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트 제작은 전문가의 영역이었다. 음성을 넣으려면 성우를 섭외하고 녹음실을 빌려야 했다. 이젠 스크립트만 있으면 음성 제작이 가능하다. 김태수 네오사피엔스 대표는 이 변화를 ‘콘텐트의 민주화’라고 부른다. 김 대표가 다음으로 보는 것은 콘텐트의 AX 전환이다. 일방향으로 소비되던 콘텐트가 인공지능(AI) 캐릭터와 대화하는 형태로 바뀌고, 목소리가 AI 시대의 인터페이스가 되는 세상이다. 콘텐트가 소비에서 대화로 바뀌는 흐름이다.
김태수 네오사피엔스 대표. 김 대표는 AI 음성 기술을 단순 효율화 도구가 아닌 콘텐트 제작 방식과 인터페이스를 바꾸는 기술로 본다. 최기웅 기자
AI 음성 기술의 승부처는 품질이 아니라 누가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김태수 네오사피엔스 대표는 “AI 음성 기술을 비용 절감 관점에서만 접근하면 기대한 효과를 얻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네오사피엔스의 타입캐스트(Typecast)는 텍스트를 입력하면 감정과 억양이 살아 있는 목소리로 변환해주는 AI 음성 합성(Text-to-Speech, TTS) 기반 콘텐트 제작 플랫폼이다. 성우를 섭외하거나 녹음실을 빌리지 않고도 스크립트만으로 영상, 광고, 교육 콘텐트 등에 이용할 음성을 즉시 만들 수 있다. 타입캐스트는 단순 TTS를 넘어 영상 제작, 자막, 캐릭터 연출 기능까지 통합 제공하는 방향으로 확장 중이다. 타입캐스트는 현재 전 세계 220여 개국에서 280만 명 넘는 크리에이터와 기업 고객이 활용하며, 최근 3년간 매출은 매년 65%씩 성장하고 있다.
김 대표는 “생성형 AI 시대가 열리면서 음성 합성 기술은 빠르게 평준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텍스트를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변환하는 기능 자체는 더는 차별점이 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경쟁의 핵심은 무엇일까. 김 대표는 AI 음성 기술의 핵심으로 감정 표현과 맥락 이해 능력을 꼽았다.
“생성형 AI 성우 시장은 단순히 문장을 읽는 것을 넘어, 상황에 맞는 어조와 캐릭터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구현할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네오사피엔스는 약 120만 시간 규모의 음성 데이터를 학습한 파운데이션 모델을 기반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김 대표의 설명처럼 타입캐스트는 단순한 음성 생성 도구가 아니라 캐릭터와 브랜드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콘텐트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으로 평가된다. 이를 위해 네오사피엔스는 음성 데이터를 자동으로 수집하고 정제하는 자체 시스템을 구축해 데이터 품질과 규모를 동시에 확보했다.
지용호 아마존웹서비스(AWS)코리아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네오사피엔스는 단순 제작 자동화를 넘어 콘텐트 기획과 운영 방식까지 바꾸며 AI 활용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기업”이라고 소개했다. 이런 평가가 나오기까지 9년 동안 경험을 축적했다. 김 대표가 이 시장에 주목한 건 2017년이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로 세상의 이목이 인공지능(AI)에 집중되고, 딥러닝이 모든 세상을 바꿀 것 같던 전개 속에서 그는 ‘말하기’ 영역에 눈길을 돌렸다. “보고 듣는 건 이미 가능해졌고 남은 영역은 말하기라고 생각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음성은 빠르게 시장화할 수 있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결심의 계기는 개인적 위기에서 왔다. 2016년 심근경색을 경험한 김 대표는 ‘내가 사라지면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고민하게 됐다. KAIST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LG전자와 퀄컴에서 10년 넘게 음성 기술을 연구한 그가 퀄컴 연구원 자리를 내려놓고 창업을 결심한 건 그 직후였다. 단순한 창업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을 바꾸는 기술을 만들고 싶다’는 인생 전환점에서 나온 선택이었다.
초기 행보는 빨랐다. 네오사피엔스는 창업 직후 도널드 트럼프 연설 영상을 활용한 한국어 더빙 프로젝트와 MBC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에서 어린아이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작업으로 주목을 받았다. AI 음성 기술이 단순 실험 단계를 넘어 실제 콘텐트 제작에 쓰일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였다. 하지만 주목이 곧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미국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와이 컴비네이터(Y Combinator) 프로그램에 지원해 최종 단계까지 올랐지만 탈락했다. 김 대표는 “당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만드는 것은 단순히 선호가 아니라, 실제로 돈을 지불하는 것을 만드는 것’이라는 피드백을 받았다”며 “이를 계기로 기술 데모가 아니라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다양한 실험을 거치며 사업 방향을 잡아갔다.
