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혜윤 사회문화부 기자
"이게 정말 이렇게 쉽게 없어질 수 있는 거였나. 반갑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고…"
남구청 공무원들과 2026 고래축제 이야기를 나누다 들은 말이다. 올해 퍼레이드 공무원 동원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듣고도 한동안 믿지 못했다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3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일이, 없어질 수 있다고 생각조차 못 했던 관행이 막상 사라지자 반가움과 함께 허탈함도 찾아온 모양이다.
그럴 만도 하다. 이전까지 고래축제 퍼레이드는 남구 14개 동 공무원이 인원을 채우는 게 관례였다. 동마다 주제에 맞춰 의상과 소품을 준비했고, 사람이 부족하면 가족과 친구에게까지 손을 내밀었다. 좋아하지도 않는 인형 탈을 쓰고 주말에 거리를 걸으면서, 축제를 즐기는 시민들 사이에서 공무원들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지자체 축제 현장에 공무원은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필요한 업무를 수행하는 것과 동별로 인원을 차출해 퍼레이드 행렬을 채우는 일은 엄연히 다르다. 다만 축제를 잘 치러야 한다는 이유로 그 경계가 흐려지면서, 가을철 주말마다 이어지는 지자체 축제 공무원 동원은 어느새 익숙한 풍경이 됐다.
그동안 남구 축제에서는 과도한 공무원 동원과 의전 논란이 반복됐다. 지난해 고래축제에서도 공무원 300명을 투입해 초청 내빈을 일대일로 연결하려던 계획이 알려져 비판이 일기도 했다.
이렇다보니 민선 9기 남구가 출범 초기부터 의전을 줄이겠다고 했을 때 기자도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출범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임현철 남구청장이 현장답사에 국·과장과 실무자까지 대거 따라붙은 것을 보고 "이제 내 스타일에 익숙해지라"며 직원들을 돌려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문득 변화는 때로 거창한 제도보다, 당연하게 여겼던 일을 다시 생각하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남구는 고래축제 퍼레이드에 동별 의무 참여 대신 전문 공연자와 동호회, 시민 자율 신청을 받아 퍼레이드를 준비하는 것으로 결단했다. 주민들이 직접 꾸미고 즐기는 행렬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30년을 맞은 올해 고래축제는 어떤 의미에서든 이전과는 다른 축제가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렇게 없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니"라는 말에는 이제라도 바뀌어 다행이라는 안도와, 왜 더 일찍 바뀌지 못했느냐는 씁쓸함이 함께 담겨 있다. 오래 이어졌다는 이유만으로 계속해야 할 관행은 없다. 축제의 주인이 시민이라면, 단체장은 그들이 기꺼이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방식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올해 고래축제에서 늘 반복됐던 공무원들의 굳은 표정 대신 시민들의 웃음이 퍼레이드를 채울 수 있을지, 조금씩 기대해본다.
정혜윤 사회문화부 기자 hy040430@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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