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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김기돈 칼럼] AI 알고리즘의 역설: 스마트한 배정이 만든 '새로운 직업...

인공지능(AI)이 기존 현장 관리자의 역할을 보완하거나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AI는 획기적인 데이터 처리 능력을 바탕으로, 주문량, 이동 경로, 처리 시간, 고객 평가, 과거 수행 데이터까지 종합하여 가장 효율적인...

[김기돈 칼럼] AI 알고리즘의 역설: 스마트한 배정이 만든 '새로운 직업...

김기돈 공인노무사

김기돈 공인노무사.

인천투데이|최근 배달 플랫폼, 물류센터, 호출형 서비스 산업 현장에서 업무를 배정하고 속도를 조율하는 주체는 더 이상 현장 관리자만이 아니다. 인공지능(AI)이 기존 현장 관리자의 역할을 보완하거나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AI는 획기적인 데이터 처리 능력을 바탕으로, 주문량, 이동 경로, 처리 시간, 고객 평가, 과거 수행 데이터까지 종합하여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알고리즘을 구성한다.

AI 알고리즘의 도입 이후 생산성은 높아졌고, 대기시간은 줄었으며, 운영비용은 절감됐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혁신'이라 부를 만한 변화다.

그러나 우리는 그 혁신의 이면 또한 살펴봐야 한다. AI 알고리즘이 노동자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독촉하는 환경 속에서 노동자가 소진되는 '디지털 과로'라는 이면 말이다.

인간적 판단의 공백

AI 알고리즘이 노동현장에 도입되기 이전에는 팀장이나 반장 등 현장 관리자가 작업 순서를 정하고 업무량을 배분해 왔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의 숙련도, 당일 컨디션, 현장의 돌발 변수 같은 인간적 요소가 업무 배분에 반영될 여지가 있었다.

반면 AI 알고리즘은 노동자를 정신과 육체를 가진 인격체로 보지 않고 데이터 단위로 다룬다. 평균 이동 속도, 수락률, 완료율, 피크시간 대응률 같은 수치만이 업무량 배분의 기준이 된다.

노동자의 신체 상태나 작업 강도, 특정 동작이 관절에 주는 부담은 알고리즘의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 계산 가능한 효율이 언제나 우선이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의 리듬에 종속되는 배달 노동자

배달의민족·요기요·쿠팡이츠 등 3대 배달 플랫폼은 AI 알고리즘에 기반해 배달 업무를 운영한다. 배달 요금을 책정하는 것도, 배달 노동자에게 배차 제한 페널티를 부과하는 것도 AI 알고리즘이다.

좋은 콜을 받기 위해, 배차 제한을 피하기 위해, 계정 평가를 유지하기 위해 배달 노동자들은 알고리즘이 요구하는 리듬에 따를 수밖에 없다.

더욱이 배달 플랫폼들은 알고리즘의 구조와 목적을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다. 알고리즘의 작동 방식을 알 길이 없는 노동자들은 알고리즘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그 지시에 더욱 순응할 수밖에 없다. 위험하거나 육체적으로 힘든 배차건을 거부하는 것조차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물류센터의 알고리즘 통제

물류센터도 마찬가지다. CJ대한통운과 쿠팡 등은 AI 카메라로 노동자의 동선과 행동 전체를 모니터링하거나, 단말기를 지급하여 생산량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작업을 할당하는 등 AI 알고리즘으로 노동자를 통제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AI 알고리즘은 피킹, 패킹, 분류, 적재 같은 작업의 시간당 처리량(UPH)을 기준으로 노동자의 동선을 지정하고 이행을 압박한다. 노동자들은 그 압박에 떠밀려 AI의 지시에 따라 몸을 숙이고 비틀고 들고 옮기는 동작을 쉴 틈 없이 반복해야 한다.