AI 성우에서 콘텐트 제작 플랫폼으로 확장한 것도 이 과정의 결과다. 기존에는 성우를 섭외하고 녹음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들었지만, 타입캐스트는 스크립트 입력만으로 즉시 제작이 가능해졌다. 전문가 중심이던 콘텐트 제작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구조로 바뀐 것이다. 김 대표는 이를 ‘콘텐트의 민주화’라고 부른다. “AI는 단순히 비용을 줄이는 도구가 아니라 새로운 시도를 가능하게 하는 도구”라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김태수 대표(오른쪽)와 지용호 AWS코리아 최고마케팅책임자 (CMO). 네오사피엔스의 AI 음성 플랫폼 ‘타입캐스트’는 텍스트만으로 감정과 억양이 담긴 음성을 생성하며 콘텐트 제작 과정을 단축하고 있다. 최기웅 기자
AI 음성, 콘텐트 제작을 넘어 인터페이스로 확장
텍스트가 감정을 갖게 되기까지, 기술 경쟁력의 핵심은.
타입캐스트는 대용량 데이터 기반의 파운데이션 모델이다. 한국어에서 압도적으로 자연스러운 발화를 구현하고 영어권 성우들도 다수 등록돼 있어 영어 품질도 높다. 핵심은 문맥에 맞게 감정, 톤, 발성 스타일을 정교하게 제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빅테크의 기본 모델로는 감정, 톤, 발성 등 미묘한 문화적 차이를 세세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타입캐스트는 글로벌 성우 200여 명을 통해서도 데이터를 학습한다. 또 현재 700여 개 AI 음성 캐릭터를 제공하며 각 캐릭터는 전문 성우의 목소리 연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이로써 타입캐스트가 단순 음성 생성을 넘어 콘텐트 제작 방식 자체를 바꿨다고 자부한다. 성우를 섭외하고 녹음하는 데 들던 시간과 비용이 사라지고 아이디어만 있으면 콘텐트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타입캐스트는 성우와 수익을 공유하는 구조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이는 어떻게 작동하나.
성우·아나운서와의 수익 공유 구조도 음성 시장 생태계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음원 수익처럼 목소리 사용량에 따라 성우와 아나운서에게 수익이 배분되는 구조다. 성우는 오디션을 거쳐 선발하며 각 언어와 문화권에 맞는 억양과 표현을 반영해 학습된다. 미묘한 말투와 감정 차이를 구현하기 위한 과정이다. 이를 통해 단순히 음성을 생성하는 것을 넘어, 자연스럽고 문화적으로도 적합한 콘텐트를 만들 수 있다.
120만 시간이라는 방대한 데이터를 어떻게 학습했나.
다양한 방식으로 수집하고 철저하게 필터링한 음성 데이터를 활용했다. 정제된 데이터를 문장 단위로 쪼개고 발화 속도·억양·감정 정보까지 함께 학습해 다양한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표현이 가능하도록 모델을 훈련했다. 120만 시간은 한 사람이 140년을 들어야 하는 분량이다. 수천 대가 넘는 컴퓨터를 동시에 돌려 학습을 진행했다.
대규모 데이터 학습과 글로벌 서비스를 동시에 운영하려면 인프라 부담이 클 텐데, 해결 방법은.
네오사피엔스의 기술 경쟁력 뒤에는 AWS의 클라우드 기반 인프라가 있다. 특히 AWS는 네오사피엔스가 자체 보유한 IDC의 엔비디아(NVIDIA) GPU 자원만으로는 한 달 이상 소요되던 대규모 모델 학습을, 수백 대 규모의 인스턴스(instance, 클라우드에서 필요할 때 빌려 쓰는 가상 서버)에서 온디멘드(on-demand, 필요한 만큼 즉시 자원을 늘려 사용하는 방식)로 확장해 이틀 안에 완료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 덕분에 연구개발 속도까지 크게 끌어올렸다. 또한 AWS 미국, 한국 리전을 비롯한 글로벌 리전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전 세계 220여 개국 280만 명 이상의 사용자에게 지연 없이 타입캐스트를 제공한다. 수요가 급증하는 지역에는 즉시 인프라를 확장해 대응하고 있다. 아마존 베드록(Bedrock), 세이지메이커(SageMaker) 등 AWS의 AI·머신러닝 서비스를 TTS, LLM, STT와 유기적으로 통합할 수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이는 여러 기술을 하나로 연결해 함께 활용하는 구조로, 네오사피엔스가 단순 음성 생성을 넘어 대화형 AI 인터페이스로 확장해나가는 기반이 된다.
B2C에서 B2B로, API 플랫폼으로 사업 구조가 어떻게 진화했나.
