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성 기자 〈리서치센터 국장·칼럼니스트〉
[스타벅스 탱크데이 특별기획] 적이 만든 상징 <1>
■ 스타벅스를 때렸더니 정용진이 커졌다
■ 명백한 과실, 그러나 과잉 응징
■ 적이 만든 상징, 정치가 키운 아이러니
적이 만든 영웅만큼 강한 것은 없다.
스타벅스 탱크데이 마케팅 사태가 터졌다. 명백한 과실이었다.
5·18을 상징하는 날에 등장한 탱크데이.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를 연상시키는 책상에 탁. 이 문구들이 홍보에 쓰였다. 용납될 수 없는 실수였다. 이 점은 분명하다.
스타벅스 측은 사과했고, 논란이 된 문구를 삭제했다. 그러나 논란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응징 과정이 이상하게 흘렀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장관들이 줄줄이 움직였다. 여당 대표까지 나섰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정부 기관의 스타벅스 상품 제공 배제 방침을 밝혔다. 정청래 민주당 총괄상임선대위원장은 지난 20일 후보자와 선거운동 관계자들에게 스타벅스 출입 자제를 당부했다. 정 위원장은 5·18 민주화운동 조롱·폄훼에 대한 강력 처벌법 추진도 언급했다.
법무부는 대검찰청의 스타벅스 구매 현황을 점검한 것으로 보도됐다.
경찰 절차도 빠르게 움직였다.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지난 20일 정 회장과 손정현 전 스타벅스코리아 대표를 모욕·명예훼손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는 22일 김순환 서민위 사무총장을 불러 고발인 조사를 진행했다. 당초 사건은 강남경찰서에 배당돼 29일 고발인 조사가 예정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서울청 재배당 뒤 하루 만에 조사가 이뤄졌다는 보도도 나왔다.
기업의 마케팅 실수 하나에 정치권과 행정, 수사 절차까지 한꺼번에 움직이는 장면이 만들어졌다. 국가 권력이 총동원된 것처럼 비쳤다. 과잉이라는 지적도 뒤따랐다.
여기서 역설이 시작됐다.
■ 때릴수록 자란다 — 응징이 만든 역효과
정치는 묘하다.
잘못을 때렸는데, 때린 쪽이 더 커 보일 때가 있다. 그 순간 잘못한 사람은 책임자가 아니라 피해자로 보인다.
피해자로 보이는 순간, 이름은 정치 자산이 된다.
진보 진영은 이 역효과를 놓쳤다.
▲스타벅스의 마케팅 실수는 기업 책임 문제로 시작됐지만, 과잉 응징 논란 속에서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정치적 상징으로 소환됐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을 두들길수록 그의 이름은 다시 정치 뉴스의 한복판으로 불려 나왔다. 보수 결집의 구심점이 만들어졌다. 공감이 쌓였다. 원하지 않아도 정치적 얼굴이 됐다.
국가 권력 대 기업인의 구도가 완성됐다.
이 구도에서 유권자의 시선은 어디로 향하는가.
답은 단순하다.
강자가 약자를 두들기는 장면. 한국 유권자는 본능적으로 약자 편을 든다. 정부와 여권 스스로 그 장면을 연출했다.
■ 정주영과 다르다 — 밀어 넣어진 상징의 무서움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을 돌아본다.
그는 스스로 나섰다. 현대라는 기업 권력을 등에 업고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그래도 실패했다.
정용진은 다르다.
본인 출마 의사가 없다. 정치 선언도 없다. 그런데 진영이 먼저 그를 영웅 서사 안으로 밀어 넣고 있다.
스스로 나선 정치인보다 밀어 넣어진 상징이 더 무섭다.
■ 진보 진영에 묻는다
지금 정용진을 응징하는 것인가.
아니면 키우는 것인가.
정부와 여권이 기업인을 압박하는 장면. 6·3 지방선거를 앞둔 유권자 눈에 어떻게 보이겠는가.
냉정하게 답해야 한다.
■ 가장 난처한 사람은 정용진 본인
정작 가장 난처한 사람은 정용진 본인이다.
원하지 않는 정치화다.
기업인으로 남고 싶어도 진영이 놓아주지 않는다. 보수 강경층은 그를 멸공커피의 상징으로 띄운다. 진보 진영은 응징 대상으로 두들긴다.
양쪽 모두 그를 소비하고 있다.
이것이 한국 정치의 야만성이다.
■ 역설의 최대 수혜자
스타벅스 사태는 마케팅 실수로 시작됐다.
그러나 끝은 달라졌다.
정부와 여권이 응징에 나선 순간, 사태의 본질이 바뀌었다. 기업 책임론이 정치 대결론으로 전환됐다.
그 전환이 정용진을 보수 진영의 소비 가능한 얼굴로 만들었다. 영웅 서사 안으로 밀어 넣었다.
정부와 여권은 스타벅스를 응징했다고 믿었을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의 작동 방식은 달랐다.
스타벅스를 때렸더니 정용진이 커졌다.
권력은 응징했다고 믿었지만, 정치는 반대로 움직였다.
역사는 이 아이러니를 오래 기억할 것이다.
적은 때로 가장 강력한 후원자가 된다.
정용진을 키운 것은 정용진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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