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영 모습. 사진=작가 제공
Once upon a time there was a tavern(옛적에 선술집이 있었지요)
Where we used to raise a glass or two(우리는 한두 잔 술잔을 부딪치곤 했어요)
Remember how we laughed away the hours(우리가 어떻게 웃으며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하나요)
And dreamed of all the great things we would do(우리가 해낼 위대한 일을 꿈 꾸었는지도요)
We'd live the life we choose(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삶을 살고)
We'd fight and never lose(절대로 싸움에서 지지 않을 것만 같았지요)
For we were young and sure to have our way (우리는 젊었고 우리 뜻대로 될 거라 확신했으니까요) (…)
Just tonight I stood before the tavern(오늘밤 나는 그 선술집 앞에 서 있어요)
Nothing seemed the way it used to be(무엇 하나 예전 같은 것이 없네요)
In the glass I saw a strange reflection(유리창에 비친 낯선 모습의 나를 보았어요)
Was that lonely woman really me?(저 외로운 여자가 정말 나일까요?)
-메리홉킨스 노래 'Those were the days' 에서
한동안 'Once upon a time there was a tavern' 이라고 시작하는 노래 첫 부분이 좋아 음반을 갖고 다니며 차에서 자주 들었다. ‘옛날 옛날에’로 시작하던 할머니의 동화처럼 once upon a time이라는 구절은 아득하고도 순수한 시절로 나를 데려갔다. ‘Once upon a time’ 하고 멜로디가 시작되면 나는 습관적으로 ‘예전에’ 라고 읊조렸다.
곧 이어지는 tavern(선술집)에 이르면 대학시절 술집에서 동아리 애프터를 하며 떠들던 시간들이 떠오르고 마음 한켠이 칼로 베인 듯 아려왔다. 가사가 딱 내 마음 같았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왔다.
문학을 전공하면서도 사회과학 동아리 활동을 했던 나는 이상과 현실이라는 경계에 서 있었던 것 같다. 대학가는 연일 시위로 시끄러웠고 기관원들은 음습하게 숨어들었고 매콤한 최루탄 가스가 대학 교정을 떠다녔다.
학교 근처 선술집에서 뜨거운 청춘의 열기에 비해 턱없이 얄팍한 주머니를 가늠하며 막걸리 잔을 부딪쳤다. 그때 우리는 자신의 앞가림도 못 하면서 세상의 짐을 다 짊어진 사람들처럼 보였다. 집에 돌아가면 무력한 순한 아들딸일 뿐인데, 우리는 정의를, 평화를 이야기했다. 때로 눈물을 흘렸던가.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 우리들 모두 젊은 날의 순수했던 열정과 꿈은 어디로 간지 모른 채 세상에 순응하여 소시민이 되었다. 어느 새 정년을 앞에 둔 회사원이 된 친구도, 국책 연구기관 교수가 된 친구도, 고시를 보아 TV에 가끔 얼굴을 내미는 고위직 공무원이 된 친구도, 인터넷 강의로 유명 강사가 되어 모교에 거액을 기부한 친구도, 캐나다에서 트럭 기사가 된 친구도 있다. 우리는 그런 남편을 둔 아내이거나 그런 아내를 둔 남편이 되어 이제 자녀들의 미래를 걱정한다.
예전엔 행복했지. 정말 행복했어. 그래? 근데 정말 행복했을까? 정말 그랬을까. 늘 왜 우리는 과거를 그리워하는 걸까. 예전은 왜 더 행복해 보이는 걸까. 그때도 고통과 갈등이, 고민과 기다림이 있었을 터인데.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고, 친구들과 소통에 애를 먹었고, 무엇이 될지 몰라 불안했는데... 속절없이 지나가서, 잡을 수가 없어서, 그때 같이했던 사람들을 만날 수 없어서 그리운 거겠지. 인생은 과거라는 당의정을 입으면 아름다워 보인다. 과거라는 당의정은 선택적 기억과 망각의 산물이자 선물이다.
자작나무 모습. 사진=작가 제공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시간여행을 하는 주인공이 프랑스에서 풍요와 평화를 누리던 벨 에포크(belle époque-좋은 시절)인 1900년대 초로 돌아갔지만 정작 그 시절 사람들은 그때가 벨 에포크인 줄도 모르고 과거를 그리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을 보고 어리석은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실소했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과거나 현재나 다를 바 없다. 미련한 인간들에겐 벨 에포크는 그때는 몰랐던 지나간 과거일 수밖에 없다. ‘고도’가 오지 않듯 벨 에포크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 야스나야 뽈랴나에서 톨스토이를 만나고 뚜르게네프를 보기 위해 그의 고향인 오룔로 이동하는 길이었다. 세 시간 반이나 소요되는 지루한 버스 여행이었다. 가도 가도 끝없이 양쪽 길가에 도열한 자작나무 숲이 이어졌다. 하얀 미인의 얼굴을 한 자작나무에 대한 판타지도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지루함을 달래려 누군가 가져온 러시아 음악 CD를 들었다. 차창 밖으로 평화로운 들판에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거위와 오리는 뒤뚱뒤뚱 거리며 먹이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허름한 옷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나라 1970년대 농촌과 닮아 있었다.
오랜 억압의 역사를 반영한 단조의 깊은 애수, 슬프고 가슴 저미는 선율과 광활한 대지 탓이었을까. 좀처럼 노래를 부르지 않던 인솔자인 노교수가 러시아어로 민요를 불렀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익숙한 노래였다. 후렴구 랄라라라라라~에 이르러 치렁치렁한 금발머리 열아홉 살 처녀 메리 홉킨스를 스타로 만든 'Those were the days'라는 노래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원래 이 노래는 러시아 민속음악이었던 거다. 노래는 러시아 혁명 이후 망명한 러시아인들을 통해 유럽으로 퍼져나갔고 1960년대 초에 진 래스킨(Gene Raskin)이 영어 가사를 붙여 'Those Were the Days'라는 제목으로 개사했고,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가 당시 신인이었던 메리 홉킨스에게 부르게 하며 대히트를 기록했다.
나는 노랫말처럼, 선택한대로 인생을 살 수 없었고 인생에서 이기지도 않았다. 선술집 유리창에 비친 외롭고 낯선 여자가 나는 아니었을까. 그렇다고 슬프거나 허무하지는 않다.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 인생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가 선택한 삶을 살고 내 뜻대로 인생이 굴러갈 것이라는 것은 할머니가 이야기 해주던 동화에나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 시절, 꿈이 있었기에 인생이 따뜻했다고 말하고 싶다.
보랏빛 노을이 환상적이었던 어느 날 저녁 라디오에서 그 러시아 노래가 흘러나왔다. 진행자는 친절하게 러시아 제목이 ‘꽃필 무렵’이며 메리 홉킨스가 번안해 귀에 익숙한 음악이라고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었다. 러시아 원곡과 영어 번안곡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그래, 우린, 누구나, 예전 어느 순간에는 환한 꽃이었으니까.
김미원 수필가. 사진=데일리한국DB
◆ 김미원 주요 약력
△1982년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과 졸업 △2005년 수필가 등단 △수필집 '즐거운 고통' '달콤한 슬픔' '불안한 행복' △인터뷰 에세이 '빛나는 말들' △남촌문학상, 세종우수도서에 '달콤한 슬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도서 '불안한 행복' 선정 △월간 한국산문 발행인, 한국산문작가협회 회장 역임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