사업 구조는 세 단계를 거쳐 진화했다. 출발은 개인 크리에이터였다. 유튜버와 교육 콘텐트 제작자들이 타입캐스트를 쓰기 시작했고 이것이 SNS에서 빠르게 확산하면서 타입캐스트도 명성을 얻었다. 이후 기업 고객 수요가 늘면서 자연스레 B2B로 확장됐다. 마케팅 콘텐트, 교육 영상, 커머스 광고처럼 반복적이고 대량생산이 필요한 영역에서 활용이 늘었다. 현재는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기반 플랫폼으로 확장하는 과정이다. 외부 서비스가 타입캐스트의 음성 생성 기능을 직접 연동하는 구조로, 더 큰 시장으로의 확장을 엿볼 수 있는 단계다. 사용자는 타입캐스트를 인지하지 못한 채 기능을 이용하게 된다. 개인 이용자 중심 SaaS에서 기업 개발자 중심 플랫폼 비즈니스로 전환 중이다. 이는 서비스를 사용하는 단계를 넘어, 다른 플랫폼에 기능을 공급하는 구조로 확장된다는 점에서 사업모델의 전환을 의미한다.
AI 음성 기술을 도입하는 기업들이 흔히 하는 실수는.
성우 대신 AI 음성 기술을 도입해 비용 절감을 하겠다는 관점에서만 접근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타입캐스트는 성우 시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시도하지 못했던 것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다. 한 고객은 영어인 것처럼 들리는데 사실은 한국어를 영어처럼 말하는 ‘한글리쉬’라는 새로운 콘셉트로 콘텐트를 제작했다. 이 콘텐트는 SNS에서 조회수 190만 뷰를 기록했다. 웹툰 미리보기에 AI 음성을 적용했더니 결제 전환율이 올라간 사례도 있다. AI의 본질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데 있다.
지난 3월 코스닥 기술특례상장 기술성 평가를 통과했다. 어떤 부분을 인정받았나.
자체 음성 파운데이션 모델의 기술력과 이를 상용화한 AI 음성 플랫폼의 경쟁력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감정 표현이 가능한 음성 합성 기술, 캐릭터 기반 음성 생성 기술, 그리고 이를 대화형 AI 서비스로 확장할 수 있는 기술력이 강점으로 작용했다. 또 빅테크의 기본 모델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감정 표현과 발화 디테일을 실제 서비스에서 상용화했다는 점, 시장에서 실제로 폭넓게 쓰인다는 점도 설득력을 더했다. 기술성 평가 통과 이후 상장 예비심사도 청구할 예정이다.
올해 목표와 콘텐트 시장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인터랙티브 콘텐트와 대화형 AI 에이전트 영역으로 확장하는 게 목표다. 한 방향으로 소비되던 콘텐트가 AI 캐릭터와 상호작용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웹툰 캐릭터가 여행 가이드가 되고, 기업의 AI 캐릭터가 홍보대사 역할을 한다. 즉 콘텐트가 소비로 끝나지 않고 대화의 시작이 된다. AI 시대의 인터페이스는 얼굴과 목소리라고 생각한다.
향후 성장 방향성은.
B2C에서 B2B로, 국내에서 글로벌로 확장하는 게 다음 단계다. 단순 번역이 아니라 각 시장에 맞는 말투와 감성을 구현하는 것이 핵심 전략이다. 피지컬 AI가 퍼질수록 텍스트 명령은 한계가 있다. 로봇에게 키보드로 명령을 내리기는 불가능하다. 음성 인식, 음성 합성, LLM 연동까지 결합하면 AI와 사람 사이의 인터페이스 자체를 바꿀 수 있다. 이것이 네오사피엔스가 겨냥하는 다음 시장이다. 결국 음성은 콘텐트를 넘어, 사람이 AI와 상호작용하는 핵심 인터페이스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지용호
AWS코리아 마케팅 총괄(CMO)이자 아시아태평양·일본(APJ) 지역 글로벌 프로그램 리더다. 2015년 AWS 합류 이후 한국 마케팅 조직을 전문화하며 사업 기반을 다졌고, 2016년 AWS 서울 리전 출범을 총괄했다. 지난 10년간 AWS Summit Seoul을 1200명 규모에서 2만4000명 규모로 20배 성장시켜 글로벌 톱 3 서밋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했다. 최근에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넘어 AI 트랜스포메이션 전략을 중심으로 한국 기업들의 AX 확산과 글로벌 연계를 지원하며, 광고(Advertising) 등 글로벌 사업과 협업을 확대하고 있다. 인텔, 델, KPMG, 켈로그 등 글로벌기업에서 B2B 및 B2C 영업·마케팅·경영을 두루 경험한 통합형 비즈니스 리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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