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간 가격·생산량 등 정보교환도 ‘담합’ 행위
손해는 소비자에… 직원 교육·신고제 활용 바람직
2012년 라면 회사들이 가격을 짜고 올렸다는 의심을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회사들이 서로 가격 인상 계획을 미리 알려준 사실을 찾아내 담합이라며 1354억원의 과징금을 매겼다.
그러나 2015년 대법원은 공정위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가격을 함께 올리자”고 약속한 증거가 없으니 정보를 주고받았다는 사실만으로는 담합으로 볼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이대로라면 회사들이 약속 없이 정보만 주고받으며 눈치껏 가격을 맞춰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김형배 법무법인 율촌 고문 연세대 법무·경제대학원 겸임교수
이 패소 이후 공정거래법이 바뀌었다. 2021년 말부터는 약속이 없더라도 경쟁에 민감한 정보를 주고받아 경쟁이 줄어들었다면 그 자체로 담합이 된다. 이 규정이 처음 적용된 사건이 올해 1월 4대 시중은행의 담보인정비율(LTV) 담합이다. LTV는 집이나 땅을 맡기고 돈을 빌릴 때 그 가치의 몇 %까지 빌려줄지 정한 비율이다. 은행들은 이 비율을 몰래 주고받으며 서로 비슷하게 맞췄다.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종이로 주고받은 뒤 버리기까지 했다.
그 결과 이들 은행의 LTV는 정보교환에 끼지 않은 은행보다 평균 7.5%포인트 낮았고, 손님들은 그만큼 돈을 덜 빌릴 수밖에 없었다. 공정위는 27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은행들은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지금은 증권사들의 국고채 입찰담합 사건, 정유사들의 기름값 담합 사건도 심의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어떤 정보를 주고받으면 안 될까. 핵심은 ‘경쟁민감정보’다. 회사들은 가격, 생산량, 품질 같은 요소로 경쟁한다. 그중에서도 경쟁사가 알면 내가 굳이 애써 경쟁할 필요가 없어지는 정보가 문제다. 다음 달 가격을 올릴지 내릴지, 얼마나 올릴지 내릴지, 앞으로 얼마나 만들고 내보내고 쌓아둘지, 입찰에 참여할지와 얼마를 써낼지 같은 것들이다.
경쟁사의 이런 계획을 미리 알면 가격을 내리거나 더 좋은 조건을 내걸 이유가 사라지고, 결국 손해는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이런 정보는 회사 안에서도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는 비밀이다. 회사 안에서도 숨기는 정보라면 경쟁사에는 더더욱 줄 수 없다.
학교 축제에서 두 반이 떡볶이를 판다고 해 보자. 작년 축제 때 몇 그릇이 팔렸는지 이야기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축제 전날 “우리 반은 3000원에 팔 거야”라고 서로 알려주면 어느 쪽도 값을 내릴 이유가 없어진다. 함께 팔자고 약속하지 않았어도 손님은 더 비싸게 사 먹게 된다. 마찬가지로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개자료나, 어느 회사 것인지 알 수 없게 묶은 과거 통계는 대체로 괜찮다. 함께 기술 표준을 정하는 것처럼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 협력에 꼭 필요한 정보도 허용된다. 반대로 특정 회사의 앞으로의 계획을 담은 정보는 위험하다.
그래서 기업은 몇 가지를 꼭 지켜야 한다. 첫째, 경쟁사 직원과 만날 때는 미리 회사에 알리고 기록을 남긴다. 둘째, 업계 모임에서 가격 이야기가 나오면 분명히 반대하고 자리를 떠난다. 셋째, 원하지 않는 정보를 받았다면 바로 거절하고 법무팀에 알린다. 가만히 있으면 받아들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넷째, 시장 정보는 공개자료나 전문기관 통계로 얻고, 경쟁사에 직접 묻지 않는다. 다섯째, 직원 교육을 꾸준히 하고, 문제를 발견하면 스스로 신고하는 제도를 활용한다.
경계가 헷갈릴 때일수록 기댈 곳은 단순한 원칙이다. 경쟁민감정보는 주지도 받지도 말자.
김형배 법무법인 율촌 고문 연세대 법무·경제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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