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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내려? 타?" 개미들의 '밈(meme)'이 된 회장님들

AI 반도체 훈풍 속에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6300선을 돌파한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이십만전자', '백만닉스'라는 별명을 얻으며 급등세를 이어갔고, '국장 탈출'을 외치던 서학개미(해외 주식 개인...

"내려? 타?" 개미들의 '밈(meme)'이 된 회장님들

최근 롤러코스터 장세 속에서 기업 총수들을 소재로 한 ‘총수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츠)이 주식 커뮤니티를 장악하고 있다. AI로 만들어진 그럴듯한 이미지 속에서 주가가 오르면 영웅, 떨어지면 적군이 되는 오너들. ‘조롱’과 ‘찬양’을 오가는 기업 총수 밈에 담긴 의미와 실체를 분석했다.

“설명할 시간이 없어, 어서 타!”

2월 말, 국내 증시에는 이른 봄이 찾아왔다. AI 반도체 훈풍 속에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6300선을 돌파한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이십만전자’, ‘백만닉스’라는 별명을 얻으며 급등세를 이어갔고, ‘국장 탈출’을 외치던 서학개미(해외 주식 개인 투자자)들이 슬그머니 돌아오면서 주식 커뮤니티는 축제 분위기로 달아올랐다.

이와 함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얼굴을 합성한 AI 이미지가 빠르게 퍼졌다. 선글라스를 낀 회장들이 차 문을 열고 다급히 손을 뻗는, 이른바 ‘어서 타’ 밈이었다.

사실 이 밈은 일본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파생된 것으로, 주인공과 동료들이 처음 마주하는 장면을 패러디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선택의 기로에 처한 주인공이 결국 동료의 차에 올라타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이를 기업 오너와 예비 투자자에 대입해 ‘지금 (주식에) 타지 않으면 늦는다’는 메시지로 변주시킨 것이다.

같은 시기,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도 밈의 흐름에 빠르게 올라탔다.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공개 후 현대차 시가총액이 100조원을 넘어서고 주가가 급등하자, 정의선 회장 버전 ‘어서 타’ 밈이 등장한 것이다. 이번에는 제네시스를 탄 채 손짓하는 정의선 회장의 이미지가 커뮤니티를 뒤덮었다.

그러나 불장의 흥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시작되자 시장 분위기는 순식간에 뒤집혔고, 코스피는 12% 넘게 급락했다. 사이드카와 서킷브레이커가 잇따라 발동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도 고점 대비 각각 15%와 18% 하락했다.

이에 ‘어서 타’라며 손을 내밀던 회장님들이 이번에는 일제히 ‘손절’에 나섰다. 합성 이미지 속 이재용 회장은 불타는 헬기에서 낙하하며 “설명할 시간이 없어, 어서 내려”라고 말을 바꿨고, 최태원 회장은 자신의 차를 쫓는 개미들에게 “다시 돌아올게, 조금만 기다려”라는 말을 남긴 채 부리나케 달아나는 모습의 합성 사진이 만들어졌다.

반면 국산 방공무기가 이란 미사일을 요격했다는 소식이 퍼지자, LIG넥스원·한화시스템·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방산주는 나 홀로 상한가를 기록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김동관 부회장이 총수 밈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소환됐다.

‘셀럽’이 된 기업인, 밈이 된 주식판

본래 밈의 탄생에는 특별한 목적도 근거도 없다. 꼭 웃기지 않아도 복제되고 공유되면 그만이다. 그러나 ‘총수 밈’처럼 주식시장에서 유행하는 밈은 성격이 조금 다르다. 전쟁이나 환율, 금리처럼 복잡한 변수가 얽힌 주식판에서 개미들이 산업과 기업의 흐름을 보다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하나의 언어가 됐기 때문이다.

밈 문화에 익숙한 2030세대가 주식시장에 본격적으로 유입되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식 패러디와 팬덤 문화가 자연스럽게 투자판으로 옮겨졌고, 여기에 기업의 성과를 오너와 동일시하는 인식이 더해졌다. 주가가 오르면 기업인은 ‘천재 경영자’로 추켜세워지고, 떨어지면 곧장 비난과 희화화의 대상이 된다.

재벌을 소비하는 방식 자체도 달라졌다. 한때 비판과 반감의 대상이었던 재벌은 이제 대중, 특히 청년층에게 ‘인플루언서’로 소비된다. 재벌가 역시 SNS를 통해 대중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기업 오너가 즐겨 찾는 맛집이나 사용하는 제품은 유행으로 이어지고, 특정 행동이나 일화, 특징은 다시 밈으로 재생산된다. 재벌을 팔로우하며 ‘셀럽’처럼 소비하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기업 총수들은 친근한 콘텐츠의 주인공으로 재편됐다. 즉, ‘밈의 얼굴’이 된 것이다.

여기에 텍스트 몇 줄만으로 합성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AI 기술까지 더해지면서 주식시장과 밈은 거의 실시간으로 연동되고 있다. 미국 증시가 급락할 때는 트럼프 대통령을 ‘마이너스의 손’으로 빗댄 합성 이미지가 X(구 트위터)에서 빠르게 확산됐고, 국내에서는 코스피 상승기에 이재용·최태원 두 회장의 얼굴을 각각 20만원, 100만원권 지폐에 합성한 ‘회장님 지폐’ 시리즈가 등장하기도 했다.

올려치기와 희화화 사이

총수 밈 이전에도 기업인, 특히 오너들은 밈의 단골 주인공이었다. 엔비디아 젠슨 황 CEO와 이재용, 정의선 회장의 ‘깐부 회동’이 화제가 되며 각종 패러디 이미지가 쏟아졌고, 정용진 신세계 회장의 신년 인사 영상 역시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이 패러디를 하자 밈으로 확산됐다. 이재용 회장은 특히 수많은 사진이 유통되며 순간 포착된 표정과 제스처마다 ‘쁘띠재용’, ‘하이재용’, ‘쉿재용’ 등 다양한 별명이 붙은 ‘짤의 중심’으로 소비됐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에서는 주로 오너 일가, 즉 기업 혈통의 정점에 있는 인물이 밈의 주인공이 되는 반면, 해외에서는 CEO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마크 저커버그는 밀랍인형과 지나치게 닮은 외모 탓에 ‘로봇설’이 돌며 합성 사진이 계속 생성됐고,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 주가가 폭등하자 ‘To the Moon’을 외치며 로켓을 타고 달로 향하는 밈의 주인공이 됐다. 젠슨 황 역시 AI 열풍과 함께 ‘GPU King’으로 불리며 가죽 재킷 차림 자체가 하나의 상징이 됐다.

이 같은 현상은 기업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번 총수 밈에 ‘어서 내려’ 버전을 파생시킨 미국-이란 전쟁 국면에서는 세계 지도자들을 겨냥한 패러디가 쏟아졌다. 특히 이란 최고지도자였던 하메네이가 사망하자, 흰색 터번을 쓴 인물들이 서로를 가리키며 “누가 다음 지도자 할래?”라는 문구를 붙인 합성 이미지가 퍼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들 배런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 김주애의 결혼으로 세계 평화를 이루자며, 다소 황당한 결혼사진까지 배포되며 화제가 됐다.

밈의 세계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유망한 기업인이든 권력자든 온라인에서는 언제라도 하나의 유희 소재가 될 수 있다. 이는 하나의 대상을 올려치기하며 부각시키는 동시에, 희화화하며 권위를 해체하는 양가적 장치다. 조롱처럼 보이지만 찬양이고, 찬양처럼 보이지만 조롱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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