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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길고양이', 이 말 하나로 충분할까? 용어의 세분화가 필요한 이유

'길고양이'도 각각의 개체가 처한 상황, 상태에 따라 다양하다는 의미를 표현했다.[출처: AI(ChatGPT)가 생성한 이미지] 이처럼 사람들은 어떤 대상을 자주 접하고, 그 안의 다양한 차이를 구분할 필요가 생길 때...

'길고양이', 이 말 하나로 충분할까? 용어의 세분화가 필요한 이유

[김진주X카스카의 생명감수성사전] 첫 번째 용어, '길고양이' [4-1]

빨강이라고 다 같은 빨강이 아닙니다

“이 셔츠, 빨간색은 없어요?”

“어떤 빨강이요?”

“빨강이 빨강이죠.”

“불타는 듯 강렬한 색을 찾으시면 스칼렛, 강렬하면서도 조금 차분한 느낌을 원하시면 크림슨, 와인 같은 깊은 붉은색을 좋아하시면 버건디를 추천해요.”

어떤 사람에게는 스칼렛, 크림슨, 버건디가 모두 그냥 ‘빨강(Red)’으로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디자이너나 색조화장품 전문가들에게는 스칼렛도 다 같은 스칼렛이 아닙니다.

현재 50대 이상 여성이라면 립스틱의 예전 용어인 ‘루즈(Rouge)’를 기억하실 겁니다. 이 말은 프랑스어 '루즈 아 레브르(Rouge à lèvres)', 직역하면 ‘입술에 바르는 붉은색’에서 온 말입니다.

한국에 서양식 화장품이 들어온 것은 개화기 말부터이며, 립스틱이 일반 여성들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고 쓰이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1920~30년대입니다.

당시의 입술 화장품은 사실상 붉은색 일색이었습니다. 실제로 접할 수 있는 화장품 색상이 다양하지 않았던 만큼, 색을 가리키는 말도 자연스럽게 ‘입술 빨강(루즈)’처럼 하나의 표현으로 통용됐던 것입니다.

각양각색 고양이들의 모습. '길고양이'도 각각의 개체가 처한 상황, 상태에 따라 다양하다는 의미를 표현했다.[출처: AI(ChatGPT)가 생성한 이미지]

이처럼 사람들은 어떤 대상을 자주 접하고, 그 안의 다양한 차이를 구분할 필요가 생길 때 자연스럽게 더 많은 말을 만들어 쓰지요.

예를 들어 북극 지역 에스키모들에게는 눈과 얼음의 상태가 이동이나 사냥과 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눈을 구분하는 표현이 다양하게 발달해 있습니다. 북유럽의 사미족에게는 순록이 삶의 중심이므로 순록의 나이, 성별, 뿔 모양 등을 가리키는 말이 매우 세밀하게 나뉘어 있고요.

직업 세계에서도 비슷합니다. 디자이너나 색조화장품 전문가들이 색을 세밀하게 구분하듯, 와인을 다루는 소믈리에나 커피를 평가하는 바리스타도 향과 맛을 가리키는 용어를 세분화해 말합니다.

결국 언어는 사람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어떤 대상을 오래 보고 중요하게 다루다 보면 그 대상에 대한 말도 자연스럽게 더 다양해지기 마련이지요.

그렇다면 ‘고양이’는 어떨까요?

고양이를 가리키는 말은 얼마나 다양할까요?

잠깐만요! 여기서 방언이나 속칭 ‘품종’에 따른 분류를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의 주제는 ‘반려인이 없는 고양이’를 가리키는 용어들입니다.

예를 들어 반려인이 있었지만 유기나 유실 등으로 반려인과 거처를 잃은 고양이는 스트레이 캣(Stray Cat, 길 잃은 고양이)이라고 합니다.

프랑스어권에서는 샤 에랑(Chat Errant, 떠돌이 고양이), 일본에서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유기묘(遺棄猫)라는 표현을 씁니다.

반려인은 없지만 일정 지역에서 지역민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고양이는

커뮤니티 캣(Community Cat, 지역사회와 함께 사는 고양이)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일본에서는 지역묘(地域猫, 지역에서 돌보는 고양이)라는 표현이 널리 쓰입니다.

(1)

또 한 장소에서 여러 마리가 집단을 이뤄 살아가는 고양이는 콜로니 캣(Colony Cat, 집단을 이뤄 사는 고양이)이라고 합니다.

