약방문 같은 형태”라고 덧붙였다.
네이버는 이번 사건과 관련한 본지의 질의에 논평을 거부했다.
<글 시점 요약 타임라인>
2025.07.08 : 원고 측, 법원에 2차 수정 소장 제출.
2025.09.15 : 네이버 측, 법원에 2차 수정 소장에 대한 답변 및 반박 서면 제출.
2025.11.12 : 네이버 측, 추가 의견서 제출하며 ‘구체적 피해(concrete injury)’ 입증이 필요하다고 주장.
2026.03.03~현재 : 양측 변호사 신규 선임 진행. 추후 재판 스케줄 구성 협의 중.
※ 용어 설명
집단소송(Class Action) :
다수의 피해자가 동일한 원인으로 피해를 입었을 때, 대표 당사자(원고)가 집단 전체를 대신하여 소송을 제기하고 판결의 효력이 집단 전체에 미치도록 하는 미국의 강력한 민사소송 제도다.
일리노이주 생체정보보호법(Illinois Biometric Information Privacy Act·BIPA) :
2008년 일리노이주에서 제정된 개인정보·생체정보 보호법이다. 지문, 얼굴, 홍채 같은 생체정보를 기업이 마음대로 수집하지 못하게 강제하며, 위반 시 피해자 1인당 1000~5000달러의 벌금을 매긴다.
유럽 개인정보 보호법(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
유럽연합(EU)의 개인정보 보호 법률로 2018년 5월 25일부터 시행됐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개인정보 보호 규제로 평가되며, EU 시민의 개인정보를 기업이 함부로 쓰지 못하도록 강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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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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