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 = 최문수 기자] 17일 삼성전자의 심장부인 서초사옥 앞이 7만 4000명의 ‘투쟁’의 함성으로 가득찼다. 이날,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 지부(이하 노조)가 선포한 ‘과반노조’ 지위는 단순한 노조의 성장을 넘어 삼성이라는 거대 기업의 향방을 뒤흔들 새로운 권력이 탄생했다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이날 기자회견에서 드러난 이들의 목소리는 상생보다는 압박에, 혁신보다는 조직 관리에 치중돼 있어 우려를 자아낸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가장 눈에 띈 대목은 단연 조직의 성장 속도다. 지난해 9월 6000명에 불과했던 조합원이 반년 만에 7만 4000명으로 늘어난 것. 무려 12배의 폭발적 성장이다. 이송이 부위원장이 밝힌 성장의 배경에는 카카오톡 소통, 테이크아웃 반출 제한 등 철저히 ‘현장 불만’을 파고든 조직화 전략이 있었다.
그러나 이 급격한 성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기업의 본질인 경쟁력 강화보다 내부의 불만을 응집해 세력을 키우는 데 집중한 결과라서다. 특히, 전체 조합원의 80%가 반도체 부문에 쏠려 있다는 점은 노조가 특정 사업부의 이해관계를 지렛대 삼아 전사적인 경영 결정을 좌지우지하려는 거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한다.
최승호 위원장이 공언한 3대 과제 중 첫 번째인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원천 차단’은 사실상 삼성전자의 인사 경영권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노조는 희망퇴직과 강제 전배 등을 ‘생존권 위협’으로 규정하고 노조와의 합의를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기업이 변화하는 글로벌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인력을 재배치하고 체질을 개선하는 과정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모든 인사 조처에 노조의 도장을 받아야 한다면, 삼성전자의 경영 속도는 현저히 느려질 수밖에 없다. ‘신인사 제도’로 대표되는 삼성의 효율적 시스템이 노조라는 거대 장벽에 막혀 경직될 위기에 처한 거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동안 삼성전자 노사 관계의 완충지대 역할을 했던 노사협의회를 ‘사측 우호적’이라 비판하며 자신들만의 새로운 협의회를 정립하겠다는 선언도 파격적이다. 이는 기존의 질서를 부정하고 노조가 기업 내 유일무이한 의사결정 파트너가 되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셈이다.
기자회견을 보다 보니, 이들의 주된 관심사는 결국 ‘조합원의 민심 관리’와 ‘세력 확장’에 맞닿아 있다는 의견이다. 입사와 동시에 노조에 가입하는 ‘유니온샵’ 도입을 추진하고 조합원 중심의 복지를 외치는 것은 결국 삼성전자 내부의 권력 구도를 노조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가장 걱정되는 지점은 총파업 예고를 통한 사측 압박이다. 노조는 내달 21일부터 18일간 총파업을 예고하며, 하루 1조 원, 총 20~30조 원 이상의 생산 차질을 직접 언급했다. 위원장의 입에서 “설비 백업을 감안하면 하루 20조에서 30조 원 규모의 손실이 파악된다”는 구체적인 수치가 나올 때, 그것은 단순한 예고를 넘어 ‘경제적 위협’으로 다가왔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라인은 단 한 번의 멈춤으로도 천문학적인 피해가 발생하며, 이는 곧 대한민국 수출 경쟁력과 직결된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인공지능(AI)과 초미세 공정 기술을 두고 사활을 건 전쟁을 벌이는 시점에, 내부에서는 ‘20조 손실’을 무기로 경영진을 무릎 꿇리려 하는 모습은, 초일류 기업 삼성의 위상을 스스로 깎아먹는 행위다.
노조는 이재용 회장이 직접 밖으로 나와 대화할 것도 촉구했다. 과거 무노조 경영 폐기를 약속했던 회장의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지금처럼 파업과 거액의 손실을 예고한 상태에서의 대화 요구는 진정성 있는 소통보다는 사측의 ‘굴복’을 받아내려는 정치적 공세에 가깝다.
삼성전자 노조는 이제 ‘새로운 권력’이 됐다. 그러나 권력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7만 4000명의 목소리가 삼성전자를 더 나은 미래로 이끄는 동력이 될지, 아니면 글로벌 경쟁에서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지는 노조의 향후 행보에 달려 있다. 지금처럼 조직 관리와 세력 과시에만 매몰돼 국가 경제를 볼모로 삼는다면, 그들이 얻은 ‘과반’의 정당성은 대중의 지지를 잃게 될 것이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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