프랑스어권에서는 콜로니 드 샤 리브르(Colonie de Chats Libres, 자유롭게 사는 고양이 집단)라는 말을 쓴답니다.

한 지역에 머물지 않고 넓은 범위를 이동하며 살아가는 고양이는 프리 로밍 캣(Free-Roaming Cat,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사는 고양이)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프랑스어권에서는 샤 리브르(Chat Libre, 자유로운 고양이), 일본에서는 야량묘(野良猫, 떠돌이 고양이)라는 표현이 쓰입니다.

이처럼, 고양이의 상황과 상태에 따라 여러 용어가 존재합니다.

한국에서는 모두 '길고양이'

그런데 국내에서는 이 다양한 고양이들이 대개 하나의 말로 묶입니다. 바로 ‘길고양이’입니다. 실제로는 커뮤니티 캣, 콜로니 캣, 프리 로밍 캣은 물론 스트레이 캣까지도 모두 ‘길고양이’로 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확한 집계는 어렵지만 국내 길고양이 수는 수십만 마리로 추정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이들을 돌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과 길고양이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도 적지 않지요. 급식소 설치나 개체 관리 문제 등을 둘러싼 갈등이 지역 뉴스나 사회 기사에 심심찮게 등장할 만큼, 길고양이 문제는 이미 하나의 사회적 이슈가 됐습니다.

이처럼 대한민국 사회에서 ‘길고양이’가 차지하는 물리적·심리적 비중이 적지 않음에도, 그들을 가리키는 용어는 충분히 세분화돼 있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동물보호법에서는 ‘길고양이’라는 단어 자체보다는 보통 ‘소유자가 없는 동물’, ‘소유자를 알 수 없는 동물’ 같은 표현을 씁니다. 하지만 실제 정책과 지자체 사업에서는 거의 모두 ‘길고양이’라는 용어가 사용됩니다.

국내, 영어권, 프랑스, 일본에서 '특정 보호자나 보호처가 없는 고양이' 속칭 '길고양이'를 일컫는 용어들.[출처: 김진주 카스카(KASCA)활동가 제공]

예를 들어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TNR), 길고양이 급식소, 길고양이 보호 및 관리 지침 등의 정책 용어들이 그렇습니다. 환경부와 농림축산식품부 지침, 서울시를 비롯한 각 지자체 조례에서도 대부분 ‘길고양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처럼 국내에서는 행정용어로 ‘길고양이’가 굳어지면서, 고양이의 다양한 상황과 상태를 고려한 용어의 세분화가 이뤄지지 못한 측면도 있습니다.

다양한 '비공식 길고양이'들

한편 비공식 용어들은 꽤 다양합니다.

길고양이의 준말인 ‘길냥이’라는 말부터, 고양이가 사는 곳(주로 발견되는 장소)을 기준으로 공원냥이, 골목냥이, 탄천냥이, 마당냥이 등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이 가운데 마당냥이는 단독주택 등에서 마당을 오가는 반려묘를 가리키기도 하고, 마당에 설치된 급식소 주변을 드나드는 길고양이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전자의 경우 영어권에서는 아웃도어 펫 캣(Outdoor Pet Cat), 일본에서는 방양묘(放養猫, 풀어 기르는 고양이)라고 구분합니다.

또 야산이나 들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를 산고양이, 들고양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 용어는 인간과 접촉이 어려운 야생화된 고양이를 뜻하기도 합니다. 영어권에서는 이들을 페럴 캣(Feral Cat), 프랑스어권에서는 샤 페랄(Chat Féral), 일본에서는 야생화묘(野生化猫)라고 하지요.

한편 어떤 이들은 ‘노숙자’ 같은 느낌이 강한 길고양이라는 말 대신, 좀 더 이웃에 가까운 뉘앙스의 ‘동네고양이’라는 표현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2)

하지만 이 용어들로 충분할까요?

이 다양한 비공식 용어들이 그 다양성만큼 고양이 각각이 처한 상황과 상태를 세심하게 알려주고 있을까요?

아쉽게도 그렇지는 못한 듯합니다.

예를 들면 ‘공원냥이’를 볼까요?

이 용어에 담긴 정보는 그 고양이를 공원에서 자주 볼 수 있다는 것이 전부입니다. 공원에 유기된 고양이인지, 먹이를 찾아 내려온 야생고양이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탄천냥이, 골목냥이 등도 마찬가지이지요.

‘마당냥이’는 어떨까요?

