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나동준 칼럼니스트]
아픈 몸으로 버티는 것도 노동이다.
다만 그 노동은 출근부에 찍히지 않고, 급여명세서에 적히지 않으며, 성과로 인정되지 않을 뿐이다. 약의 부작용을 견디고, 무너지는 체력을 추슬러 하루를 이어가고, 통증과 불안을 관리하며 삶의 균형을 붙드는 일은 결코 수동적인 요양이 아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해 몸과 마음이 매일 감당하는 고된 작업이다. 나는 다발성골수종 환자로 살아가며 이 사실을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몸의 현실로 배워 왔다.
병을 얻고 나서 비로소 알게 됐다. 사회는 아픈 몸을 생각보다 훨씬 냉정하게 대한다는 사실을. 겉으로는 보호와 배려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효율과 생산성의 기준에서 너무 쉽게 밀어낸다. 치료를 받느라 비워야 하는 시간, 약의 부작용으로 무너진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시간, 통증을 견디며 겨우 일상을 유지하는 시간은 왜 노동으로 인정되지 않는가. 왜 기업은 출근한 시간만 계산하고, 살아내기 위해 소진된 시간은 보지 않는가. 왜 사회는 병든 몸의 하루를 ‘쉼’이라고 부르면서, 그 하루를 버티기 위해 들어간 막대한 에너지와 감정의 비용은 외면하는가.
나는 매일 몸의 상태를 살피고, 치료 일정에 맞춰 삶을 다시 조정하며, 작은 이상 신호에도 긴장하면서 하루를 설계한다. 이것은 멈춰 있는 삶이 아니다. 생존을 위해 수행되는 또 다른 형태의 노동이다. 그런데도 아픈 몸이 감당하는 현실은 너무 자주 개인의 운, 개인의 불행, 개인이 알아서 견뎌야 할 문제로 축소된다. 아프다는 이유로 삶의 속도가 달라졌을 뿐인데, 왜 그 순간부터 사람의 존엄과 기여의 가치까지 할인되어야 하는가.
그래서 나는 기업에 묻고 싶다. 당신들이 말하는 ‘사람 중심’은 과연 누구를 위한 말인가. 건강하고 빠르게 성과를 내는 사람만 끝까지 조직의 사람으로 인정받는다면, 그 조직은 정말 사람 중심인가. 치료 때문에 자리를 비우는 직원에게 불이익이 돌아가고, 병을 드러내는 순간 조용히 관리 대상으로 분류되는 조직이 어떻게 ESG를 말할 수 있는가. 사람을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면서, 왜 아픈 사람이 필요로 하는 유연성은 비용으로만 계산하는가.
사회에도 묻고 싶다. 왜 아픈 사람은 치료만 견디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자신의 고통이 과장이 아님을 설명해야 하며, 여전히 사회 안에 머물 자격이 있음을 증명해야 하는가. 왜 돌봄과 회복의 비용은 늘 개인과 가족의 몫으로 남겨지는가. 모두가 언젠가 아플 수 있다는 너무도 분명한 사실 앞에서, 우리는 왜 이렇게 무책임한가.
ESG의 ‘S’가 진짜 사회적 책임이라면, 가장 먼저 아픈 몸이 겪는 배제와 침묵부터 다뤄야 한다. 병가와 유연근무, 치료와 복귀를 둘러싼 실질적 보호, 회복의 시간을 불이익이 아닌 권리로 인정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약한 몸을 밀어내며 유지되는 효율은 지속가능성이 아니라 무감각일 뿐이다.
나는 특별대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아픈 몸이 치르는 현실을 현실로 보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투병은 공백이 아니다. 치료를 견디고, 삶의 균형을 붙들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 자신을 다시 세우는 시간은 분명한 노동이다. 그 노동을 보지 못하는 기업은 사람을 말할 자격이 없고, 그 노동을 사적인 불행으로 밀어내는 사회는 지속가능성을 말할 자격이 없다. 아픈 몸도 일한다. 아픈 몸도 사회를 버티게 한다. 그 당연한 사실을 외면한 채 말하는 ESG는 끝내 사람을 위한 언어가 될 수 없다.
칼럼니스트 프로필
나동준 칼럼니스트는 디지털전환교육원 수석연구원·숙명여자대학교 객원교수, 시민중심 ESG협회 수석교수이사로 활동하며 생성형 AI와 사회복지 디지털 전환의 접점을 개척하는 혁신가다.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KAC 공인코치, 경영지도사(인사조직관리), 구글공인교육전문가와 구글트레이너 자격을 갖추고 있다.
인공지능AI 활용 전략부터 ESG 경영, 스마트워크, 조직 활성화, 감정경영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의 강의를 진행중이다. 숙명여자대학교 객원교수로 있으면서, 50플러스센터, 국내외 대학·복지기관, 각종 협회 및 기업 현장을 무대로, 맞춤형 솔루션과 실전형 워크숍으로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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