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기자수첩] '민낯' 과기부···보여주기식 발표? "브리핑은 넘치는데 설...

'K-문샷 프로젝트', 'AI 3대 강국 전략', '국가전략기술 육성', 'PBS 폐지 이후 전략연구사업', 'AI 연구동료 프로젝트', 'AX(인공지능 전환) 지역 프로젝트' 등 굵직한 정책들이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정부 업무보고에서도...

[기자수첩] '민낯' 과기부···보여주기식 발표? "브리핑은 넘치는데 설...

정책 공개는 긍정, 하지만 실행 안은 부실

간담회서 기자들 질문에 관료는 "검토 중" 연발

자칫 브리핑이 정책 채우며 설계 시간 잃어

미·중 사례, 설계 등 실행 구체화 한 후 발표

지난 1월에 열린 28개 기관 대상 업무보고. 생중계되며 과학기술계의 관심을 끌기도 했지만 부족한 시간으로 보여주기식이 아닌가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사진= 대덕넷DB]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정책 공개가 눈에 띄게 늘었다. 'K-문샷 프로젝트', 'AI 3대 강국 전략', '국가전략기술 육성', 'PBS 폐지 이후 전략연구사업', 'AI 연구동료 프로젝트', 'AX(인공지능 전환) 지역 프로젝트' 등 굵직한 정책들이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정부 업무보고에서도 과기정통부는 'AI·과학기술로 여는 대한민국 대도약'을 비전으로 내세우며 AI 인프라 확충, 초격차 기술 확보, 지역 산업 육성을 핵심 전략으로 제시했다.

이재명 정부의 강점 중 하나는 공개 행정이다. 취임 후 부처 업무보고는 물론 지역별 타운홀 미팅, 그동안 공개된 적 없던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도 실시간으로 공유했다. 행정에 능통한 대통령이 현장에서 직접 질문하고 조언하는 장면에 많은 국민이 박수를 보냈다. 신선한 변화였다.

이후 과기정통부의 정책 간담회도 부쩍 잦아졌다. 대전·세종·서울에서 같은 날 부처, 출연연 기자 간담회가 동시에 열려 취재진을 당혹스럽게 하는 일도 생겼다. 정책이 국민에게 빠르게 전달된다는 것, 그 자체는 긍정적이다. 그런데 속도가 빨라질수록 다른 의문이 드는게 사실이다.

◇ 숫자가 먼저 말한다

과기정통부 보도자료 현황을 분기별로 들여다보면 분명한 흐름이 보인다. 물론 수치 비교로 정책 구성과 내실화를 단정 짓기는 어렵다. 그러나 보도자료 증가와 함께 외부 브리핑까지 늘어났다는 사실은 분주함을 실감케 한다.

과기정통부 홈페이지 보도자료 수치(26년 3월 17일 정오 기준)를 분기별로 모아 정리했다. 이전보다 보도자료 수치도 확연하게 늘었다.[자료= 대덕넷 편집]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2025년 3분기부터 보도자료는 346건, 4분기 404건으로 크게 늘었다. 전 정부의 보도자료가 4개 분기 동안 1199건이 나온 반면, 현 정부는 3개 분기가 채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 이미 1043건에 이른다.

보도자료가 많다고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정책을 투명하게 알리는 것은 부처의 기본 의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발표의 속도와 현장 준비 수준이 엇박자를 낼 때, 숫자는 다른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브리핑이 정책 설계보다 먼저 달려나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다.

◇ '검토 중' 답변이 반복된 간담회

얼마 전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과기정통부 관계자들은 추진 중인 정책들을 막힘없이 설명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묻는 질문 앞에서는 달라졌다. 데이터 표준화 방안을 묻자 "검토 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출연연 간 연구 데이터 연계 체계를 묻자 역시 "검토 중"이었다. AI 인프라 운영 주체와 거버넌스를 묻자 "4월 장관회의에서 발표할 예정"이라거나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는 말이 이어졌다.

'검토 중'은 완성된 답이 아니다. 준비가 덜 됐다는 뜻이다. 브리핑 자료에는 굵직한 비전과 투자 규모가 가득했지만, 그 정책을 현장에서 실제로 굴릴 기반인 데이터 표준화, 기관 간 연계 체계, 실행 주체는 아직 설계 단계에도 이르지 못한 것들이 적지 않았다. 분기마다 수백 건씩 쏟아지는 보도자료의 속도와, 간담회 현장에서 드러난 준비의 깊이 사이에 간극이 있는 것이다.

과도한 브리핑이 낳는 실질적 문제라 볼 수 있다. 준비된 것보다 발표가 먼저 나가면, 담당 부서는 발표를 따라잡느라 정작 설계에 써야 할 시간을 잃는다. 브리핑이 정책을 이끄는 게 아니라, 브리핑이 정책의 빈자리를 채우며 내실을 잠식하고 만다.

공개 행정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 하나는 정책 형성 과정을 시민과 연구자에게 열어두는 '참여형 투명성'이다. 다른 하나는 완성된 홍보 메시지를 내보내는 '전시형 투명성'이다. 이재명 정부가 강조하는 공개성이 전자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빠르게 늘어나는 보도자료 건수와, 간담회 현장에서 드러난 온도 차를 보면 두 번째 얼굴에 더 가까운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진짜 공개 행정이라면 발표 이전에 질문이 먼저 와야 한다. 이 사업의 우선순위 근거는 무엇인가, 데이터 표준화와 기관 연계 같은 기반 작업은 어느 단계까지 진행됐는가, 출연연·대학·기업 현장의 수요와 어떻게 연결됐는가 등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브리핑 자료 안에 담겨 있다면 그것은 진짜 공개라 할 수 있다. 슬로건만 담겨 있다면, 내실을 갖추지 못한 홍보에 그치고 만다.