그 고양이가 반려인과 마당 딸린 단독주택까지 있는 속칭 ‘금목줄냥이’인지, 아니면 마당 급식소를 이용하는 ‘길고양이’인지 혼란을 주는 용어입니다.

‘산고양이’, ‘들고양이’는 어떨까요?

이 두 용어는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야산에 유기된 고양이를, 인간세계로  내려오기 어려운 야생고양이, 페럴 캣(Feral Cat)으로 둔갑시킬 수도 있습니다.

동물보호단체 카스카(KASCA)에서 운영하는 카페형 입양센터 '길고양이마을' 성수협력점 풍경.

이 '스트레이캣'방은 유기,유실,파양 등으로 반려인을 잃은 고양이들의 전용공간이다. [출처: 김진주 작가 제공]

길고양이마을 성수협력점 내 '알리캣'방. 밖에서 구조한 고양이들을 위한 전용공간이다. [출처: 김진주 작가 제공]

길고양이마을 성수협력점 내 '위탁사랑방'. 임시보호 중인 고양이들을 위한 전용공간이다. [출처: 김진주 작가 제공]

그렇다면, ‘동네고양이’는 어떨까요?

이는 길고양이를 한층 예우하는 표현입니다. ‘우리 동네 주민’ 즉 일본의 지역묘(地域猫)와 의미가 겹치는데, 어감은 더 예쁘네요.

하지만, 일본의 지역묘는 명실상부하게 지역차원의 관리와 보호를 받고 있는 반면, ‘동네고양이’는 그 동네 주민으로 대우받고 있지 못한 현실입니다.

즉 ‘동네고양이’는 말 자체는 예쁘지만, 그런 만큼 이들이 처한 위태롭고 불안한 현실을 충분히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그런 현실을 가리는 예쁜 덮개가 될 수도 있지요.

세심한 관리는

공간, 용어 구분에서 시작된다

국내에서도, 고양이의 상황과 상태에 따라 세밀하게 구분해 관리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해요.

일례로, 동물보호단체 카스카(KASCA)에서 운영하는 카페형 입양센터 ‘길고양이마을’에서는 개체별로 파악된 정보에 따라 고양이를 구분해 관리하고 있어요.

우선 사람과의 반려경험이 있는 고양이인지, 반려경험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사람과 친밀한 고양이인지, 사람과 가까워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고양이인지를 파악해요.

반려인을 잃은 고양이라면, 그 이유도 파악합니다.

파양이나 유기라면 마음의 상처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고, 유실(반려인이 잃어버린 경우)이나 반려인 사망이라면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로 혼란스러운 상태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고양이가 처한 상황과 상태에 맞춰 관리하려면, 우선 물리적 공간(고양이방)을 구분해야 하고, 다음으로 그 공간에 붙일 명칭, 용어를 구분해야 합니다. 관리 즉 돌봄의 대상에 대한 용어의 세분화가 필요한 이유이지요.

지금까지 열거한 고양이 관련 용어들이 참 많지요?

이해하기 쉽게, 위에 도표로 친절하게 정리해드렸습니다.

어때요, 도표로 보니 쏙쏙 들어오지요?

그런데, 지금까지 차마 말하지 못한 ‘고양이’가 또 하나 있습니다. 다름 아닌, ‘도둑고양이’입니다.

그러면, 2장으로 함께 가실까요?

2장의 주제가 뭐냐고요?

왜? 고양이는 도둑 누명을 썼으며, 언제 그리고 어떻게? 누명을 벗었는지랍니다.

흥미롭지 않나요?

(1)

’일본 고양이의 날, 일본의 지역고양이와 우리의 길고양이’ 동물보호단체 카스카(KASCA) 공식 블로그 https://blog.naver.com/kasca2025/224187427430

(2)

'길고양이가 아니고 ‘동네 고양이’예요', <시사IN>, 나경희 기자, 2019년 08월 27일.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355

[저작권 및 게재 안내]

이 글은 르몽드코리아에서 2015~2024 월간지 교정교열 업무를 담당했으며, 동물권운동가이기도 한 김진주 작가가 동물보호단체 카스카(KASCA) 공식 블로그(https://blog.naver.com/kasca2025

) 에 기획/연재 중인 「생명감수성사전」 카테고리의 글입니다.

저작자와 카스카의 동의를 받아, 해당 카테고리의 1~4회분 원고를 르몽드코리아에서 공유·게재합니다.

본 글의 저작권은 저작자인 김진주 작가에게 있습니다. 다만, 매체 편집 과정에서 이미지 배치, 캡션, 형식 등 일부 편집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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