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란 전쟁 한 달, 유가 66달러에서 158달러로 폭등…4월 원유 수급 위기설에 석유화학 공장 셧다운까지
카타르의 라스라판 산업단지가 이란의 군사 공격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으면서, 아시아 국가들의 액화천연가스(LNG) 연합뉴스
[공감신문] 정재은 기자=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전격 공습한 지 25일째, 중동 전쟁의 충격파가 한국 경제의 심장부를 직격하고 있다. 정부는 25일 청와대 내에 비상경제상황실을 가동하고, 김민석 국무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비상경제본부를 출범시켰다. 같은 날 0시부터 공공기관 승용차 5부제가 의무 시행에 들어갔다. 전쟁 발발 이전 배럴당 66달러이던 국제유가가 158달러까지 치솟고, 국내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1900원을 넘긴 상황에서 정부가 에너지 수급 위기에 본격 대응하겠다는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다.
김민석 총리는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 대응 체계 브리핑에서 "정부는 비상한 상황에 맞춰 비상하게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비상경제본부는 기존 경제부총리 주재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총리 주재로 격상 개편한 것으로, 산하에 거시경제·물가대응반, 에너지수급반, 금융안정반 등 5개 실무대응반을 운영한다. 경제 분야는 물론 복지·외교 분야까지 망라한 범부처 원팀 체제다. 김 총리는 "당분간 주 2회 개최하되, 중동 상황 전개에 따라 회의 주기를 탄력적으로 운영하겠다"고 했다.
이번 위기의 진원지는 호르무즈 해협이다. 이란과 오만 사이의 이 좁은 수로를 통해 전 세계 석유의 약 20%, 비슷한 비율의 액화천연가스(LNG)가 통과한다. 그러나 2월 28일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해협을 지나는 유조선 통행은 사실상 중단됐다. 이란이 3월 13일 자국 우호국 선박만 선별 통과시킬 수 있다는 강경 성명을 발표하면서 봉쇄는 더욱 굳어졌다. 에너지 전문 분석기관 ING는 3월 18일 보고서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및 정제유 흐름이 재개될 때까지 시장은 계속 긴장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산업통상부 양기욱 산업자원안보실장은 23일 브리핑에서 "두바이유가 158달러를 기록하는 등 최근 국제유가 상승 속도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보다 가파르다"고 진단했다. 딜로이트가 발표한 '2026년 글로벌 경제 전망'은 이번 사태를 두고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고, 주식 가격은 하락했으며, 안전자산 도피에 따라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지정학 리스크 분석기관 유라시아그룹의 클리프 컵찬 회장은 이번 전쟁이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원유 공급 충격"을 초래했다고 진단하며, 1973년 아랍 석유 금수 조치 때 하루 440만 배럴이 줄었던 것에 비해 이번 위기는 그 4.5배 규모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한국은 이 충격의 정면에 서 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극히 높은 한국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원유뿐 아니라 산업 전반의 공급망을 흔드는 문제다. 석유화학업계가 가장 먼저 타격을 받았다. 원료인 나프타 가격이 전쟁 이전 대비 두 배 가까이 급등한 데다 물량 확보 자체가 어려워졌다. LG화학은 23일 여수산단 내 나프타분해시설(NCC) 2공장 가동을 중단한다고 공시했다. 주요 NCC 가동률은 기존 약 80%에서 60% 이하로 떨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나프타는 원유와 달리 국가 비축 체계가 없어 공급 충격에 더욱 취약하다. 업계에서는 재고 여력을 감안할 때 4월 이후 생산 지속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에너지 충격은 반도체 산업에까지 파급되고 있다. 카타르의 최대 에너지 단지에서 LNG 생산이 중단되면서 전 세계 헬륨 생산의 약 3분의 1이 감소했다. 헬륨은 반도체 제조 공정의 필수 원소로, 공급 차질이 수주 이상 지속되면 메모리 칩 생산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글로벌 칩 생산의 상당 부분이 집중된 한국·일본·대만이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부는 당장의 수급 위기를 막기 위해 다각적 대응에 나섰다. 원유 자원안보 위기경보를 '관심'에서 '주의'로 한 단계 격상했고, 아랍에미리트(UAE)에서 2400만 배럴의 긴급 원유를 도입하기로 했다. 양기욱 실장은 "3월 말과 4월 1일 두 차례에 걸쳐 400만 배럴이 들어오고, 나머지 1800만 배럴도 4월 초중순부터 입항이 시작될 예정"이라며 "4월 중순에는 비축유 방출까지 계획돼 있어 전체 수급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대체 경로는 운송 기간과 비용이 크게 증가해 근본적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오늘부터 시행된 공공기관 차량 5부제는 현재 4단계 위기경보 체계 중 2단계인 '주의' 단계에 해당하는 조치다. 차량 번호판 끝자리에 따라 요일별로 운행이 제한되며, 전기차와 수소차, 임산부 차량 등은 제외된다. '경계' 단계로 격상되면 민간 차량에까지 의무가 확대된다. 정부는 3월 27일 유류세 인하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며,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중동 피해가 확대되면 25조원 규모 추경 이후 추가 추경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고 언급해 재정 대응의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1973년 오일쇼크, 1990년 걸프전,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에너지 위기는 한국 경제의 반복되는 시험대였다. 그때마다 한국은 위기를 계기로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와 비축 체계 강화를 약속했지만, 중동 의존도의 구조적 취약성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이번에도 전쟁이 끝나면 다시 잊힐 것인지, 아니면 에너지 안보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환점이 될 것인지는 아직 답이 나오지 않았다. 서울 소재 대학의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호르무즈 봉쇄가 보여준 것은 한국 에너지 안보의 근본적 취약성이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수입선 다변화와 전략 비축유 확대, 재생에너지 전환 가속화라는 세 가지 과제를 동시에 추진하지 않으면 같은 위기는 반드시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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