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중과실 인정 어렵다 판단, 영업정지 처분 취소
구체 지침 없이 내려진 제재 한계 지적, 거래 비중 0.7% 주목
금융위 항소 방침, 빗썸·코인원 제재와 입법 논의 영향
두나무 CI. (사진=두나무)/뉴스후플러스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가 금융당국을 상대로 낸 행정소송 1심에서 승소
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이 특정금융정보법 위반을 이유로 내린 영업 일부정지 3개월 처분을 법원이 취소하면서, 가상자산업계를 짓눌러온 당국 제재의 기준과 한계가 정면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재판부는 두나무가 미신고 가상자산사업자와의 거래를 막기 위해 나름의 조치를 취했다고 봤고, 규제당국이 100만원 미만 거래와 관련한 구체적 지침도 내놓지 않은 상태에서 사후적으로 책임을 묻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
했다.
이에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는 곧바로 항소 방침을 밝혔다. 이번 판결은 두나무 한 곳의 승패를 넘어, 빗썸·코인원 제재는 물론 국회에서 논의 중인 디지털자산기본법과 거래소 규제 방향 전반에 적지 않은 흔적을 남길 가능성이 커졌다.
◇ "충분한 조치였다고 단정 어렵지만, 고의·중과실도 아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판사 이정원)는 9일 두나무가 FIU를 상대로 제기한 영업 일부정지 처분 취소소송 1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선고
했다. 쟁점은 △두나무가 미신고 가상자산사업자와 거래했고, 고객확인의무(KYC)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는지 △ 그 과정에 특금법이 정한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었는지가 핵심이었다.
이번 소송의 발단은 지난해 2월 FIU 제재였다. 당시 FIU는 현장검사 결과를 토대로 두나무가 해외 미신고 가상자산사업자들과 거래하고 고객 확인 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고, 3개월간 신규 고객의 가상자산 이전을 금지하는 내용의 영업 일부정지 처분 등을 통보
했다. 특정금융정보법은 가상자산사업자가 고의 또는 중과실로 자금세탁 행위 및 공중협박자금 조달 행위를 막기 위한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은 채 미신고 가상자산사업자와 영업 목적으로 거래할 경우 금융당국이 영업정지 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FIU가 문제 삼은 거래 건수는 총 4만4948건이었다. 다만 이는 전체 100만원 미만 출고거래 641만3281건 가운데 0.7% 수준이었다. 두나무는 이에 맞서 법 위반 여부를 둘러싼 해석상 차이가 있고, 당국 처분은 과도하다는 입장을 유지
해 왔다. 본안 소송과 함께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은 지난해 3월 법원에서 인용돼, 실제 영업정지 효력은 이미 한 차례 제동이 걸린 상태였다.
1심 재판부는 두나무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두나무가 미신고 가상자산사업자와의 거래를 차단하기 위해 고객들로부터 확약서를 징구했고, 가상자산 흐름을 추적해 출고 대상 지갑주소가 미신고 사업자 소속으로 확인되면 자동 차단하는 모니터링 시스템도 운용
해 왔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 조치가 거래 차단을 위한 충분한 조치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하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두나무가 고의 또는 중과실로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은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판결의 무게중심은 결국 '기준 없는 제재'
에 있었다. 재판부는 규제당국이 100만원 미만 거래에 대해 회사가 어느 수준까지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지 구체적 지침을 제시하지 않은 상황을 짚었다. 사후적으로 조치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평가할 수는 있어도, 그것만으로 곧바로 고의나 중과실을 인정해 영업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릴 수는 없다는 취지다. 법원은 “FIU가 주장하는 사정만으로는 영업 일부정지 처분의 사유가 인정되지 않아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두나무가 사용한 모니터링 시스템의 한계도 숫자로 들여다봤다. 해당 시스템이 추적하지 못한 거래 가운데 실제 미신고 가상자산사업자와의 거래로 밝혀진 비율은 평균 2.8%였다. 이 역시 완벽하지는 않지만, 곧바로 고의적 방치나 중대한 과실로 단정할 사안은 아니라는 해석의 배경으로 읽힌다.
