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를 보고
20년 전 잡지사 생활을 떠올렸다
‘런웨이’ 편집부에서 20년 만에 다시 만난 미란다 편집장과 앤디 기자가 마주한 환경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중에서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1년에 두 차례 잡지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한국잡지협회에서 운영하는 잡지교육원의 미디어 에디터 양성 과정인데, 내가 맡은 부분은 ‘여성 잡지 에디터 교육 및 실습’이다.
간혹 아날로그식 종이 잡지에 관심이 있어 교육과정에 참가한 학생도 있지만, 20대가 대부분인 교육생들에게 잡지가 이전처럼 당연한 매체가 아닌 것은 틀림없다. 잡지별로 전했던 전문적이며 다양한 콘텐츠들이 클릭 하나만으로 온라인상에서 끝도 없이 펼쳐지는데 종이를 한 장씩 넘기며 읽는 행위의 의미만을 이들에게 강조할 수는 없다.
마침 지난 4월 강의에서 잡지라는 미디어가 지속되기 위해 시도하고 있는 업계의 변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이 영화 이야기를 꺼냈었다. “곧 개봉한다는 데 꼭 보려구요. 20년 전 그려냈던 편집장과 잡지사의 풍경을 2026년에는 어떻게 풀어가는지 너무 궁금하네요. 그 20년 동안 정말 많은 것이 변했거든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를 한 메릴 스트립(Meryl Streep) 역시 그 20년의 변화와 그것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미란다를 그려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캐스팅에 응했다고 말했다.
영화 속 미란다의 변신
이 영화의 첫 편이 개봉되었던 2006년은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 잡지의 절정기였다. 스마트폰이 출시되기 전이었고 어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채널도 존재하지 않았던 때, 사람들은 방송이나 잡지를 통해 새로운 트렌드를 알아갔고 취향을 확장했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개봉 후 내 주변 사람들은 정말 잡지사 편집장의 일상이 영화 속 미란다와 비슷한지 묻고는 했었다.
미란다는 전 세계 패션계의 교황이라 불리던 미국판 <보그> 편집장 애나 윈투어를 모델로 삼은 캐릭터라 비교가 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같은 잡지 편집장으로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편집장의 일상과 판단에 공감하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세룰리안 블루와 터쿼이즈, 라피스 컬러를 구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매거진의 정체성에 맞는 기사 발굴과 화보 촬영에 매 순간 집중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개봉되었던 2006년은 패션 매거진의 절정기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매체로서의 권위와 선호가 높았다. /네이버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의 미란다는 20년 전과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이전과는 다르다. 더 이상 비서에게 코트를 벗어 던지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뱉어냈던 고압적인 독설도 자제하려고 한다. 디자이너와 브랜드를 쥐락펴락했던 그때와 달리 광고주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고 기자에게 조회수가 올라가는 기사를 강조한다. 잡지를 둘러싼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변하지 않고 가지고 있는 것은 잡지 <런웨이>의 신간 견본을 받아보는 걸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패션 매거진이 전할 수 있는 아름다움과 가치만은 놓지 않으려는 태도다.
지켜야 할 가치와 본질
가뜩이나 잡지 운영이 쉽지 않은데 잡지의 기사 한 편이 큰 문제가 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년 전 저널리스트를 꿈꾸었던 비서 앤디(앤 해서웨이)가 탐사보도 기자로 성공해 다시 미란다 앞에 선다.
이 둘은 “변화가 폼페이의 용암처럼 밀려온다. 앞으로 잡지는 물론이고 모델이나 디자이너도 필요 없을 것이며 AI가 모든 것을 대체할 날이 온다”고 장담하는 빅테크 사장에게 인수당할 위기에 처한 <런웨이> 잡지를 “인간이 만드는 예술과 아름다움은 지켜야 한다”며 함께 맞선다.
애나 윈투어 VS 메릴 스트립. 2026년 5월호 미국판 보그 표지는 1949년생 동갑내기 두 사람의 모습을 담았다. 사진 촬영은 전설적 여성 사진작가 애니 레보비츠에 의해 진행됐는데 그녀 역시 이 둘과 동갑이다. /미국 보그 인스타그램
마침 영화 개봉 즈음 미국판 <보그> 5월호 표지에 '미란다가 안나를 만났을 때'라는 기사 제목과 함께 메릴 스트립과 애나 윈투어(1988~2025년까지 미국 보그의 편집장이었고, 현재는 보그의 출판사인 콘데나스트사의 글로벌 최고 콘텐츠 책임자를 맡고 있다)의 사진이 함께 실렸다.
배우와 편집자로서 후배들의 동경과 존경을 받는 1949년생 동갑내기 두 사람은 그레타 거윅 감독이 진행한 인터뷰에서 나이가 드는 것에 대해, 가족과 커리어의 균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애나 윈투어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전편에서 패션이 얼마나 거대한 사업인지를 세상에 보여줘서 좋았다고 말하며 현재 잡지 업계는 쇠퇴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플랫폼이 아닌 여러 플랫폼을 통해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서 진화의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메릴 스트립은 미란다를 연기하며 안나가 어떤 책임을 짊어지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가져야 했을지 상상해 보려고 노력했으며, 결국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몰려오는 파도를 깨뜨리는 것, 그게 바로 삶의 핵심이라고 정리했다.
언론과 패션, 콘텐츠와 미디어 업계는 20년 전과 달라졌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는 그럼에도 지켜가야 할 가치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해 보게 만드는 영화다. 적어도 그 일의 본질보다 장사가 앞을 차지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것!
영화 속에서 언급된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 그러니까 소재의 질감, 재단의 정밀함, 마감의 완성도 등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 가진 가치가 패션에서 중요해졌듯이, 화려하거나 부풀리지 않아도 결국에는 드러나고 인정해야 하는 가치에 대해 그리고 사람이 만들어내고 공감할 수밖에 없는 그런 일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즐거운 관람이었다. 아마 잡지를 만들던 사람이라 더 그랬을 수도 있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주 공공기관인, 전 매거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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