◇ 시스템 전체를 동시에 재설계하는 무게

지금 과기정통부가 동시에 추진하는 정책의 목록은 압도적이다. K-문샷은 2030년까지 한국 과학기술 수준을 미국 대비 85%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 아래 양자컴퓨터, 난치질환 치료, 차세대 에너지 기술을 동시에 겨냥하는 초대형 장기 과제다. AI 3대 강국 전략은 인프라 확충과 연구 생태계, 산업 전환을 한꺼번에 짊어진다. 정부는 2026년까지 GPU 3만 7000장을 확보해 국가 프로젝트와 산업계에 배분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여기에 AX 프로젝트, 국가전략기술 육성, 출연연 연구 체계 개편, 전략연구사업 도입까지 더해진다. AI 도입으로 과거 보다는 일을 추진하는데 속도를 낼 수 있겠다.

그러나 이 규모라면 사실상 국가 과학기술 시스템 전체를 동시에 재설계하는 수준이다. 문제는 정책의 수가 아니라 이 정책들을 실행할 구조다. 연구비 구조, 평가 시스템, 기관 운영, 인력 정책, 산업 연계 등 이것들이 함께 설계되지 않으면 어떤 대형 정책도 결국 선언에 머문다. 간담회에서 반복된 '검토 중'은 구조 설계가 아직 정책 선언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솔직한 신호다.

연구 현장에서 많이 나오는 말이 있다. 연구자 평가에 앞서 정책 입안자의 책임성 평가도 해야 한다는 것. 30조 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되는 정부 R&D, 과연 누가 책임지고 끝까지 추진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 미국·중국·일본의 교훈

해외 사례를 보자. 미국 국방고등연구원(DARPA)은 반세기 넘게 인터넷, 스텔스, 자율주행, 드론 기술 등 혁신의 산실로 기능해 왔다. DARPA의 본질은 화려한 발표가 아니라 '프로그램 매니저(PM)' 제도에 있다. PM이 과제 기획부터 계약 체결, 예산 집행까지 전권을 갖고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진다. 과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큰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갖는 구조다. 실패해도 교훈을 포착해 그 결과를 다음 과제에 반영한다. 발표가 아니라 책임의 연속성, 정책의 축적이다.

미국이 AI 국가전략을 내놓을 때, 미국 국립과학재단(NSF)·DARPA·미국 에너지부(DOE)는 각 기관의 역할 분담과 데이터 공유 프로토콜을 먼저 설계하고 발표는 나중에 했다. 철저히 준비한 뒤 공개한 것이다. DOE는 예산을 투입하며 본격 추진에 들어갔다.

중국의 '과기창신 2030' 메가프로젝트는 다른 방식으로 참고가 된다. 양자, AI, 뇌과학 등 15개 전략 분야를 선정한 뒤 각 분야마다 전담 실행 기구와 집행기관을 지정하고 중장기 예산 틀과 연차별 추진계획을 함께 설계하는 방식으로 운영 체계를 만들었다. 다년도 예산을 동시에 확정하고 선언과 실행 체계가 함께 공개됐다. 중국 모델을 그대로 이식할 수는 없지만, '전략 선언과 실행 구조를 분리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한국이 배울 부분이다.

일본은 반면교사다. 일본의 매체 자료에 의하면 2000년대 초 '제3기 과학기술기본계획'을 시작으로 '이노베이션 25', '소사이어티 5.0'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과학기술 전략을 10년 단위로 내놓았다. 발표 때마다 화려했다. 그러나 전략을 실행할 부처 간 칸막이, 예산과 인사 권한 분산 등 조정 기구의 실질적 권한 부족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고 책임 주체는 흐릿했다. 결과는 '잃어버린 30년'의 과학기술판이었다. 논문 수, 특허 경쟁력, 연구 인력 유출 등 지표는 1990년대에 비해 뚜렷이 약화됐다. 전략·예산·평가의 분리, 책임 주체의 모호성 등 오늘날 한국이 직면한 문제와 겹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세 나라의 경험이 공통으로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다. 정책의 신뢰는 발표의 양이 아니라 실행의 밀도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발표 전에 실행 구조를 먼저 설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AI 3대 강국 전략의 핵심 과제로 데이터 표준화와 기관 간 연계를 내세우면서, 실행을 묻는 질문에 "검토 중"이라 답하는 것은 현장의 혼란만 더한다. 둘째, 정책마다 끝까지 책임지는 주체를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정권이 바뀌거나 장관이 교체돼도 정책의 책임 주체는 흔들리지 않는 구조가 필요하다. 그리고 동시다발 발표보다 우선순위 선택이 필요해 보인다. 모든 것을 동시에 재설계하려 하면 어떤 것도 제대로 설계되지 않는다.

정책 브리핑이 늘어난 것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간담회 현장에서 '검토 중'이 반복되는 브리핑이 쏟아진다면, 그 정책은 신뢰를 잃게 된다. 정책은 브리핑에서 시작될 수 있다. 그러나 정책의 신뢰는 브리핑이 아니라 현장, 실행에서 만들어진다.

글로벌 과학기술 전쟁이 치열한 지금, 한국에는 정책을 끝까지 책임지는 구조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앞선 세대가 일군 성과를 오늘의 세대가 누렸듯, 대한민국의 다음 세대도 미래를 누릴 수 있으려면 책임감 있는 정책 실행이 전제되어야 한다.

닫기

길애경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저작권자 © 헬로디디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