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 = 최문수 기자]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생노동조합(이하 노조)이 임금 협상 관철을 위해 ‘파업’이라는 극단적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사측을 압박하고 있는데,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노사 갈등을 넘어, 글로벌 환자들의 생명과 직결된 의약품 공급망을 인질로 삼은 ‘위험한 베팅’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특히, 삼성 전 계열사의 역량이 집결된 성과를 노조만의 전유물로 착각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의약품 제조시설에 대한 쟁의 행위 제한 등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함께 나오는 분위기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을 비롯한 글로벌 규제 기관으로부터 획득한 제조 승인은 약 420여 건에 달한다. 공장에서 365일 가동되는 생산 라인은 단순한 공산품을 만드는 곳이 아니다. 여기서 생산되는 제품들은 매일 항공편을 통해 전 세계로 공급되며, 말기 암 환자부터 심각한 자가면역질환 환자들에게 직접 투여되는 ‘최후의 보루’와 같은 약제들이다.
바이오 의약품의 특성상 치료의 ‘타이밍’은 곧 생사와 직결된다. 항암제나 희귀질환 치료제는 투약 주기가 하루만 어긋나도 환자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거나 치료 자체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매일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환자들에게 공급 차질은 곧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업계에서 “조금 더 벌어보겠다는 노조의 파업권도 헌법상 권리지만, 생명 직결 시설의 가동 중단은 차원이 다른 사회적 문제”라고 꼬집으며 “생산 라인이 멈추는 순간 전 세계 수만 명의 생존권이 협상 테이블 위의 칩으로 전락하는 것”이라고 경고하는 이유다.
노조가 파업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역대 최대 실적’ 역시 노조만의 노력으로 일궈낸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글로벌 위탁개발생산(CDMO) 분야에서 단기간에 선 세계 1위로 도약할 수 있었던 근간에는 삼성그룹이 수십 년간 쌓아온 제조 DNA가 응집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 삼성이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해 추진했던 5대 신수종 사업인 △태양광 △LED △자동차 배터리 △바이오 △의료기기 중 가장 독보적인 결실을 본 것이 바로 바이오제약인데, 이 성공은 삼성바이오로직스라는 한 회사의 고립된 노력의 결과물이 아니다. 삼성전자의 초정밀 반도체 공정과 과거 석유화학 설비 운영 기반, 그리고 삼성물산의 세계최고 수준 건설 기술이 융합된 ‘합작품’이다.
실제로 반도체 산업의 ‘클린룸’ 기술은 바이오제약 산업과 기술적으로 직결된다. 자그마한 온도 차나 미세먼지 하나에도 품질이 결정되는 반도체 생산시설 이상의 청정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 만큼, 생산 제품의 구성만 다를 뿐 제조 환경의 조건은 일맥상통한다.
또한, ‘만 톤’ 단위의 석유화학 설비를 운영해본 경험은 ‘만 리터’ 단위의 바이오 배양기 운영에 대한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고 해도 무방하다. 매년 이뤄지는 반도체와 석유화학 시설에 대한 유지보수 경험은 바이오 산업의 미래 리스크를 정확히 예측하고 관리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현재 삼성바이오로직스는 78만 5000리터의 압도적인 생산 규모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 록빌공장의 6만 리터가 추가 가동되면 총 84만 5000리터라는 세계 최대 규모를 확정 짓게 된다. 즉, 이 같은 눈부신 성장은 반도체, 석유화학, 건설 기술의 협업의 결과인 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글로벌 빅파마들이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선택했던 또 다른 결정적 이유는, 현재 노조가 볼모로 잡고 있는 ‘안정적인 글로벌 공급망’에 있다. 과거 삼성의 ‘무누조 경영’ 기조는 해외 고객사들에게 ‘어떤 정치·사회적 변수에도 흔들리지 않고 약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신뢰’로 작용해 왔다.
CDMO 사업은 발주 기업으로부터 받은 주문 내역을 ‘초’ 단위까지 정확히 실행해야 하는 초정밀 신뢰 산업이다. 단 한 가지 약속이라도 틀어지게 되면 제대로 된 약품이 생산될 수 없는 구조에서, 노조의 잦은 파업 시사와 쟁의 행위는 고객사들의 발길을 돌리게 만드는, 이른바 ‘자폭 행위’가 될 수 있다.
잦은 파업으로 안정적인 공급망에 차질을 빚는 기업에 누가 수조 원대 제품 생산을 맡기겠는가. “이제 삼성에 노조가 결성되고 파업이 상습화될 경우, 글로벌 고객사들이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대거 이탈할 수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사안”이라는 걱정이 나오는 배경이고, 결국 노조의 ‘실리 챙기기’가 회사의 수주 경쟁력을 갉아먹는 한편, 나아가 자신들의 일터마저 위태롭게 만드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상황이 갈수록 악화일로를 걷자 법·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바이오 의약품은 국민의 보건권뿐만 아니라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공공재적 성격이 강해서다. 과거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백신 개발과 생산을 위해 가동됐던 ‘패스트트랙’이나 방역 긴급 조치처럼, 생명과 직결된 핵심 의약품 생산 시설에 대해서는 쟁의 행위를 일정 부분 제한하거나, 파업 시에도 필수 인력을 강제적으로 배치하는 등 정부 차원의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핵심 전략 사업이자 인류 건강을 책임지는 생명 산업인 바이오 제조 시설이 특정 조직의 임금 협상 인질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환자의 목숨을 담보로 협상력을 높이려는 행태는 정당한 노동운동의 도덕적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번 잃은 신뢰는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노조는 이제 회피하지 말고 직시해야 한다. 환자의 생명을 쥐고 주판알을 튕기는 행위가 계속된다면 사회적 지탄은 물론 국가적 손실에 대한 책임론은 온전히 노조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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