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에서 돌아온 뒤 이상하게도 그림 한 점이 자꾸 생각난다. 김홍도의 ‘과교경객’. 정확히는 그림 곁에 있던 강세황의 화평 때문이다.
“다리 아래 물새는 노새의 발굽 소리에 놀라고, 노새는 날아오르는 물새에 놀라고, 길 가는 사람은 놀라는 노새에 놀란다. 놀라는 모양새가 입신의 경지이다.”
물새가 놀라고, 노새가 놀라고, 사람이 놀란다. 하나의 놀람이 다른 존재를 움직이고 다시 다음 존재에게 건너간다. 강세황은 그 찰나를 보았다. 성호 이익과 강세황의 관계를 들여다보다 이 ‘놀람의 연쇄’와 기묘하게 겹치는 이야기를 발견했다.
1751년, 병든 이익을 강세황이 찾아갔다. 그러자 이익은 주자가 제자를 가르쳤던 무이산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무이도’를 그려주자 이번에는 퇴계가 제자를 길렀던 도산을 부탁했다. 그렇게 ‘도산도’가 태어났다.
왜 하필 무이와 도산이었을까. 강세황의 헤아림은 이랬다. “사람 때문이지 그 땅 때문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이익도 그랬다. 정치적 비극을 겪고 관직에서 멀어진 그는 안산에서 읽고 쓰고 제자를 길렀다. 중심으로 돌아가는 대신 자신의 중심을 안산으로 가져왔다. 그러자 사람들이 찾아왔고 성호학파라는 지적 공동체가 생겨났다.
강세황도 가세가 기울어 서울에서 안산으로 들어온 사람이었다. 그렇게 한동네 사람이 된 강세황과 이익은 실제로 왕래했다. 이익이 그림을 부탁하면 그려주었고, 아들을 잃고 슬픔에 잠겼을 때는 찾아가 악기를 연주했다. 학문과 그림과 음악이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바로 그 무렵 어린 김홍도가 강세황의 세계로 들어온다. 강세황의 기록에는 어린 김홍도가 그의 집을 드나들며 화결을 배웠다고 나온다. 그 나이를 일고여덟 살 무렵으로 보는 연구도 있다.
중인 집안의 어린아이가 어떻게 명문 사대부 강세황의 문턱을 넘었을까. 역사는 그 장면을 남겨놓지 않았다. 다만 그다음은 안다. 강세황은 아이의 재능을 칭찬했다. 나는 ‘가르쳤다’보다 ‘칭찬했다’는 말에 오래 머물렀다. ‘씨름’도 ‘서당’도 세상에 없었다.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 아이에게서 한 어른이 먼저 무엇인가를 발견한 것이다.
이익의 생각이 강세황에게 건너가 그림이 되고, 강세황의 눈이 어린 김홍도에게 머물고, 그 아이가 자라 수많은 사람을 놀라게 하는 그림을 그린다. 그 시작에는 어쩌면 아주 단순한 능력이 있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서 놀라운 것을 발견하는 능력. 생각해보니 내 인생의 책으로 꼽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가장 좋아했던 문장도 그러했다.
“두목, 세상에 노새 같은 게 산다는 게 놀랍지 않소?”
하필 또 노새다. 혹시 내가 안산에서 발견한 것은 김홍도보다 놀랄 줄 아는 사람들의 계보였을까. 세상을 오래 산다고 세상이 덜 놀라워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반대여야 하지 않을까. 나무 한 그루에도, 노새 한 마리에도, 아직 이름 없는 사람의 그림 한 점에도 놀랄 수 있는 것.
그러고 보니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은 대개 그런 사람들이었다. 아직 세상에 놀랄 것이 남아 있다고 믿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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