◇ 즉각 항소 나선 금융위...빗썸·코인원·입법 논의까지 흔든다
두나무는 선고 직후 입장문을 내고 "규제를 준수하고 건전한 디지털자산 생태계 구축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판결문 문구를 정면으로 받아치기보다, 규제 준수와 시장 건전성이라는 원칙을 앞세워 수위를 조절한 메시지
였다.
반면, 금융위는 물러서지 않았다. 금융위는 미신고 가상자산사업자와의 거래는 자금세탁 방지 체계를 훼손할 수 있는 사안인 만큼 판결에 아쉬움이 있다는 입장을 전한것으로 알려졌다.
행정소송 2심으로 전선이 곧장 옮겨붙는 셈이다.
당국으로서는 이번 1심 패소가 단순히 두나무 한 곳에 대한 처분 취소에 그치지 않고, 향후 유사 제재 전반의 정당성까지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물러서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 업계의 시선은 두나무 다음을 향하고 있다. 빗썸 역시 자금세탁방지 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FIU가 부과한 영업 일부정지 6개월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지난달 16일 제재를 받은 뒤 같은 달 23일 처분 취소 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을 함께 냈다. 신규 고객의 가상자산 이전이 금지될 위기에 놓인 만큼, 두나무 판결은 빗썸 소송의 선행 잣대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 코인원 역시 영업 일부정지 3개월 처분과 관련한 최종 제재 수위, 과태료 규모가 오는 13일 제재심의위원회에서 결정될 예정이어서 이번 판결의 파급력을 피하기 어렵다.
국내 가상자산거래소 영업정지 처분을 둘러싼 법원의 첫 판단이라는 점에서, 업계는 이번 1심 판결을 향후 유사 사안의 기준점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
다.
시장 안팎에서는 이번 판결이 '그림자 규제' 논란에 사실상 법원이 제동을 건 장면이라는 평가
도 나온다. 업계와 학계에서는 법률과 명시적 지침보다 감독당국의 자의적 판단이 앞서는 방식으로는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실제로
규제가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중징계를 동원하려면 최소한 사업자가 따라야 할 구체적 기준부터 분명해야 한다는 메시지
다.
동시에
두나무의 사업 재편에도 부담이 한층 덜어지게 됐다.
두나무와 네이버, 네이버파이낸셜은 지난해 11월 말 각각 이사회를 열고 포괄적 주식교환 방식으로 두나무를 네이버 계열로 편입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구조는 두나무 1주를 네이버파이낸셜 2.54주와 교환하는 방식이다. 거래가 마무리되면 네이버파이낸셜은 일반사업지주사로 전환한 뒤 두나무를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게 된다.
만약 이번 1심에서 두나무가 패소했다면 법적 리스크가 전면 부각되며 주주 반대 여론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승소로 흐름은 달라졌다. 시장에서는 네이버와의 '빅딜'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입법 논의도 이번 판결을 비껴가기 어렵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오는 15일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에서 가상자산 2단계 입법인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논의할 예정
이다. 금융당국과 여당은 거래소 대주주 지분율 제한 등을 포함한 규제 수준을 놓고 고심해 왔는데, 이번 판결은 과도한 규제보다 명확한 규율 체계를 우선해야 한다는 쪽에 힘을 보탤 수 있다.
반대로 당국 입장에서는 자금세탁 방지 체계를 느슨하게 둘 수 없다는 명분으로 항소와 입법 보완을 함께 밀어붙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법원은 두나무의 조치가 완벽했다고 보지 않았다. 다만,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당국이 결과만 놓고 중징계를 내리는 방식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두나무의 1심 승소는 업비트 한 회사의 방어 성공에 그치지 않을 것
으로 보인다.
규제는 칼이어야 하지만, 그 칼끝은 법과 기준 위에 서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이번 판결을 통해 다시 상기시킨 셈이다.
가상자산거래소 관계자는 "그동안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이른바 ‘그림자 규제’에 대한 부담이 컸다"라며 "명확한 기준 없이 제재가 이뤄질 경우 사업자 입장에서는 리스크 관리 자체가 어려워진다. 이번 판결은 그 부분에 제동을 건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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