근골격계 질환, 회복을 빼앗긴 몸

배달 노동자 이미지.(AI프로그램 제미나이 제작)

노동자는 AI가 요구하는 처리량을 쉴 틈 없이 소화할 수 있는 기계가 아니다. 정신적, 육체적 피로를 느끼고 한계를 가진 사람이다.

목, 어깨, 팔, 허리, 무릎 등에 발생하는 근골격계 질환은 부적절한 자세와 반복 동작, 과도한 속도, 회복 없는 작업이 누적될 때 발생한다. AI의 업무 지시는 동선을 줄이고 유휴시간을 제거해 효율을 높이지만, 동시에 노동자의 신체가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함께 제거한다.

그 결과 근골격계에 발생한 손상은 회복되지 못하고 누적되어 질환을 발생시키거나 악화시킨다.

AI 알고리즘의 구조가 노동자의 건강권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입법적 조치를 마련하는 것은 당연한 과제다. 그러나 그에 앞서, AI 알고리즘이 도입된 사업장의 근골격계 유해요인 평가와 산재 심사 과정에서 알고리즘이 설계한 속도와 밀도, 그 구조 자체를 평가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 시급하다.

불투명한 평가, 무너지는 정신건강

AI 알고리즘이 노동자의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우려된다. AI 알고리즘은 업무를 배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노동자의 업무를 평가한다. 처리 속도, 주문 수락 여부, 고객 반응, 시간대별 활동량 등이 실시간으로 수치화된다.

문제는 노동자가 평가의 기준과 목적을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평가는 존재하지만 평가 방식은 모호하고 불투명하다. 불이익은 체감되지만 그 이유는 설명되지 않는다.

이전에는 적어도 현장 관리자에게 설명을 요구하거나 항의할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AI 알고리즘 하에서는 그럴 수 없다. 현장 관리자 또한 알고리즘의 구조를 온전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언제든 대체 가능한 부속품이 되었다는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적응장애, 불안장애, 우울장애, 수면장애 등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나아가 상시적 긴장과 보상의 불안정이 결합하면 스트레스로 인한 뇌심혈관계 질환의 위험도 적지 않다.

산재 입증의 문턱이 높아지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가 산재를 신청하면 어떻게 될까. 노동자는 자신의 질병이 업무로 인해 발생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AI 알고리즘이 도입된 사업장에서 업무 지시는 앱 알림으로 오고, 평가 기준은 비공개이며, 작업 강도는 데이터 속에 숨어 있다.

정보의 대부분은 플랫폼과 사업주가 보유하고 있으며, 그 정보의 생산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도구도 노동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노동 현황과 강도를 설명하고 입증해야 하는 노동자에게 정보 비대칭의 문제는 더욱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의 산재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이제 단순히 작업시간의 총량만 볼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노동의 밀도와 속도를 어떻게 통제했는지를 살펴야 한다.

실시간 배차 구조가 휴식시간을 사실상 박탈했는지, 처리량 지표가 반복 동작을 상시화했는지, 어떤 과정에서 노동자에게 불이익이 부과되는지를 정교하게 검토해야 한다.

플랫폼 로그, 배차 패턴, 수행 밀도, 경고 및 제한 기록 같은 디지털 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며, 이를 위해 산재 심사 시 해당 기업이 관련 데이터를 제출하도록 강제하는 법,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기술은 사람을 향해야 한다

이 글은 기술 자체를 문제 삼자는 것이 아니다. 기술이 사람을 위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기술의 리듬에 맞춰 소모시키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효율을 높인다는 이유로 노동자의 회복 시간을 지우고, 평가를 정교화한다는 이유로 모호함과 불안을 상시화한다면, 그것은 혁신이 아니라 위험의 일상화에 가깝다.

필요한 것은 더 똑똑한 알고리즘이 아니다. 사람을 해치지 않는 알고리즘, 설명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알고리즘, 노동자의 회복과 안전을 전제로 설계된 알고리즘이다. 기술은 결국 사람을 향해야 한다.

인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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